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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동포 인육설을 통해 본 카니발리즘
최진용(MBC 파리주재 PD특파원)
jinyong@worldnet.fr

K형에게.오늘 파리통신을 평소와 달리 K형 앞으로 띄우는 까닭은 이렇습니다. 지난 3월 3일 밤, 이곳 텔레비전에서 K형을 보았습니다. 프로그램의 스튜디오에서 멘트를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참 반가웠습니다. 프랑스에서 동료 PD를 프랑스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본 것은 처음이었으니까요. 그러나 그 반가움은 잠시후 당혹감으로 변했습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공영 방송인 FR3에서 격주로 수요일마다 내보내는 DES RANCINES ET DES AILES이라는 시사르뽀성 프로그램에서 북한 문제를 다룬다는 것을 예고로 알고 있었기에 열심히 챙겨 봤는데, 이날은 캄보디아의 어린이 매춘, 아프리카의 기아문제에 이어 북한의 식량난이 아이템이었습니다. 1995년 이래 북한의 기근 사태로 굶어죽은 사람이 3백만에 이른다는 것과 탈북자들도 많이 늘고 있다는 게 내용이었습니다. 화면은 요즘 우리가 하듯이 중국쪽 국경근처에서 찍은 것들과 여기저기서 구한 자료화면을 편집한 것이었습니다.물론 그것만으로도 북한의 식량문제가 심각하다는 걸 짐작케 하는데는 충분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제작팀은 문제의 심각성을 더 부각시키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북한에서는 사람고기를 먹기조차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순대를 만들어서요. 그런데 그 근거로 보여주는게 K형이 나오는 의 화면이었습니다. 얼굴을 감추고 인터뷰한 화면에 한글 자막이 너무도 적나라하게 카니발리즘을 묘사하고 있었고 그 내용은 불어로 더빙되어 전달되었습니다. 시간은 1분 26초.나는 그 프로그램을 보지 못해 전제 구성을 모릅니다. 단지 자막 내용으로 추측컨대, 인육까지 먹는다더라는 소문을 말해주는 인터뷰였던 것 같습니다. 물론 그 앞뒤로 사실을 뒷받침하는 구성이 있었으리라 믿습니다. 그러나 프로그램 중 그 인터뷰만 잘라 보여줄 때 그 소문은 소문에 머무르지 않고 사실로 변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방송을 본 시청자라면 북한 동포들을 야만인중의 야만인이라 생각했을 겁니다. 만성적인 기근의 땅인 아프리카 사람들도 배가 고파 인육을 먹는다는 이야기는 없거든요.이 프로그램은 프라임타임대인 저녁 8시 50분에 방송되는데 신설 프로그램치고는 시청률도 좋은 편입니다. 이번 아이템에 대한 시청률은 16%로 3,148,350명이 그 프로그램을 보았다고 합니다. 공교롭게 그로부터 3일 후인 3월 6일자 ‘르몽드’지도 북한의 기아 사태를 다루면서 3백만의 아사자 수와 카니발리즘의 소문을 전하고 있습니다. 북한 동포들이 인육으로 주린 배를 채우는지는 사실 아무도 모릅니다. 사실일수도 있겠지만 전혀 근거없는 소문에 불과할 수도 있습니다. 색다른 소문일수록 전달자는 신이 나서 전달하고 그러면서 소문은 터무니없이 증폭되곤 하지요. 더구나 TV가 전달해주는 소문의 증폭 정도야 더 말할 필요가 없겠지요.그 프로그램을 본 후 많은 반성을 했습니다. 그간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소문을 확인하고 검증하는 게 아니라 시청률을 이유로 자극적인 소문을 증폭시키고 전파하는데 더 열중하지는 않았던가 하고 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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