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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체로 보여주는 표현의 매력
소도구·상징요소를 이용한 셔레이드
최상식-KBS 드라마제작국장

|contsmark0|6. 소도구를 이용한 셔레이드그리피스가 영화의 세계에선 생명이 없는 물체들도 연기를 한다는 사실을 밝혀낸 이후, 소도구는 셔레이드 기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표현수단이 되어 왔다. 소도구는 건물이나 배경 등 고정된 세트 부분을 제외하고 작품에서 필요로 하는 이동이 가능한 모든 물건을 총칭하는 용어로 의상이나 동물들도 포함된다. 인류 발달사는 곧 도구의 발달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간의 조상들이 두 발로 일어서서 걷게 된 순간부터 손을 사용해 도구를 만들었고 결국 자연을 정복하였다. 스탠리 큐브릭은 영화 ‘2001년 우주 오딧세이’에서 인류의 조상들이 최초로 도구를 얻게되는 순간을 고도의 셔레이드 기법으로 형상화시켜 놓았다. 400만년 전의 지구, 한 유인원 원숭이가 우연히 동물의 기다란 다리뼈 하나를 주어 장난을 치고 놀다가 무심코 주위에 있는 뼈 조각들을 내려친다. 단단해 보였던 뼈들이 힘없이 으스러지는 것을 본 그는 신명이 나서 정신없이 다리뼈를 휘두르고 부서지는 뼈들의 잔해에 몽타주되어 커다란 짐승들이 쓰러진다. 그는 다리뼈의 위력을 파악하고 다른 유인원 부족들을 제압하기 시작한다. 다리뼈로 일격에 상대를 때려눕힌 그는 승리감에 도취되어 괴성을 지르며 다리뼈를 하늘 높이 던진다. 슬로모션으로 빙빙 돌며 떨어지던 다리뼈가 어느 순간 우주선으로 바뀌면서 시대는 2001년으로 비약한다. 큐브릭은 ‘다리뼈와 도구’를 ‘우주선과 문명의 이기’라는 유사 이미지로 전환시켜 400만년이란 세월을 단숨에 초월시킨 영화사상 전무후무한 비약을 시도하였다. 큐브릭은 이 영화에서 “우리는 어디서 왔으며 광대무비한 우주공간에서 인간이란 존재는 무엇인가”라는 명제를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철학적 물음에 대한 최초의 단서는 다리뼈 하나에서 비롯되었다.
|contsmark1|▷ ‘빈민들’ (감독 : 로베르 브레송)남루한 모습의 빈민들이 식당에 앉아 음식이 든 밥그릇을 서로 차지하려고 밀고 당기며 실랑이를 벌린다. 그 서슬에 밥그릇이 의자 밑으로 떨어져 발 사이로 구른다. 카메라는 무수한 구둣발에 차이면서 구르는 밥그릇을 집요하게 추적한다. 잠시 후 전율하듯 떨고 있던 밥그릇이 정지한다. 그들이 싸움을 멈춘 것이다. 브레송은 밥그릇의 움직임을 통하여 빈민들의 생존경쟁이 얼마나 치열하고 집요한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밥그릇도 연기를 한다는 것을 실감케 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채플린의 전성기엔 그의 신발마저도 스타였다.
|contsmark2|▷ ‘세인’ (감독 : 죠지 스티븐스)악당 윌슨(잭 팰런스)이 살롱에 도착한다. 그러나 텅 빈 실내엔 탁자 밑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개 한 마리 외엔 아무도 없다. 윌슨이 살롱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하자 개는 귀와 꼬리를 내리고 공포에 질린 듯 슬금슬금 밖으로 나간다. 죠지 스티븐스 감독은 이 장면에서 개를 이용하여 등장인물의 악인적 이미지를 최대한 부각시켰다.
|contsmark3|개를 이용한 또 하나의 인상적인 셔레이드는 데이비드 린의 ‘올리브’에서 찾을 수 있다. 방안에서 살인이 자행되고 있는 순간, 밖으로 탈출하기 위해 발로 방문을 긁어대는 개의 필사적인 몸부림을 통하여 그곳에서 얼마나 끔직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 가를 우회적으로 묘사하였다. 이처럼 간접묘사를 하되 급소를 찌르는 표현이 바로 셔레이드 기법이다.
