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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가 고급인력이라구?

|contsmark0|프로그램 모방과 관련한 토론회가 있었다. <청춘> 이후로 벌써 네 번째다. 고해성사도 한두 번이지 이젠 짜증스럽다. 논자들은 어려운 여건에서 프로그램을 만드는 현업자들을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전제하면서 약주고 병준다. 한 참석자가 말한다. 우리 pd들이 고급인력인 줄로 알았는데 모방 시비가 끊이지 않는 것이 안타깝다고. 그 말에 발끈 화가 치민다. 고급인력이라니? 그 근거가 도대체 무엇인가. 입사시험의 치열한 경쟁률인가 아니면 소위 학벌인가 아니면 외부의 구설에 오르내린다는 급여체계인가. 말하는 이의 진심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짐짓 비틀기를 하고 싶어진다. 듣기 좋다고(?) 얼른 그 말에 동의한다면 당장 “고급인력이라면서 그것밖에 못해” 하는 소리를 들을지 모른다는 ‘제발저림’에서만은 아니다. 한때 자신이 엘리트임을 자부했으나 이제는 그것이 빛바랜 채 타성 속에서 서서히 침몰해 가고 있는 pd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몰락한 잔반(殘班)이 문득 자신의 낡은 족보를 보았을 때 엄습하는 알 수 없는 분노 같은 것이라고 하면 너무 자학적이고 감상적인 것인가. ‘청운’을 안고 방송사에 입사하는 pd들에게는 꿈이 있다. 건강한 대중문화의 생산자이자 전파자로, 엄정한 환경감시의 한 중추로, 그리고 작품으로 길이 남는 영원한 연출자이고 싶다고.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프로그램이 처음으로 전파를 타던 때의 감동은 사라지고 사명감은 퇴락해간다. 그리고 현실과 타협한다. 그것은 우선 구조화된 제작여건의 열악성이다. 우리 방송의 발달사를 보면 소프트웨어의 역량보다 하드웨어의 확산이 훨씬 앞섰다. 그 결과 방송프로그램의 대부분을 외국의 것으로 채워야만 했다. 외국 프로그램은 시청자를 위한 상품이면서 그에 앞서 제작자의 텍스트였다. 자연히 ‘보고 베끼기’는 제작 능력을 키우는 공인된 수단이었으니 도덕적으로 아무 문제가 될 수 없었고 법적으로는 당시엔 논외의 사안이었으리라. 다음으로 철학의 부재(不在)다. 권력에 순치된 채 허겁지겁 달려온 우리 방송에 가치의 일정한 지향체계가 있을 리 없다. 그 자리에 결과주의 시청률주의 센세이셔널리즘이 또아리를 틀었다. 처음엔 후진국 방송의 불가피한 발달과정으로 시작됐던 ‘보고 베끼기’가 도덕적 불감증 속에 일상화되면서 이젠 제작진 스스로가 한술 더 뜬다. 실험적이고 창의적인 프로그램으로 도전하기보다 발빠르게 외국의 프로그램을 잘 모니터링해서 ‘베끼면’ 잘 나가는 pd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것이 우리 방송만의 문제는 분명 아니다. 고속 성장을 줄달음쳐 온 우리의 근대화는 각 부문에 걸쳐 질보다는 양적 성장의 논리로 일관했다. ‘더 빨리, 더 싸게, 더 많이’는 올림픽 구호의 한국적 변용이다. 돌아보라. 산업계에서 학계에서 예술계에서 심지어 신문에서조차 베끼기는 횡행했다. 우리 사회 전체가 공짜 승차의 업보를 안고 있는 것이다.이런 마당에 고급인력 운운은 결코 듣기 좋은 말이 아니다. 좁은 국토, 알량한 시장에서의 상대적 지위가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더더욱 우리가 받은 교육은 창의성과는 인연이 먼 주입식의 암기교육에 권위주의 집단주의 문화다. 우리의 교실은 개성과 자유로움, 다양함이 존중되며 활성적인 토론과 적극적인 표현이 미덕이 되는 그런 곳이 아니었다. 각자 지나간 학창시절을 잠깐만 반추해 보라. ‘파리의 택시운전사’ 홍세화의 신간 ‘세느강은 좌우를 나누고…’를 보면 그 유명한 ‘똘레랑스’ 말고도 매우 인상적인 대목을 읽을 수 있다. 그 중의 하나가 프랑스 교실의 창의성 교육이다. 프랑스에서는 아름다움을 보는 눈과 미적 상상력을 계발시키기 위해서 중학생까지는 미술시간에 석고 데생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똑같이 그리기’나 ‘잘 그리기’가 아닌 ‘창조적 개성’과 ‘아름다움을 보는 눈’을 키워주는 것이 교육의 지향인 것이다. 미술시간이라면 일제히 아그리파를 그리는 장면에 익숙한 우리로서는 당연히 뒤통수를 맞는 느낌이 들 수밖에 없다. 창조는 일조일석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것이다.그래서 우리 방송의 창의력 결핍을 성토하는 논자들한테 호소하고 싶다. 현재의 한국 방송은 결코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진 것이 아니다. 우리의 굴절된 산업화, 획일화된 교육, 단절된 전통이 빚어낸 총체적 산물임을 직시해달라는 것이다. 방송에 대한 기대와 애정은 감사하지만 그것이 ‘방송학대’로 치달아서는 아무런 생산성이 없다. 모방을 빚어내는 구조와 환경에 대한 철저한 분석없이 현상에 대한 단죄만을 하는 것은 정녕 도움이 안 된다. 이런 가운데 눈길을 끄는 기사가 있다. 세계 최고의 공영방송이라는 영국의 bbc가 젊은 피를 수혈하기 위해 방송경험이 전무한 다섯 명의 젊은이들을 채용해 새로운 오락 프로그램의 기획을 맡겼다는 내용이다. 4천명이 응모자중에서 학력도 나이도 교육수준도 감안하지 않고 파격적으로 다섯 명을 선발했는데 아마도 선유경향도 없고 지극히 창조적일 이들을 통해 참신한 아이디어를 얻고자 하는 뜻으로 보인다. 이 발상도 참 창의롭지만 문득 떠오르는 자조(自嘲)가 있다. 그 다섯 젊은이들이 한국의 방송사에 오면 어떻게 될까 하는 것이다.<본보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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