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기 - SBS <그것이 알고 싶다-끝나지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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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에겐 세월의 풍상으로 숙성된 향기가 있었다"민인식 SBS 6CP

|contsmark0|마지막 촬영“오늘이 마지막 촬영입니다.” 지난 3월 13일 토요일. 며칠째 따라다니던 취재진에게 오늘은 몸이 안좋으니 다음에 더 하자는 고(故) 계훈제 선생에게 무심코 나는 말했다. “마지막이라니 나보고 죽으라는 말인가?” 분명 농담으로 던지는 계 선생의 한마디. 그런데 왠지 나는 그 마지막이라는 말을 붙잡고 걸어온 계 선생의 농을 굳이 걷어내고 싶었다. “그게 아니고 방송날짜가 멀지않아 카메라를 들고 찾아 뵙는 게 그렇다는 겁니다. 그냥 선생님을 찾아 뵙는 날은 앞으로도 많을 겁니다.” 멋없는 응수. 그래서인지 마음에 남던 불편함. 그렇게 시작된 그 토요일 노(老) 재야인사와의 만남은 정말로 마지막이 됐다.다음날 아침 잠이 덜 깬 상태에서 그의 부음을 들었다. 다시 생각나는 그 마지막이라는 단어. 방정맞은 입. 몸이 안좋다면서도 메모지 한 장까지도 모아 묶어놓은 묵은 보따리를 풀어 보여주며 그 어느 때보다 힘있게 저항의지와 자유, 통일에 대한 열정을 토해내던 고 계훈제 선생. 마치 다음날 이른 아침의 운명을 예감이나 한 듯 그는 30년 넘는 저항의 세월을 이야기했다. 한 점 사심이 없이 살았노라는 그의 맺음은 세상을 향해 던지는 선언인 듯 비장했다.
|contsmark1|느낌이 좋은 사람들“그대를 만나던 날 느낌이 참 좋았어요.” 요즈음 제법 잘 팔리는 한 감성시집의 시 한 구절이다. 분명 느낌이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은 행운.느낌은 기운이다. 외모나 여타 구체적으로 표현될 수 있는 요인이 아닌 막연하되 그 사람의 총합적 기운이 다가오는 느낌, 그 느낌이 좋은 사람을 만나기는 쉽지 않거니와 그렇기에 그런 사람을 만나면 왠지 희벌적 마음이 열리고 삶이 즐거워진다.<끝나지 않은 투사의 노래-재야인사의 오늘>을 제작하면서 나는 모처럼 느낌이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맨처음 작가 최경씨와 이 프로그램을 해보자 했을 때 고민은 우리가 느끼는 그 좋은 느낌의 사람들을 또 그들의 삶을 훼손시키지 않고 전할 수 있을까였다. 고 계훈제 선생은 찾는 사람 없는 쓸쓸함과 병원비도 제대로 대지 못하는 곤궁함 속에서 병마와 싸우고 있었고 백기완 선생은 재정난으로 재야운동의 근거지였던 통일문제연구소 문을 닫으며 “군사독재보다 세상의 인심이 더 무섭다”고 탄식하고 있는데. 원로 언론인 송건호 선생은 식물인간상태. 과거 수십년간 독재와 억압에 맞서 사자후를 토하던 당당하고 강건한 모습은 적어도 아니다. 그저 세속의 눈으로 보면 한없이 초라하고 서러워 보이는 노 재야인사들의 현재를 보여주는 것이 자칫 패배주의로 흐르고 일반화되어 명분 하나로 외길을 걸어온 그들에게 또 많은 다른 재야인사들에게 상처를 주는 것으로 끝날 수 있다는 염려가 마음을 눌렀다. 그들은 연민과 동정을 구하지 않거니와 그런 대상이 되어서도 아니되는데 이를 넘어설 수 있는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는 강박도 있었다.그럼에도 우리는 고문후유증과 생활고에 시달리며 잊혀져가는 재야인사들의 현재를 그들이 피땀으로 일구어 놓은 1999년의 사회는 알아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해주자고 해서가 아니고 남들이 침묵할 때 분연히 일어나 불의에 맞선 그들이 있었기에 우리 사회가 적어도 이나마의 민주화라도 누릴 수 있음을 새삼 느끼기 위해. 무엇보다 프로그램을 하는 데 힘을 준 것은 재야인사들을 만나면서 느낀, 소슬한 외형적 현재를 딛고 넘어오는 그들의 순수함이었다. 그 순수함은 아무 생각없는 어린아이의 순진무구함이 아니고 모진 고난속에서도 세상에의 굴종을 거부하고 지켜온 옳은 길에 대한 신념이 세월의 풍상을 맞으며 숙성돼 풍기는 좋은 향기같은 것.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잃지 않던 고 계훈제 선생의 소년같은 열정에서, 본인역시 고문후유증에 시달리면서 정신이상이 된 남편을 민주화운동을 같이 한 동지적 입장에서 홀로 떠안고 15년을 감당해 왔다는 최정순씨의 상처 쌓인 강건함에서도 나는 그 느낌 좋은 순수함을 느꼈다. 아픔과 고통을 모르는 순진함이 아니고 그 아픔과 고통에 대응하는 방식이 순수하고 아름다워서 만나는 사람에게 좋은 느낌을 주는 사람들. 그 좋은 느낌을 프로그램을 보는 사람들에게도 전할 수만 있다면. 강하게 주장하지 않아도 부드럽게 다가오는 그 느낌에 마음이 열리고 우리의 삶을, 우리 사회의 현재를 겸허하게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contsmark2|왜 다시 재야인사인가이들은 출세하지도 못했고, 돈을 벌지도 못했다. 또 더 이상 세상의 이목을 얻지도 못하고 있다. 현재가 그러함은 단지 이들이 변화하는 시류에 적응치 못하는 능력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인가?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말이 결코 과거에 대한 망각증이나 이 사회를 위해 자신을 던진 사람들의 희생을 돌아보지 않는 무심함에 대한 면죄부가 되어서는 안되는 것 아닌가.역사가 판정한 폭력정권, 그 정권의 피해자이며 현재를 있게 한 유공자들에게 우리는, 우리 사회는 어떤 대우를 하고 있나? 국민의 정부 시대, 폭압의 가해자는 사면돼 집권여당의 고문이나 되는 의원과 골프를 즐기는데 그 폭압의 피해자는 고문후유증과 생활의 곤궁함을 자신과 그 가족만의 고통으로 견디고 있다. 그들은 묻는다. 자신들은 과연 민주화의 유공자인가, 아니면 피해자인가를. 진정으로 그들의 피를 먹으며 자란 민주화된 사회가 이렇다면 어떤 노래말처럼 이제 억압에 그리고 모순에 “홀로 일어나 아니라고 말할 사람 누가” 있겠는가? 만나서 느낌이 좋은 사람들은 사라지리라.방송이 나가고 패배주의적 상처에 대한 염려나 동정과 연민으로 인한 신념의 훼손에 대한 우려는 다행히도 별로 없었다. 힘겨운 그들의 현재와 아픔에 공감하면서도 그들이 단순히 초라해 보이기만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들을 통해 자신들의 삶과 우리 사회의 현재를 돌아볼 수 있었다는 시청자들이 있었음은 그들이 느낌 좋은 사람들이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이제 그 느낌 좋은 사람들과 만나 약속한 술잔을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마지막 하루를 같이한 진정 느낌 좋은 사람, 고 계훈제 선생의 명복을 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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