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1회 한국방송프로듀서상 시상식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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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1회 한국방송프로듀서상 시상식을 보고
시청자와 대화하는 한마당으로
  • 승인 1999.03.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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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병우 충남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방송프로듀서상은 프로듀서들이 프로듀서에게 주는 상이다. 말하자면 프로듀서 공동체 내에서 이루어지는 자기 평가이자 집안 잔치이다. 그러므로 수상작들을 통해서 프로듀서 스스로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프로듀서의 상(像), 즉 자기 정체에 대한 스스로의 인식을 짐작할 수 있다. 크게 나누어 두 가지가 우선 눈에 들어온다.첫째, 그들은 장인 정신을 프로듀서라는 직업인의 가장 큰 덕목으로 삼고 있는 것 같다. 지금까지 시상 경향을 되돌아볼 때 작품으로서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프로그램 혹은 벽에 부닥쳐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장르에 새로운 돌파구를 연 프로그램들이 대상을 받아 온 것에서 그런 짐작을 하게 된다. 올해의 프로듀서상과 부문상을 동시에 수상한 <시베리아, 잃어버린 한국의 야생동물을 찾아서>와 예년의 대상 수상작들인 <길 위의 날들>이나 <갯벌은 살아있다>, <일요일 일요일 밤에> 등이 이 경우에 해당한다. 또, 실험정신상 부문이 설정된 것도 역시 그런 배경을 함께 하고 있다.둘째, 그들은 역사적 존재 그리고 사회적 양심으로서의 프로듀서의 사명감을 중요시하고 있는 것 같다. 이는 한국 현대사의 특수성에서 비롯되었다고도 할 수 있는데, 프로듀서가 되기 이전에 그들은 이미 역사적 존재로서의 자의식을 충분히 만들어 왔고, 프로듀서가 되고 나서도 노조 설립 및 공정 방송 실현 노력 속에서 이미 역사적 존재로서의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온전하게 성취되지는 못했지만 세상에 어느 나라 프로듀서들이 자기 반성 프로그램을 만들려고 해봤던가. 그래서 프로듀서상의 목록에 개혁실천특별제작팀이 오르고, 과 <그것이 알고싶다>가 단골 수상자가 되고, <광주는 말한다>와 <어머니의 노래>가 나란히 프로듀서상을 수상하고, 또 라디오의 <시사쟈키 오늘과 내일> 뿐 아니라 일상의 자잘한 단면들을 소재로 삼는 <여성시대>까지도 사회적인 호흡을 갖는 변화를 보일 수 있었으며, 각종 통일 지향 프로그램들이 꾸준히 제작되고 있는 것이다.그런데 이런 양심과 장인정신은 프로듀서 스스로 자임한 것일 뿐 여기에 시청자들이 끼여들 여지는 없다. 방송은 전문직종 종사자들에 의해 제작되지만 대중들의 호응 속에서 비로소 그 존재 양식이 완성된다. 이런 특성을 상기할 때 열 한 차례에 걸친 프로듀서상을 쭉 지켜보면서 한 가지 아쉬움을 감출 수 없다. 방송 프로그램은 그 내적 원리에 의해서 내려지는 평가로만 온전히 이해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하나의 독립된 텍스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시청자들과의 상호관계를 통해 하나의 사회적 사건으로도 존재한다. 가령 예전의 <모래시계>는 작품으로서도 완성도가 높았지만 그것은 단순히 한 편의 흥행성적 좋은 드라마로만 치부될 수 없다. 또, <사랑이 뭐길래>는 작가에 대한 불균형적으로 높은 의존도나 완성도의 측면에서 볼 때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지만 시청자들이 그것을 하나의 사건으로 만든 좋은 예이다. 올해 후보에 올랐지만 수상하지 못한 <구성애의 아우성> 또한 형식적인 측면에서 볼 때 연출의 개입 여지가 극도로 제한될 수밖에 없는 단순성을 갖지만, 한 편의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어떻게 사회에 전면적인 변화의 추진력을 제공할 수 있는가를 보여준 대단한 사건이었다. 방송 프로그램은 어떤 각도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최악의 프로그램이 될 수도 있고 최선의 프로그램이 될 수도 있다.어떻게 할 것인가? 이 글의 제안은 프로듀서상을 제작자와 시청자들이 모두 프로그램에 대해 다시 한 번 음미하는 계기로 삼자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방식은 시청자들에게 그 심사 결과가 방송 시간을 통해 공표될 뿐이다. 연말이면 각 신문지상을 통해 발표되는 방송 담당 기자들이 선정한 최고 최악의 프로그램도 마찬가지이다. 투표 결과만 신문에 실어 놓으면 독자들은 어쩌라는 것인가? <보고 또 보고>를 최악의 드라마로 선정한 방송담당 기자들의 관점과 작가부문상을 수여한 프로듀서들의 관점 사이의 괴리를 시청자들은 어떻게 소화해야 할까? 필자 개인적으로는 프로듀서들의 판단이 더 옳다고 여겨지지만, 그렇게 심사 결과에 대해 공감하면 공감하는 대로 뜬금없게 느껴지면 또 그렇게 당혹스러운 대로 한 때의 해프닝으로 여기고 넘어가면 그만일 뿐인가?한 가지 보완 방안을 제시해 본다. 본심은 축제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위해 채점표를 통한 수상작 선정이 이루어지는 것도 좋은 것 같다. 하지만 본선 출전작을 추천하는 예심 단계에서는 프로듀서 이외에 외부 평론가들도 참여시켜 각자의 추천 이유를 받아, 그것을 참고하여 본선 진출작을 선정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연합회의 인쇄매체들을 활용해 작품평을 첨부하게 되면, 수상작의 의미가 두고두고 반추되고 음미될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인터넷에 연합회 홈페이지를 개설하여 관심있는 시청자들과 제작자들 사이에 게시판을 통한 일목요연한 대화도 나눌 수 있게 하면 좋을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시청자들을 개입시켜야 프로듀서상이 사회적 사건으로서의 방송의 성격까지 아우른 축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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