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가 쓰는 대중음악 칼럼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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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가 쓰는 대중음악 칼럼 <4>
표절은 그저 나무일 뿐,이제는 숲을 보자
김우석< KBS 라디오2국 >
  • 승인 1997.03.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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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지난 1월 30일 각 방송사의 음악 프로듀서들로 구성된 단체인 ‘가요자율심의위원회’에서는 ‘표절가요판정위원회’를 설치하기로 결정했다. 이것은 대중음악 발전에 저해가 되는 현상을 최대한 막아보려는 프로듀서들의 자구적이며 애정어린 노력의 발로로, 박수로 환영해 마지않아 마땅한 일이겠지만, 한편으로는 우리의 대중음악이 도대체 얼마나 망가졌길래 이렇게 단속반(?)을 구성해야 할 지경이 되었는지 씁쓸해 지기도 한다. 게다가 분위기의 전향적인 전환없는 사후단속이 과연 얼마나 실효를 거둘 수 있을 지 예상해 본다면 더욱 눈앞이 캄캄해 지기에 가슴이 답답하다.일단 표절에 대한 판정은 철저히 양심에 관련된 문제라는 것에 주목해보자. 어떠한 창작곡이 특정한 기발표곡과 유사한 점이 발견된다 하더라도, 불과 12개에 불과한 음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지는 가락이 비슷한 진행을 보일 개연성은 얼마든지 있다. 따라서 창작자가 철저히 부인하는 한, 그 누구도 100%의 확신을 갖고 표절 판정을 내릴 수 없다는 것이 첫번째 문제이다.두번째로, 표절임이 확실한 창작곡이 판정 전에 시장에 풀려서, 방송의 강력한 지원을 받으며 음반 시장의 최대 수요를 이미 충족시켜 버렸다면, 사후의 판정 및 방송금지로 이어지는 일련의 조치가 과연 어떠한 효과를 나타낼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 과거에 표절 판정을 받은 많은 가요들이 모두 마찬가지였듯이 이미 방송에서 밀어줄 만큼 밀어주고, 팔 만큼 다 팔아치운 다음에 그저 뒷북으로 남을 것이 뻔하다.셋째로, (정말 그럴리는 없겠지만) 만약 표절 가요를 100%의 확신을 가지고, 그 음반이 시장에 풀리기 전, 방송심의 단계에서 모두 적발해서 철저하게 봉쇄해 버렸다고 치자. 의혹의 대상이 되던 작곡가와 가수들이 모조리 사라져버린 이후에, 과연 현재 수용자들의 입맛을 충족시킬 우리의 대중음악이 존속될 지 의문이다. 이렇게 되면 남은 것은 그야말로 시스템의 해체이다.그러니 아무리 고민을 해봐도 속시원한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 것도 당연하다.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자면 우리나라의 대중음악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선을 넘어도 훨씬 넘어버린 것같은 기분이 든다.자, 여기까지가 우리가 최대한 개선의 노력을 기울인다 하더라도 그 실효를 거두기가 막막한 현재까지의 상황이다. 그럼 그 시작은 어디냐고? 뻔하지 않은가? 따지고 보면 다 우리가 파놓은 함정인 셈이다. 이제부터는 어떻게 하면 우리의 대중음악을 여기에서 끌어내느냐를 끙끙대며 생각해 내야할 시간이고 말이다.시작은 단순하다. 시청률에 눈먼 프로듀서들의 ‘스타만들기 상술’로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동일한 시간대의 상대 프로그램보다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 가장 손쉬운 방법은 강력한 스타를 가공해 내는 것이고, 그것을 이용하여 머릿수 장사를 하는 것이다. 작전은 대단히 성공적이었다. 이젠 경쟁 채널에서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프로그램이라는 진열장에 내놓을 물건이 필요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신제품을 자꾸 생산해 내는 거다. 제작자 측에서 보자면 이건 정말 기가막힌 성수기였다. 물건을 빨리 갖다 대야지... 그러다보니 가끔씩, 아니 자주 조악품들도 등장했다. 창작 능력이 없는 이들에게는 그야말로 된다는 작곡가들을 모셔다 붙여주었다. 이제 상황은 명확해졌다. 시장의 수요와 공급도 적당히 맞아떨어지기 시작했고, 되는 사람은 되고, 안되는 사람은 영원히 안되는, 거의 독.과점의 형태로 굳어지게 되었다.이렇듯 이른바 되는 이들의 경쟁에서 가장 손쉽고 빠른 길은 될만한 원곡을 적당히 재처리해서 납품하는 것이었다. 그것을 우리는 정말 화끈하게 한번 밀어주었다. 결과는 우리나라 대중음악 역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이었다. 1백만장, 2백만장 판매...... 이건 정말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그 불황 속에서도 불구하고 우리의 생산자와 매개자는 구매력을 보유한 10대라는 거대한 수용자를 발굴해 낸 것이다. 그리고 그 놀라운 판매 기록이 연이어 갱신되면서 3자간의 결속은 나날이 단단해져만 갔다. 그야말로 삼박자가 절묘하게 들어맞은 것이다.그러는 와중에 우리는 선언했다. 더 이상의 표절은 용납하지 않겠다고. 일부 제작자들과 수용자들은 기가 막힐 노릇이다. 지금까지는 잘 밀어주다 이제와서 왜...... 하지만 이제는 정말로 이 사태의 주범인 우리가 나서서 이 단단한 고리를 끊어야 할 때다. 상황은 생각보다 어렵다. 우리 모두가 똘똘 뭉쳐서 노력해도 될까 말까한 상황이라 이거다. 아무리 생각해도 표절의 문제는 표절에만 있는 것 같지가 않다. 표절은 그저 나무일 뿐이다. 다음회에는 숲을 한번 보도록 하자.|contsmark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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