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24시 - 1인 다역의 라디오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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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24시 - 1인 다역의 라디오 PD
‘숨돌릴 틈’조차 없는 하루…경제논리 치중한 ‘슈퍼맨’ 재고돼야
  • 승인 1999.05.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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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이후 라디오방송사들의 사정은 더욱 나빠졌다. 광고판매율의 격감으로 인해 수입이 크게 줄었고 이에 따라 제작비도 큰 폭으로 삭감됐다. 라디오방송사 모 PD의 말을 빌면 ‘안 그래도 없는 살림에 그야말로 밑바닥까지 갔다’는 것. 이러한 제작환경 때문에 라디오 PD들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1인 다역의 슈퍼맨 역할을 수행한다. 프로그램 진행자부터, 작가, 리포터, 기술, 제작까지 그야말로 직종의 경계를 넘는 크로스 오버 현상이 나타나는 것. 자연 과도한 업무량에 PD들은 그야말로 ‘숨돌릴 틈’조차 없다.생방송 음악프로그램인 의 진행자이자, 연출자이고, 작가인 CBS 김형준 PD는 2시간 방송하고 나면 진이 다 빠진다고 토로한다. “CD를 걸어놓고 청취자 신청곡을 찾으러 음반자료실로 막 뛰어가요. 그 음반을 들고 숨을 헐떡이며 뛰어왔는데 열어보니 내용물이 다를 때가 있거든요. 등골이 오싹하죠.” 청취자가 전화참여하는 생방송 프로그램이라 부조에서 음반자료실까지 뛰는 일을 매번 반복해야 하는 김형준 PD의 ‘아찔한 순간’이다.시사프로그램인 진행자이자 리포터이고, 연출자인 오동선 PD는 제작시간의 부족을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는다. 취재에만 매달려도 시간이 부족한데 <재즈아리랑>이라는 매일 프로그램까지 함께 제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라디오방송 PD들은 ‘프로그램 하나’만 여유있게 할 형편이 못된다. 부족한 인력 속에서 주간 프로그램 하나, 데일리 프로그램 하나는 기본이다.<정연수의 정보가이드> 제작과 편성업무를 맡고 있는 BBS 문태준 PD는 “PD들에게 다역을 요구하지만 다역이 가능한 전체적인 제작환경이 조성되지 않고 있다”고 진단한다. “섭외가 원만하게 진행되지 않는데 원고는 써야 하고, 취재까지 나가야 하는 상황”이 너무도 자주 발생한다는 것이다.환경프로그램인 <녹색리포트> 진행과 데일리 프로그램 <웃는 세상 좋은 세상> 제작을 맡고 있는 이문구 PD 역시 “제작 프로그램과 기타 관리 업무 등이 있어 프로그램 진행에 좀 더 많은 관심을 쏟을 시간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부담”이라고 전한다.방송 출범부터 아나듀오(PD, 아나운서, 엔지니어) 시스템을 도입해 진행과 원고쓰기, 제작 및 운행까지 담당하는 극동방송 PD들은 ‘전문성 부족’을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는다. 정은주 PD는 “PD들이 모든 것을 다 해야 하지만 PD마다 특성이 있어 ‘만능’은 어렵다”고 말한다. 박현준 PD는 프로그램의 질적인 경쟁력이라는 측면에서 1인 다역 시스템은 약점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어차피 한 사람이 하는 일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여러가지를 혼자서 감당해야 하기 때문에, 사소한 실수가 곧 방송사고로 연결되어 한시라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힘든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1인 다역’ 라디오 PD들에겐 다른 PD들이 쉽게 느끼지 못하는 보람이 있다.“청취자들의 반응을 직접 들을 수 있고, 청취자들과 정서적으로 더욱 공감할 수 있어서 좋다.”(CBS 김형준 PD)“제자가 선생님을 때린 사건에 관해 토론했을 때였다. 한 여중생이 전화 참여를 통해 자신의 생각과 고민, 어른들의 일방적인 매도와 문제점을 논리정연하게 제기했을 때 어른과 청소년 그 중간에서 내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과 긍지를 느낀다.”(CBS <라디오토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진행하는 손호상 PD)“내가 기획하고 원고쓰고 제작하니까 스탭간의 갈등요소를 줄일 수 있고, 기획의도에 충실하게 제작할 수 있다.”(BBS 이영준 PD)앞으로 라디오 PD들에겐 더욱 ‘1인 다역’이 요구될 전망이다. 그러나 이러한 ‘1인 다역’ ‘1인 제작’이 경제적인 논리로만 강요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라디오방송 PD들의 공통적인 지적이다.“라디오는 간단하니까 1인 제작이 가능하다는 논리는 잘못됐다. 한 사람이 할 때보다 두 사람이 할 때 프로그램의 질이 더욱 좋아지지 않겠는가.”(BBS 이영준 PD)“프로그램의 성격과 특성에 맞출 필요가 있다. 음악 프로그램의 경우 음악전문 PD가 진행하고 원고 쓰는 것이 오히려 나은 측면도 있지만 종합구성 프로그램의 경우 좀 다르지 않겠는가. 소위 ‘돈 절약’이 1인 제작의 모토가 돼서는 안된다.”(CBS 김형준 PD)“방송은 창조적인 작업의 결과다. PD들이 기계적으로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것이 아닌, 창의력을 발휘할 여유를 주어야 한다.”(FEBC 정은주 PD)결국 ‘경제논리’에 의한 일방통행은 방송 프로그램을 위해서나 청취자들을 위해서도 결코 좋은 방법이 아니라는 점이다. 때문에 “단순히 프로듀서 개개인에게 경쟁력을 가지라고 요구하며 맡겨만 둔다면 결국 경제논리에 파묻혀 본질을 잃을 수 있다. 라디오방송 PD들이 노력하는 가운데 회사도 제작과 조직시스템을 개선하는 뒷받침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CBS 손호상 PD의 지적은 더욱 설득력을 갖는다. <이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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