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 PD를 찾아라<2>이협희(EBS 라디오 제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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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안목으로 생각하자 어린이를 위한 환경 프로그램

내가 맡고 있는 "늘 푸른 지구마을"이라는 프로는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라디오 환경교육 프로그램이다. 이 사실은 프로그램 제작에 있어서 늘 이중의 고민과 맞닥뜨리게 한다. 라디오이기 때문에 보여줄 수 없다는 한계와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어떻게 하면 무겁거나 지루하지 않게 끌어갈 수 있을까하는 고민이 그것이다. 얼핏 생각하면 라디오로 환경프로가 어떻게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다. 공장폐수로 오염된 강물이나 보호해야 할 야생동식물들을 라디오로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물론 한계가 있다. 그러나 때로는 라디오이기 때문에 더욱 실감나게 전달할 수 있는 경우도 있다. 얼마전 음식물 쓰레기 문제를 다루었을 때 일이다. tv라면 당장 김포 매립지에 카메라를 들이댔겠지만 라디오로는 보여줄 수 없으니 문제였다. 어떻게 할까.

아이들을 몇 명 데리고 한 아파트 단지도 갔다. 그리고는 가정에서 내놓은 쓰레기 봉투들이 더미로 쌓여 있는 가운데서 몇 개를 골라 뒤져보게 했다. 봉투를 열자마자 악취가 풍겨나오고 국물이 줄줄 흘렀다. 앗!""윽!"..."앗 차거!" 아이들의 입에선 비명이 튀어나오고, 이 집은 엊저녁에 게찌개 해먹었나보다. 저 집은 고기를 다 버렸네 어쩌고 저쩌고 하며 저희들끼리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쓰레기봉투 뒤적이는 소리와 아이들이 저마다 코를 쥐며 떠드는 소리만으로도 훌륭한 인서트를 잡아낼 수 있었다. 흔히 환경 프로하면 공해 현장을 보여주는 고발성, 르포성 프로그램만을 생각하기 쉽다. 물론 우리에게 끊임없이 경각심을 일깨우는 이런 프로그램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겠지만, 좀 더 긴 안목에서 본다면 어린이들을 위한 환경 프로그램이야 말로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는 환경지식의 전달이나 공해현장의 고발 못지 않게, 아니 그 이상으로 살아있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주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른들은 나름대로 어린 시절의 추억을 갖고 있다. 친구들과 함께 뛰어놀다가도 목이 마르면 아무 곳에서나 수도꼭지를 틀어 콸콸 쏟아지는 물을 받아 마시던 기억, 모닥불 피워놓고 콩이나 감자 따위를 구워 먹다가 시커먼 그을음에 옷을 더럽히고 어머니께 혼나던 기억, 겨울이면 강가에서 신나게 얼음을 지치고 내리는 눈을 받아 먹던 기억...그러나 요즘 아이들에게는 이런 기억은 없다. 경제적 풍요가 그렇듯 이들에게는 마실 수 없는 물, 얼지 않는 강물, 회색의 눈 따위가 이미 주어진 것이 되어 버렸다. 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이들은 과연 환경문제를 어떻게 대하게 될까? 혹시 모든 것을 경제논리같은 것으로만 이해하게 되지는 않을까? 이 프로를 만들면서 느끼는 아쉬움중의 하나는 아직도 학교 현장의 많은 선생님들이 "환경교육"하면 어깨띠 두르고 나가서 쓰레기를 줍는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학교에서 환경관련 특별활동을 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특별활동을 하기전과 비교해 무엇이 달라졌냐고 물어보면 열에 여덟,아홉은 "전에는 길거리에 떨어진 휴지를 보아도 그냥 지나쳤는데 지금은 잘 줍는다"는 식의 천편일률적인 대답- 아마도 미리 주입된 정답이겠지만-을 늘어 놓는다. 과연 쓰레게를 잘 줍고 우유팩을 잘 모으면 그것으로 환경이 보존될까? 혹시 그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을 간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 아니들이 컸을 때, 야밤에 몰래 공장폐수를 버리는 기업주나 몸보신하겠다고 공기총 들고 방방곡곡을 떠돌아 다니는 하이에나 같은 인간이 되지 않는다고 무엇으로 장담할 수 있을까? 추수가 한창인 지난 가을 무공해 농사를 짓는 곳으로 메뚜기잡이 여행을 취재갔을 때 일이다. 난생 처음 보는 메뚜기를 정신없이 잡고 잇는 한 꼬마에게 물어보았다. "그거 잡아서 뭐할껀데?" 아이는 한참을 뜸들이며 띄엄띄엄 대답한다. "음...집에 가서요. 음...메뚜기하고 놀꺼예요..." 그 녀석은 집에가서 메뚜기하고 뭘하면서 놀았을까? 진짜 아이들의 모습은 이런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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