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현장 비평이다-방송비평위원회 보고서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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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현장 비평이다-방송비평위원회 보고서 14
끝없는 온정 호소 속에 끝없는 고민도 계속되고 있는가ARS 모금프로그램에 바라는 몇 가지
  • 승인 1999.07.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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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97년 10월 kbs <사랑의 리퀘스트>를 시작으로 대한민국 방송에는 소위 ‘ars 모금 프로그램’ 이라는 범주가 생겼다. 소수 소외계층을 위한 성금모금프로그램에 전화응답서비스를 이용함으로써, 새로운 성금모금 풍속도를 만들어 낸 것이다. imf 체제가 시작되면서 어려운 이웃에 대한 돌아봄이 요구되자 이런 프로그램은 더욱더 증가했다. 결식아동 돕기부터 시작해서 실직가정 겨울나기 돕기, 북한 비료 보내기, 결식 노인과 무의탁 노인 돕기 , 그리고 얼마 전 마이클 잭슨 공연과 함께 세계 불우아동 돕기까지 -ars는 각종 특집 프로그램에 어김없이 나타나 시청자들에게 한 통화의 온정을 부탁했다. 그리고 각 방송사의 정규 프로그램으로도 자리를 잡았는데, kbs의 <사랑의 리퀘스트> <힘내세요 사장님>, sbs의 <아주 특별한 사랑> 등이 그것이다.이런 프로그램에 대한 대부분의 반응은 ‘이제 드디어 방송이 공영성을 되찾았다’에서부터 시작해 ‘우리 민족의 품앗이 정신이 만든 사랑의 기적’까지 대부분 긍정적이다. 모금 프로그램에서 으레 보게 되던 길다란 줄과 어떤 단체에서 얼마를 기부한다는 식의 지겨운 인터뷰를 벗어나, 혹은 신문 등에 기부금 액수에 따라 사진과 활자 크기가 달라지기도 하는 -소위 액수로 정성이 가늠되는 그런 장면을 더 이상 보지 않게 된 것도 이 프로그램의 미덕이 아닐까 한다.이에 방송비평위원회는 소위 잘 나가는(?) ars 모금 프로그램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동어반복하기보다는 새로운 형식과 고민으로 거듭나기를 바라며 몇 가지 바라는 점들을 제시하고자 한다.첫째, 어렵고 소외된 계층을 어떻게 도와줄 것인지에 대해 명확히 밝혀야 할 것이다. 즉 어려운 이웃을 돕겠다는 마음으로 온정을 전했지만,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자신의 돈이 어떻게 쓰여지는지 모른다. 얼마 안 되는 1,000원이나 혹은 종종 등장하는 2,000원짜리 한 통화지만 시청자들은 자신의 정성이 “어려운 이웃을 위해 쓰일 것이다”란 모호한(?) 말만 들어야 하는가 말이다. 프로그램 제작단계에서부터 모금액의 운영주체와 사용처, 사용방법 등에 대한 분명한 계획이 세워져야 하고, 프로그램을 통해서는 시청자들에게 이 부분을 상세하고 비중있게 밝혀줘야 할 것이다. 물론 가끔 프로그램을 통해 모금된 돈이 어떻게 쓰였는지 그 뒷 얘기가 전해지기도 하지만, 그런 시간이나 자리가 정례화되어 있지 않다. 이런 관행들은 자칫 ‘시청률’과 ‘모금’에만 열을 올리는 것 같은 인상을 주기 쉽고, 또 프로그램에 대한 시청자들의 기본적인 신뢰감을 떨어뜨릴 우려가 있다. 그 모금액의 사용과 관련한 결산 문제들을 매번 시청자들에게 보여주기 어렵다면, 사보 등의 프로그램이 아닌 다른 형식, 다른 매체를 빌려서라도 이런 사항들을 분명하게 밝히는 노력들이 있어야 할 것이다.둘째, 과도한 편성과 전형적인 ars 모금프로그램의 형식에서 벗어나려는 노력들이 있어야 할 것이다. 대부분의 ars 프로그램은 시청자들의 측은지심을 자극하는 eng물과 700번호를 알려주는 mc멘트와 연예인들의 쇼가 대부분인 스튜디오 진행으로 구성되어 있다. sbs가 새롭게 편성한 <아주 특별한 사랑>의 경우 어떻게 하면 모금 프로그램 같지 않은 모금프로그램을 만들 것인가가 기획의 화두가 되었다고 전해지지만, 콘서트를 마친 가수들은 여전히 “여러분의 정성을 700-××××으로 표현해주세요”라는 멘트를 반복한다. 이런 형식에 시청자들이 질려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봐야 한다. sbs가 연례 특집으로 3년째 하고 있는 행사는 올해 몇 통의 전화로 새로운 기록을 세울것인가로 관심을 끌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는 첫 해 80만 통화, 이듬해 100만 통화, 올해 60만 통화로 끝났다. 예년 프로그램과 완성도 측면에서 별다른 차이가 없었던 것을 염두에 둔다면, 시청자들은 이미 ars 프로그램의 과도한 편성과 일률적인 형식에 염증과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이런 형식이 “모금액수를 늘리는데 가장 유효한 것”으로 검증되어 왔기 때문에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이 필요하다. 셋째, 어려운 이웃들과 소외층을 양산하는 우리 사회구조의 문제들에 대한 접근이 필요하다. 매번 얼마씩의 성금을 모금하는 것만으로 이런 소외계층의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ars 프로그램들은 고통받는 일개인을 소개함으로써 그런 문제들이 자칫 그 한 사람의 문제인 것처럼 보이게 할 우려가 있다. 물론 이런 소외계층을 양산한 사회구조적인 측면까지 ars 프로그램이 모두 지적하고 조명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프로그램이 이 부분을 나눠 담당할 수도 있겠지만, ars 프로그램도 이런 보다 근본적인 시각들을 제시하는 노력들을 해야 할 것이다. 사실 성금한 사람들은 십시일반의 심정으로 전화를 건 평범한 사람들이다. 빈부에 관계없이 한 통에 천 원 정도의 돈을 내는 그런 일에 우리 사회의 소위 ‘가진 계층’이 얼마나 참여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그러고보면 그 수천만 원에서부터 수십 억에 이르는 그런 모금액들은 imf 이후 더욱 얇아진 서민들의 주머니에서 나온 것이 분명하다. 이런 엄연한 현실을 양산한 구조의 문제를 외면한 채 계속 성금 모금에만 열을 올린다면 ‘앵벌이 방송’이란 과격한 비아냥에서도 마냥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ars 모금프로그램이 도입되던 초기, 시청자들이 700서비스로 어떻게 성금할 수 있는지 전화시범 장면이 빠지지 않고 등장했었다. 이제는 제작자, 시청자 모두 그런 걸 생략해도 될 만큼 ars 모금프로그램은 보편적인 형식으로 자리잡았다. 바로 이때, 너무나 익숙한 이 형식을 다시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pd연합회 방송비평위원회 토론 정리 : 서혜진 교통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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