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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0일, 강남 어느 스튜디오에서 일본의 위성TV채널 소속의 한 프로듀서를 만날 수 있었다. 코니시 하루코. 일본 위성채널(아시아드라마TV)에서 다큐멘터리 제작 프로듀서로 활동 중인 그녀의 인터뷰 대상은 어느 한류 스타가 아닌, 종군 위안부 할머니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 <낮은 목소리>의 변영주 감독이었다.


일본에서 처음으로 <낮은 목소리3-숨결>이 방송되는 것을 기념해 홍보 인터뷰를 하고자 한국을 방문했다는 그녀는 인터뷰를 앞두고 변 감독만큼이나 꽤 긴장돼 보였다. “작품을 통해 종군위안부가 된 할머니들의 잔혹한 체험담을 듣는 순간 너무나 마음이 아팠고, 울음을 참을 수가 없었답니다. 등장하는 할머니들의 체험담을 보다 많은 일본 사람들이 보고 듣고 느끼길 바라고, 한 명의 일본인으로서 과거의 역사를 정확하게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이 작품을 방송하고자 결정했어요.”


그의 말에 감사하다며 멋쩍은 인사를 건넨 변 감독은 작품을 제작하게 된 경위를 먼저 설명했다. “사실 일본 오가와 신스케 씨 영화를 보면서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고, 우연한 기회에 종군위안부 할머니들이 살고 있는 나눔의 집을 방문하게 되었어요. 할머니들 앞에게 제가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사람이라고 소개되자 바로 나가라고 소통을 쳤고, 너는 왜 우리를 찍으려는지, 뭐에 이용하려고 하는지 등에 대한 질문공세가 연발했죠. 그 상황에서 저는 할머니들의 순수한 모습을 제 카메라에 담아 그 영상을 보면서 할머니들이 즐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했어요. 단순히 이 할머니들이 카메라 앞에서 즐거워했으면 좋겠다는 아주 소박한 마음에서 시작된 촬영이었죠.” 


<낮은 목소리>가 분명 정치적 의도로 제작된 것이었다고 생각했던 코니시 씨는 변 감독의 답변에 좀 의아해했다. “그럼 변 감독의 소박하고 순수한 마음이 할머니들을 감동시킨 것이었군요.” 그의 말에 변 감독은 “(웃으며) 그렇다고 볼 수 있을까요? 사실 촬영 허락받기까지 6개월이나 걸렸는데요. 초창기에는 아무 것도 하는 것 없이 매일 오전 10시에 나눔의 집에 가서 멍하니 앉아있었죠. 할머니들은 촬영 스텝이 오는지 가는지도 전혀 상관하지 않고… 무시의 나날이었답니다. 전 머릿속으로 ‘촬영을 하게 된다면 이런저런 것을 찍어야지’라는 상상만 하고 돌아오곤 했는데요. 조금씩 시간이 지나면서 할머니 한 명씩 꼬시기 시작했죠. 제가 꼬신 할머니가 다른 할머니들에게 촬영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설득, 협박도 해 주셨고….”처음 말문을 튼 할머니에게 일기장 같은 가족일기를 찍겠다고 말하며 촬영 허락을 얻었다는 솔직한 답이었다.


이어 <낮은 목소리3-숨결> 이 일본 시청자들에게 어떻게 보여지길 바라는지에 대해 코니시 씨는 “이 작품을 본 일본인들이 할머니들의 아픈 경험담과 과거를 되새기며 지금 이 시기에 무엇을 하면 좋을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정치문제에 앞서, 현재 살아있는 한 사람의 과거를 순수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길 바래요”라고 조심스레 전하는 말에 변 감독은 덧붙였다.


“일본 시청자들이 제 작품으로 보고 너무 ‘미안하다’, ‘죄스럽다’, ‘또 우리를 욕하는 거구나’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피해자인 할머니들이 50여 년 동안 왜 입을 다물고 살 수 밖에 없었는지를, 왜 이 할머니들을 부끄럽게, 숨게 만들었는지 한국 사회에게 물어보고자 기획된 것이지, 일본 사람들에게 사죄를 요구하고자 제작된 작품이 아닙니다. 바람이라면 제 작품을 보고 할머니의 아픔을 달래기 위해 함께 무엇을 도모해야 하는지, 시청자들이 할머니랑 가까운 친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공식적인 인터뷰가 다 끝난 후, 코니시 씨는 전했다.
“사실 보고 싶은 한국 다큐멘터리가 너무 많아요. 그런데 제대로 권리 문제가 해결되지 못해 방송을 하고 싶어도 포기하는 경우가 있죠. <낮은 목소리>처럼 일본 사람들이 분명 봐야 할 다큐멘터리가 많이 공개되었으면 좋겠어요” 라고 변 감독의 후속 작품을 기대하겠다며 마지막 인사를 나눈 두 사람.

 

한류 붐이 수그러들었다는 기사가 일본 내에서도 속속히 나오지만, 그건 단순한 스타 한류 붐을 두고 한 말이 아닐까 싶다. 두 사람의 만남을 통해 한국에 대한 이해도와 관심은 점점 깊어가는 것을 아닐까, 또 다른 한류 붐을 기대하고 싶을 뿐이다.

 

소넷 엔터테인먼트(So-net Entertaiment) 영상사업과 프로듀서 황선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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