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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큐브릭 전상서
고 스탠리 큐브릭 감독을 추모하며…
홍동식-MBC 라디오국

|contsmark0|본인이 귀하의 존함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유년시절 구멍가게 담벼락에 붙은 영화포스터에서 였습니다. ‘스팔타커스’라는 영화였지요, 아마. 풀냄새 채 가시지 않은 포스터 상단에 ‘스팔타커스’라는 글자가 부챗살 모양으로 퍼져 있었고, 한가운데는 턱이 마치 펜으로 콕 찌른 듯 옴팍 들어간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포스터 하단 어딘가에서 귀하의 존함을 만났습니다. 이 옴팍한 남자(한참 후에야 커크 더글러스라는 걸 알았지만)와 귀하가 본인의 머리속에 동일인으로 존재했던 적도 있었답니다.귀하의 부음소식을 접하고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더랬습니다. 일반적으로 한국어에서 ‘철렁’이라는 단어는 잘 아는 사람이 변고를 당했을 때 표현하는 가장 원시적인 의태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본인이 귀하와 서로 잘 아는 사이도 아닌데 ‘철렁’이라는 단어를 쓴 이유는 다시는 귀하의 새 영화를 볼 수 없다는 안타까움이 무엇보다 앞섰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고백하건대 본인은 큐브릭교 신도라는 이야기지요. 최초로 본 귀하의 영화 ‘스트레인지러브 박사 혹은 내가 어떻게 걱정을 멈추고 폭탄을 사랑하게 되었나?’ 이후 귀하의 신도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최초 장편영화인 ‘피어 앤 디자이어’부터 유작으로 남은 ‘아이즈 와이드 샷’까지 귀하는 46년간 13편의 장편영화를 남겼습니다. 본인은 이중에서 초기 작품인 ‘피어 앤 디자이어’, ‘살인자의 키스’와 아직 아무도 못 본 ‘아이즈 와이드 샷’, 이 세편을 빼놓고 10편의 영화를 보았습니다. 귀하가 말했지요? “내가 추구하는 것은 장엄한 시각적 체험이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본인 역시 귀하의 영화를 접할 때마다 엄청난 시각적 충격을 체험했습니다. 심오하고 철학적인 의문을 던져준 ‘2001년 스페이스 오딧세이’는 말할 것도 없고, 잭 니콜슨이 어린 아들을 죽이기 위해 도끼를 들고 미로속을 헤매는 ‘샤이닝’, 역동적인 참호장면으로 시작해 프랑스군대의 부패를 고발한 ‘영광의 길’, 폭력과 강간과 인간의 자유의지를 귀하의 방식으로 해석한 ‘시계태엽장치 오렌지’, 뉴잉글랜드의 성적 규범에 관한 ‘로리타’, 훈련병의 자살장면이 호러영화 뺨치는 ‘풀 메탈 쟈켓’ 등등… 귀하가 배려한 시각적 체험은 단순한 시각적 즐거움 이상이었습니다.뿐만 아니라 귀하는 청각적 체험기회도 아주 정밀하게 배열했더군요. 월터 카를로스가 신디사이저로 장중하게 연주한 헨리 퍼셀의 ‘메리 여왕의 장송곡’과 쥬페의 ‘경기병서곡’(시계태엽장치 오렌지)에서부터 리하르트 쉬트라우스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와 요한 쉬트라우스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2001년 스페이스 오딧세이), 그리고 헨델의 ‘사라방드’(배리 린든)에 이르기까지, 귀하의 영화에서 클래식은 단순한 분위기 메이커가 아니라 분출하는 에너지였습니다. 특히 핵전쟁으로 지구가 핵구름에 쌓이는 마지막 장면에 베라 린의 고전적인 러브송 ‘we will meet again’(스트레인지러브 박사…)을 깔고, 교수부인을 강간하면서 ‘singing in the rain’(시계태엽장치 오렌지)을 부르게 하는 등, 장면과 전혀 조화되지 않은 음악을 사용하고선 시치미 뚝 떼는 귀하의 음악적 블랙 유머에 깊은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귀하에 관한 일화도 많이 떠돌더군요. ‘스팔타커스’ 촬영시 제작자인 커크 더글러스에게 시달린 나머지 그후론 헐리웃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는 둥, 1960년대 중반 ‘2001년 스페이스 오딧세이’를 찍을 당시 촬영이 지지부진하자 제작사의 간부가 귀하께 “2001년이 영화제목이여? 영화가 완성되는 해여?”라고 물었다는 둥, ‘샤이닝’ 촬영시 한 장면을 200번이나 ng 내어 잭 니콜슨을 미치게 만들었다는 둥…. 이 모든 게 귀하의 영화에 대한 완벽주의를 이야기하는 것이겠지요.평자들은 귀하를 ‘영상의 철학자’, ‘테크놀로지의 마술사’, ‘장르의 연금술사’ 등 극찬을 하더군요. 그것은 아마 귀하가 현대문명의 본질을 꿰뚫고 인간의 위선을 파헤친 동시에 스테디캠을 활용하고, zeiss사의 사진기용 50mm렌즈를 영화카메라용으로 만들어 촛불조명아래 영화를 찍는 등 새로운 실험도 마다하지 않았던, 즉 형식과 내용을 완벽하게 구사한 몇 안되는 영화인이기 때문이겠지요. 자, 끝으로 귀하의 명복을 빌면서 귀하가 했던 말을 이 시대, 이 땅에서 영상으로 먹고 사는 모든 이들에게 들려주고자 합니다.“어떤 사람은 소설을 쓰고, 어떤 사람은 작곡을 하고, 나는 영화를 만든다. 내가 영화를 만들지 않으면 무엇을 할 수 있었겠어?”본인은 관능적인 모험에 나서는 부부의사의 이야기로만 알고 있는 귀하의 유작 ‘아이즈 와이드 샷’(실제 부부인 톰 크루즈와 니콜 키드만 주연)의 개봉만 그저 기다릴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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