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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식 ‘역사 아끼기’
최진용-MBC 파리주재 PD특파원 jinyong@worldnet.fr

|contsmark0|잘 아시다시피 유럽은 지금 전쟁중입니다. 포성은 발칸 반도에 국한된 것이긴 하지만 유럽 사람들은 혹시 이러다 유럽 전체가 전쟁에 휘말리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으로 발칸의 전쟁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유럽 내 국지전이 유럽 전체의 전쟁으로 확산되는 역사적 경험을 너무나 자주 했기도 하거니와 발칸 반도라는 지역적 특수성이 양차 세계 대전의 악몽을 되살려놓기 때문일 겁니다.주요 방송들도 연일 대부분의 뉴스 시간을 총동원된 특파원망을 통한 전황 보도에 할애하면서 걸프전이래 한 경향이 되어버린 스펙타클로서의 전쟁 중계 경쟁에 돌입함으로써 유럽인들의 불안감을 고조시키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는 듯 합니다.이번 전쟁이 아니더라도 전쟁에 대한 공포는 유럽인들, 특히 제가 겪어본 프랑스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유별납니다. 전쟁을 겪기로는 우리도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역사를 지니고 있건만 우리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입니다.그것은 이곳의 텔레비전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프랑스에서 어느 한 주도 전쟁에 관한 프로그램이 없이 지나가질 않습니다. 프로그램은 대개는 2차 세계 대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일 수도 있고 그 당시의 유태인 강제 수용소를 다룬 다큐멘터리일수도 있습니다. 포맷은 다양하지만 주제는 전쟁의 참상과 비인간성을 고발하고 독일에 짓밟혔던 역사적 치욕을 상기시키기 일쑤입니다. 2차 대전만 놓고 본다면 프랑스가 독일에 나라를 빼앗긴 기간은 4년 남짓입니다. 우리가 일제에 유린당한 35년의 기간과 침탈의 정도를 생각하면 역사에 있어서 잠깐의 치욕으로 간주할 수도 있으련만 프랑스 사람들은 그 치욕을 집요하게 기억하면서 끝난 역사가 아닌 현재 진행형의 역사로 되살려내곤 합니다.작년 한해도 모리스 빠뽕이라는 전직 고관의 독일 점령시절 대독 부역 행위에 대한 심판을 둘러싸고 온 나라가 떠들썩하면서 역사의 심판에는 시효가 없다는 걸 웅변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쿠바 혁명, 천안문 사태, 이란 혁명 등등 세계사 굵직한 사건마다 빠짐없이 계기특집을 챙기는 프랑스 텔레비전에서 정작 2차 대전 승전기념 특집이랄 건 따로 없습니다. 그것들은 항상 보여지기 때문입니다.지금 코소보 전쟁에서 독일은 프랑스와 나토 연합군의 자격으로 우군이 되어 나란히 참전하고 있고, 유럽 통합에서도 두 나라가 주도적 역할을 하면서 어느 때보다도 독불관계는 돈독합니다. 그러나 프랑스 사람들은 독일이 지난 400년간만 보더라도 스물 세 번이나 전쟁을 해야했던 숙적임을 잊지 않습니다. 오히려 두 나라가 유례없는 우호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두 나라 역사에서 준엄하게 따져야할 건 따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 합니다. 그리고 그 중요한 역할은 이 나라 방송의 몫이라는 듯 방송은 치욕스런 역사의 묻혀지고 감춰진 부분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거듭거듭 드러냅니다. 부끄러운 역사의 상처를 자꾸 들쑤셔내 뭐 좋을 게 있겠느냐라는 논리는 이곳에선 들리지 않습니다.요컨대 이들 식의 ‘역사 아끼기’라고나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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