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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과 제스처로 직접적 의사소통을
신체언어를 통한 셔레이드
최상식-KBS 드라마제작국장

|contsmark0|‘몸이 곧 문화’라는 말이 있다. 몸짓을 바탕으로 한 의사소통은 인간 커뮤니케이션의 원형이며 신체언어에 기초한 무언극의 전통 또한 시공을 초월한 예술형식으로서 영속성을 지닌다. 인체에서 가장 중요한 표현수단이 되는 것은 얼굴 표정과 제스처다. 루돌프 아른하임은 인간의 사고(思考)와 감정은 얼굴 표정과 사지(四肢)를 통해 나타내는 제스처에 의해서 가장 직접적이고 친근하게 전달된다고 말한바 있다. 따라서 셔레이드 기법의 중심이 되고 있는 신체언어를 이해하기 위해선 인체에 대한 관찰과 연구가 선행되어야 하며 특히 표정과 제스처에 대한 심도 있는 분석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contsmark1|가. 안면표정(facial expression) 영화는 대사에 의해서보다는 감정이 풍부한 배우의 얼굴을 통해서 관객과의 직접적인 커뮤니케이션을 도모함으로써 강한 호소력을 지닌다. 따라서 영화에선 연기하는 쪽보다는 오히려 상대방의 반응 쇼트(reaction shot)에 중점을 두게 된다. 즉 대사를 하고 있는 인물보다는 듣고 있는 인물의 표정을 클로즈업시켜 관객의 정서적 반응을 이끌어 내는 것이 영화의 속성이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표정연기의 중요성이 대두된다. 사람의 얼굴을 관찰하면 몇몇 부분들 곧 이마의 선, 눈의 크기, 입술의 곡선, 턱의 모양 등이 표정과 깊게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표정을 결정짓는 이러한 요소들 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것은 눈과 입의 움직임이다. 눈은 바깥 세계를 바라보는 유일한 창구이자 내면 세계를 반영하는 마음의 창이다. 인간은 희노애락의 감정표현을 눈에 담을 수 있으며 공포, 희열, 질투, 증오, 분노 등과 같은 격렬한 감정은 물론 자애, 연민, 갈구, 허무, 동경과 같은 미묘한 감정도 눈을 통해 나타낼 수 있다. 인간은 고대로부터 눈의 표정과 매력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갖가지 눈 화장술을 개발하여 왔으며 이와는 대조적으로 눈을 가림으로서 자신의 이미지를 변조시키거나 위장하는 이른바 ‘안경신호’의 효과를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장치의 하나가 검은 안경을 쓰는 것이다. 검은 안경은 정체를 위장하는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하지만, 내심을 드러낸 눈의 동작을 숨기려는 방편이 되기도 한다. 이런 안경신호 효과를 최대한 이용한 영화로 폴 뉴먼의 ‘탈옥’을 들 수 있다. 죄수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는 냉혈 교도관의 거대하게 확대된 검은 안경이 시종일관 관객을 압도하는 영화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이 검은 안경이 깨어짐으로써 관객들은 비로소 공포로부터 해방된다.
|contsmark2|입은 인간의 기쁨과 슬픔을 가장 잘 표현해 주는 기관이다. 웃을 때의 갖가지 입의 형태는 웃음의 내용과 질을 반영하고 있다. 소리 없는 웃음이나 미소는 개성을 살리는데 도움을 주고 우정과 유대를 강화하는데 있어 시각적으로 중요한 요소이다. 슬픈 미소(sad smile)를 짓는 모순된 얼굴이 있다. 눈물짓는 눈동자와 미소를 머금은 입술이 묘하게 조화된 표정이 그것이다. ‘사랑과 영혼’의 라스트 신에서 천국으로 가는 애인의 영혼과 마지막 작별을 고하는 데미 무어의 슬픈 미소는 애절함과 비장미의 극치였다.
