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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언론은 언론이 아니었다!- 지하철 파업 보도를 보고
  • 승인 1999.05.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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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이제 더 이상 한국의 언론을 언론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인가? 지난번 지하철 파업에 대한 한국언론의 보도태도를 보면 그것은 언론이 아니라 선전선동이었고, 몰상식과 무지와 불공정의 극치였으며, 결국 반(反)언론에 다름 아니었다. 사실조작과 허위, 편파, 왜곡 등 반언론적 행태를 일삼은 언론종사자들 또한 언론인이라는 칭호를 붙여주기에는 도무지 걸맞지가 않다. 언론 고유의 원칙은 고사하고 온갖 나쁜 보도행태를 모두 동원하여 정부와 사용자측의 논리를 전파한 자들에게는 당연히 하수인, 협잡배의 낙인이 돌아가야 마땅하다. 복귀율 조작이나 노조원 감금 기사에서 보듯 전혀 사실이 아닌 내용을 사실처럼 버젓이 기사화하고 파업의 본질은 철저히 외면하면서 일방의 주장과 이익만을 전달하고 도모하는 집단에게 어떻게 언론의 명예를 맡길 수 있단 말인가?사용자측의 논리와 주장을 충실히 보도하더라도 최소한 노조의 파업이유와 배경, 주장도 함께 실어 시민들이 제대로 판단할 수 있도록 했어야 옳다. 또 파업에 반대하는 입장에 설 수는 있지만 최소한의 사실보도는 엄격히 수행했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언론은 이를 완전히 무시하고 언론이 아닌 선전활동에 여념이 없었다. 급기야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은 지난 4월 30일 ‘이런 언론의 반민주적이고 반노동적 보도태도에 대해 저희 언론노동자들은 참담함과 부끄러움 그리고 죄송한 마음에 머리를 들 수가 없습니다’라고 사과성명을 내기에 이르렀다. 진실로 이 지경에 이르러 한국언론에 미래는 있는지 가슴이 막히고 피가 멎는 심정을 가눌 수 없다.이같은 절망감은 실제로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와 민주화의 진전에 따라 우리 언론의 수준 또한 한 단계 높아지리라는 기대가 무참히 꺾인 데서 기인한다. 시대변화에 맞춰 언론 또한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러나 우리 언론은 이에 철저히 역행하는 집단이다. 오히려 스스로는 개혁을 외면하고 자신들의 이익과 기득권을 방어하는 데 급급하다. 이번 파업보도가 정권의 기호에 완벽하게 영합한 것을 두고 이제 언론개혁은 물 건너갔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한국언론에 대한 깊은 절망감의 또다른 원인은 미래에 대한 암담함 때문이다. 도무지 한국언론의 고질병이 치유될 가능성이 없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현재의 소유구조나 제도로는 분명 희망이 없다. 더구나 언론 종사자들이 보여주는 의식과 실력을 보건대 미래는 더욱 어두워 보인다. 그저 시사상식과 국어표기법, 외국어에 좀 능숙하다고 언론인의 자질이 구비된 것은 아니지 않은가!또 한가지 우리를 좌절감에 빠지게 하는 것은 보도내용을 검증하고 징계하는 절차의 부재이다. 이번 지하철 파업에 대한 형편 없는 편파, 왜곡보도에 대해 신문, 방송 가릴 것 없이 전혀 사후검증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신문은 말할 것도 없고, 방송심의를 맡고 있는 방송위원회는 부여된 직무를 포기한 인상이다. 방송사 자체에서도 문제점을 인정하고 사과방송까지 했던 내용을 ‘문제가 없다’고 결정하는가 하면, 자체징계까지 받은 것에 대해서도 ‘무방’하다는 결정을 내리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바로 방송심의기관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한마디로 복귀율 조작기사나 노조원 감금 허위기사, 지도부 내분 허위기사 등 수많은 명백한 오보가 자행되었지만 기사작성자는 누구도 책임을 지거나 징계를 받지 않는 것이 한국언론의 현주소이다.여론을 거스르고 진실을 역전시키는 언론행위는 분노를 증폭시키고 결국에는 역사의 심판에 직면하게 된다. 그것은 지나간 역사가 입증하고 있다. 또 그 과정과 대가가 얼마나 혹독하고 고통스러운지는 그동안 수없이 목도한 바 있다. 뻔히 내다보이는 불행을 도무지 피할 수 없는 듯 보여 참담함을 가눌 길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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