|contsmark4|▷ ‘사운드 오브 뮤직’ (감독 : 로버트 와이즈)마리아(줄리 엔드류스)가 트립가의 가정교사로 초빙되어 처음으로 대령(크리스토프 플러머)의 가족들과 만나는 장면에서 소도구를 이용한 셔레이드가 효과적으로 사용되었다. 대령이 호루라기를 꺼내서 불자 이층에서 7명의 자녀들이 나타나 일렬종대로 보조를 맞추면서 계단을 내려온다. 호루라기라는 소도구와 그것을 부는 행위, 이 두 가지 수단으로 대령의 군인다운 기질과 규율을 중시하는 이 집안의 가풍을 동시에 표현해 주었다.
|contsmark5|이밖에 ‘닥터 지바고’에선 포연 속에 내던져진 안경을 통해 그 주인의 비극적 운명을 예시했으며 ‘스미스 워싱턴에 가다’에는 모자를 통해 주인공의 심리를 추적한 장면도 있다. 또한 ‘장발장’의 은촛대, 제임스 본드의 가방도 작품의 중요한 모티브가 되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 소도구들이다.
|contsmark6|7. 상징요소를 이용한 셔레이드셔레이드 기법에는 여러가지 상징적인 소재들을 동원하여 보다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하는 시도가 있어 왔다. 이런 류의 셔레이드는 주로 예술지향파 감독들이 선호하는 수법으로, 1919년에 발표된 로베르토 비네의 ‘갈리가리 박사의 밀실’을 효시로 하여 푸도프킨과 에이젠스타인의 실험들로 맥을 잇는다. 구로자와 아끼라와 데이비드 린, 그리고 잉그마르 베르히만의 영화들은 상징성과 함께 풍부한 동적 기교들이 구사되고 있다는 점에서 유사성이 있다. 구로자와는 ‘용심봉’에서 도적의 무리들과 홀로 대결을 벌려야하는 무사의 주위에 회오리바람으로 인한 흙먼지가 일게 함으로써 주인공의 분노와 육체적인 힘을 상징화 시켰다. 또한 ‘7인의 사무라이’에는 이글거리는 모닥불을 이용하여 정사를 벌이기 직전 두 남녀의 분출하는 성적 욕구를 형상화시키고 있다. 데이비드 린은 ‘아라비아의 로렌스’에서 주인공 로렌스의 그림자를 사막에 투영시키고, 그 뒤를 수많은 아랍인들이 열광적으로 뒤따르게 함으로써 아랍인의 지도자로 추대되는 로렌스의 카리스마를 부각시켰다. 또한 인도로 가는 길에선 주인공 아지즈가 소개될 때, 영국 관리들이 탄 자동차가 일으키고 간 흙먼지 속으로부터 그를 등장시킴으로써 피지배 민족 인도인의 굴절된 초상을 상징화시켰다.죽음에 대한 환상과 공포를 반영한 베르히만의 영화 ‘제7의 봉인’은 먹구름이 낀 하늘 위를 선회하는 한 마리의 검은 매로부터 시작된다. 검은 매가 상징하고 있는 것은 인간의 목숨을 채가려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죽음의 이미지이다.
|contsmark7|▷ ‘십계2’ (감독 : 크르지스토프 키쉴롭스키)생과 사의 기로에서 병마와 처절한 투쟁을 벌이고 있는 겔러. 막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주인공의 시야에 쥬스잔 속에 빠져 허우적이고 있는 파리의 모습이 비춰진다. 필사의 노력 끝에 간신히 쥬스의 늪 속에서 기어 나와 마치 삶을 확인하듯 힘차게 날개짓을 하는 파리의 모습은 주인공이 죽음의 터널을 벗어나서 곧 소생할 수 있으리란 암시를 주고 있다.
|contsmark8|▷ ‘샤인’ (감독: 피터 힉스)피아노에 천부적 재능을 타고난 데이비드는 아버지의 결사적인 만류를 뿌리치고 음악 유학을 떠난다. 분노한 아버지는 아들 데이비드의 기사가 실린 신문 스크랩을 모조리 불태워 버린다. 안경에 투사된 이글거리는 불꽃 속에 활화산 같이 타오르는 아버지의 분노가 반영되어 있다. |contsmark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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