|contsmark3|다른 영장류와 달리 사람의 입술은 바깥쪽으로 밀려나 점막의 일부가 드러나 있는 형태이다. 이러한 점막 입술의 또 다른 기능은 성적(性的)인 데 있다. 성적 흥분에 이르면 입술은 더욱 붉어지고 팽창하여 상대의 피부와의 접촉에 더욱 민감하게 된다. 이러한 변화는 또 다른 입술의 변형인 여성 성기에서 일어나는 변화의 자세를 흉내내고 있다. 이런 현상들은 여성들이 수 천년동안 입술을 붉게 칠하여 시각적으로 보다 자극을 주는 모습으로 가꾸어 온 이유를 설명해 준다. 때문에 선천적으로나 인위적으로나 색채가 선명한 입술을 가진 사람은 자동적으로 더 높은 성적 신호를 보내게 된다. 섹스 심벌로서 대중의 인기를 끌고 있는 마릴린 먼로나 브리지트 바르도, 마돈나와 같은 여배우들이 한결같이 두툼한 입술의 소유자였음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contsmark4|여성의 입술은 음순(陰脣)의 의태(擬態)로서 광고에서 강조되는 경우가 많다. 남성의 성기와 유사한 것, 이를테면 아이스크림이나 립스틱, 마이크 같은 것이 벌린 입술 사이로 접근하는 영상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사탕을 물고 있는 붉은 입술이 광고에 자주 이용되기도 한다.
|contsmark5| 다음은 작품 속에 나타난 얼굴 표정과 관련된 셔레이드의 예이다.
|contsmark6|▷‘25시’(감독: 앙리 베르누이유) 2차대전의 와중에서 유태인으로 오인되어 강제 징용을 당한 요한 모릿츠(안소니 퀸)는 전쟁이 끝난 후엔 다시 나찌 당원으로 오인되어 전범재판소로 넘겨진다. 아내의 탄원으로 영어의 몸에서 풀려나 13년의 수용소 생활을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모리츠, 그의 아내 스잔나(비루나 리지)는 소련군에게 겁탈 당한 탓으로 아이까지 낳게 되나 남편을 향한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 기차역에서의 슬픈 해후, 이 때 미국인 기자가 찾아와 플래시를 터뜨린다. “웃어요, 웃어!” 아내와 소련군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를 안고 미소짓는 모리츠의 얼굴이 플래시 소리와 함께 일그러지며 정지된다. 안소니 퀸의 독특한 연기로 빚어낸 라스트 씬의 미소는 흔히 25시적 미소로 불린다. 웃음 속에 숨겨진 진한 슬픔이 자기 의사와는 무관하게 25시적 인생을 살아야했던 주인공의 비극적 운명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contsmark7|▷‘네 멋대로 해라’ (감독: 장 뤽 고다르) 상습 자동차 절도범인 미셀(장 폴 벨몬도)은 애인인 빠뜨리샤(진 세버그)의 고발로 경찰의 추격을 받고 총탄에 맞아 쓰러진다. “빠뜨리샤 너는 최하야.” 알 듯 모를 듯한 말을 남기고 피식 웃으며 자신의 손으로 자기 눈을 감기고 숨을 거두는 미셀. “그게 무슨 의미죠?” 무감각하게 애인의 시체를 바라보다 돌아서는 빠뜨리샤. 죽음마저 희롱하듯 스스로 눈을 감기고 죽는 주인공의 엉뚱한 행동과 애인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서는 여주인공의 뒷모습에 끝 자막이 찍히는 이 영화는 관객의 감정이입을 오히려 차단하고 여운을 단절시키려는 의도에서 사용된 셔레이드이다.
|contsmark8|▷‘밤 기차’ (감독: 야마시다 고우사꾸 )타이틀 백이 끝나면 소화 18년이란 자막과 함께 기차 차창을 통해 흔들리고 있는 여 주인공 쓰유꼬의 상반신이 떠오른다. 그녀는 키모노 차림에 담배를 피우고 있다. 이 첫 장면만 보고도 관객은 그녀의 신분이 기생일거란 것과 그녀가 살아 온 인생살이가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란 사실을 직감하게 된다. 일본 전통 의상인 키모노와 익숙한 솜씨로 담배를 피우는 세부동작, 그리고 한숨처럼 내어 뿜는 담배연기 등이 셔레이드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contsmark9|이 밖에 엘리아 카잔은 ‘베이비 돌’에서 손가락을 빨고 있는 케롤 베이커의 얼굴을 클로즈업시켜 어린 신부의 성적 갈구를 암시하였으며, 로만 폴란스키 역시 ‘테스’에서 딸기꼭지에서 딸기를 따먹는 나타샤 킨스키의 육감적인 입을 익스트림 클로즈업하여 성적 욕구를 반영하였다. 또한 프랑코 제피렐리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도입부에서 첫 키스 직전 황홀하게 연인을 바라보는 올리비아 허시의 눈동자를 확대시켜 사랑에 감전된 여인의 심상을 반영하였다.|contsmark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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