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시사 프로그램의 익명성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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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시사 프로그램의 익명성 문제
“‘공인 실명보도’는 경솔한 일”
박형상-변호사
  • 승인 1999.04.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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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연합회보는 지난 4월 8일자 1면 톱으로 “시사고발 프로그램 주춤거린다”는 제하의 기사를 보도한 바 있습니다. 이 기사는 최근의 빈발하는 소송으로 인해 현업 PD들이 심리적으로 위축된 결과 일련의 시사고발 프로그램에서 익명을 사용하는 실태를 점검하였습니다. 고위 공직자와 같은 공인의 경우 명백한 사실이면 실명 보도가 바람직하다는 문제제기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기사에서 ‘오히려 익명처리가 필요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인용된 박형상 변호사가 이에 대한 보충 설명의 필요를 느낀다면서 연합회보에 원고를 보내와 게재합니다. 회원 여러분의 폭넓은 이해에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편집자주>PD연합회 회보 4월 8일자 ‘시사고발 프로그램 주춤거린다’ 기사에 대하여 몇 마디 언급하고자 한다.다만 위 기사의 취재 대상이 된 MBC 의 ‘사회지도층 그들만의 결혼식’ 프로그램을 본인이 직접 시청한 바 없다는 점에서 그 논의의 한계가 있음을 먼저 말씀드린다.위 기사의 논제 핵심은 ‘실명보도의 한계’로 요약될 수 있다. ‘실명보도인가, 익명보도인가’의 쟁점은 지난번 국회 고스톱 의원 명단, 병무비리 연루 사회지도층 명단, 고액과외 연루 사회지도층 명단 등의 공개여하 사례에서도 문제되었었다.그 법적 차원이 약간 다르기는 하나, 고액 탈세자 명단, 부동산 투기자 명단을 국세청이 ‘행정상 공표의 방법’으로 과연 공개할 수 있는가의 논란과도 연관된다. 살피건대 이런 쟁점을 해결할 수 있는 실정법상의 지침규정은 전혀 없다는 점부터 유념하자. 이때까지의 대법원 판례에 있어서도 실명보도의 한계를 명쾌히 제시해 준 지도적 선례는 아직 없다. 아마 사안의 성격상 앞으로도 없을는지 모른다.위 논란에 관한 법리적 관련 쟁점은 이른바 공인론이다. 그러나 우리의 일부 판례에 “공인, 공적인물, 공직자”라는 용어가 꽤 등장되는 것은 사실이나, 그 사용례가 일관적이지도 못하고 그 범주의 기준이 구체적으로 제시된 바도 아직 없다. 오히려 표현의 자유의 보장과 개인의 명예훼손보호라는 두 법익이 충돌되는 경우 그 우열관계의 조정방법은 구체적인 개별사건에서 사회적인 여러 이익을 비교형량하라는 원칙적 관점만을 꾸준히 천명하고 있을 뿐이다.또한 공인과 사인을 획일적으로 구별하여 접근하기보다는 ‘구체적 사건에서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인지 여부, 주관적 비방의 목적이 있는지 여부’를 따로 따져보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최근의 어떤 민사 사건에서는 “… 대중매체의 범죄사건 보도는 공공성이 있는 것으로 취급할 수 있을 것이나, 범죄 자체를 보도하기 위하여 반드시 범인이나, 범죄 혐의자의 신원을 명시할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니고, 범인이나 범죄 혐의자에 관한 보도가 반드시 범죄 자체에 관한 보도와 같은 공공성을 가진다고도 볼 수 없다…”는 판단마저 있었다.요컨대, 언론의 자유라 함은 정치적 언론의 관점에서는 여타 기본권보다 그 우월적 지위가 있음은 분명하나, 개인의 인격권과 충돌하는 경우에 있어서는 설령 그 대상이 이른바 공인이라 하여도 취재보도의 자유쪽이 언제나 우선한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알권리를 내세워도 마찬가지다. 요즘들어 더욱 강조되는 사생활권, 무죄추정의 원칙 앞에서는 더욱 그렇다.그러므로 ‘공인에게는 그 프라이버시권이 포기된다. 공인의 경우는 실명이 원칙이다’라는 식의 주장은 경솔한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더구나 그 보도의 진위를 가리지 않고 절차적 공평의 관점에서 허용해 주고 있는 ‘반론보도청구’ 앞에서는 언론사쪽이 십중팔구 패소하게 된다는 엄연한 소송 현실에서는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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