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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결’과 ‘충돌’ … 논쟁속에 발전 거듭소련의 몽타주 이론

|contsmark0|“영화는 모든 예술 중에서 인간에게 가장 유익한 것이다.” 불세비키 혁명을 성공시킨 레닌의 이러한 발표는 소련영화 중흥의 밑거름이 되었다. 베르토프(dziga vertov)는 레닌이 강조한 혁명의 정신을 충실히 전달하기 위해 기록영화 부분에 노력을 쏟았다. 그는 ‘키노 푸라우다’란 뉴스영화에서 오늘의 뉴스와 과거의 낡은 뉴스 필름을 대비시키는 독특한 편집 기교를 사용했다. 전시에 황량한 대지를 달리는 탱크는 혁명 후 땅을 갈고 있는 트랙터로 병치되었고, 제정 러시아 시절 화려한 연회를 즐기는 니콜라이 2세의 근엄한 모습은 셔츠 차림으로 노동자들 앞에서 열성적으로 연설을 하는 레닌의 모습으로 대체되었다. 이것은 국민들에게 혁명의 당위성과 혁명정부에 대한 신뢰성을 고취시키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두 개의 장면을 병치시켜서 개별적인 장면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고자 한 베르토프의 이러한 시도는 에이젠스타인이 몽타주 이론을 정립시키는데 직접적인 계기를 주게된다.클레쇼프(lev kuleshov)는 미국영화의 비밀이 빠른 편집과 클로즈업의 활용, 그리고 평행액션(=교차편집)에 있음을 간파하고 몽타주의 본질을 밝히기 위해 많은 연구를 했다. 그는 하나의 쇼트는 다른 쇼트와의 관계 속에서 의미가 발생된다는 것을 밝히고, 영화는 몽타주를 이용해 재료를 분해하고 재구성하여 궁극적으로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몽타주가 소재의 속성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은 곧 현실의 조작을 의미한다. 몽타주의 이러한 속성을 이용하여 가공의 현실을 만드는 편집기법을 클레쇼프 효과(kuleshov effect)라고 부른다. ‘벽돌쌓기’로 비유되는 클레쇼프의 몽타주는 부드러운 전환과 눈에 띄지 않는 매끄러운 편집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클레쇼프는 글을 통해 몽타주를 처음 만든 사람은 그리피스이나 몽타주에 관한 이론적 고찰은 자신이 최초로 시작하였다고 거듭 주장하고 있다. 푸도프킨(v. j. pudovkin)은 클레쇼프의 몽타주 이론을 더욱 발전시켰다. 푸도프킨은 영화의 편집이 관객의 호기심을 자연스럽게 인도하고 극적 액션을 중단 없이 발전시키며 쇼트와 쇼트간의 의미적 연속성을 살려야한다고 믿었다. 반면 에이젠스타인은 몽타주를 이미지의 충돌로 파악하였다. ‘연결’과 ‘충돌’ 로 대표되는 두 천재의 상반된 견해는 그들이 만든 영화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고도의 실험성과 지적인 호소로 일관하였던 에이젠스타인의 영화와는 달리 푸도프킨의 영화는 따스하고 감성적인 몽타주로서 관객의 정서 깊숙한 곳으로 침투한다. 대표작 ‘어머니’(1926)에서 그는 힘차게 행진하는 시위 군중의 모습에 얼음이 녹아 흐르는 빙하(氷河)를 몽타주시켜 사회적 압제를 깨고 나오는 인간 홍수의 통합된 이미지를 성취코자 했다. 다음은 푸도프킨의 연출일지에 담긴 실험보고의 일절이다.“‘어머니’에서 나는 심리적 표현을 배우에 의존하지 않고 몽타주에 의해서 표현하려고 시도하였다. 감옥에 갇혀 있는 주인공이 동지들로부터 내일 구출된다는 밀서를 받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기쁨의 표현을 영화적으로 표시하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상기된 배우의 얼굴과 꽉 쥔 주먹, 두근거리는 가슴, 이글거리는 두 눈을 클로즈업하여 나타내고, 그 화면을 다음과 같은 쇼트들과 몽타주 했다. 물살이 빠른 봄의 개울물, 수면에 빤짝이는 햇살, 양어장에서 날개 치는 물새, 마지막으로 웃고 있는 아기, 이런 이미지들에 의해서 나는 죄수가 느낀 희열을 훌륭히 표현해 낼 수 있었다.”1925년 에이젠스타인(sergei eizenstein)은 약관 27세의 나이로 세계 영화의 영원한 고전이 될 ‘전함 포템킨’을 발표한다. 코사크 기병들이 인정사정 없이 내려치는 칼, 여인의 깨진 안경, 쓰러지는 시민들, 피로 얼룩진 얼굴 등이 교차되면서 전개되는 대규모의 학살… 인력의 몽타주(montage of attractions)로 불리는 에이젠스타인의 몽타주는 비유, 상징, 이미지의 충돌을 이용하여 관객을 끌어당기는 강렬한 힘을 갖고 있다. 오뎃사 계단 장면에서 군중의 혼란과 공포와 슬픔을 그토록 생생하게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러한 몽타주 기법을 적절하게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에이젠스타인은 자신이 주장한 다섯가지 몽타주 원리를 여기서 모두 보여 주고 있다. 구르는 유모차와 이를 바라보며 경악하는 청년과 부인의 얼굴을 절묘하게 교차시키고 시간 경과에 따라 편집의 속도를 증가시켜 관객의 흥분을 고조시킨 운율의 몽타주(metric montage), 짜르 군대의 경직된 행진과 흩어지는 군중의 소란이 대비된 율동의 몽타주(rhythmic montage), 아들을 안은 어머니에게 총을 겨누며 다가오는 군대의 열과 계단을 가로지르는 그림자의 대비, 즉 명암과 감정의 갈등을 통한 음조의 몽타주(tonal montage), 운율 율동 음조의 몽타주가 합쳐져서 영화 전체에서 표현되는 배음의 몽타주(overtonal montage), 그리고 대리석으로 된 세 개의 사자상을 1)잠자는 사자, 2) 잠에서 일어나는 사자, 3)얼굴을 들고 포효하는 사자의 순서로 연속편집해 민중봉기를 상징한 지적 몽타주(intellectual montage)가 바로 그것이다. 몽타주의 백미로 후대 영화학자들을 흥분시킨 이 장면은 에이젠스타인의 영화에선 ‘돌들도 외친다’라는 유명한 평을 낳았다. 몽타주는 한마디로 부분들을 결합해서 특정한 효과를 나타내는 영화적 기교라고 간단히 정의할 수 있다. 이러한 전제 아래서 클레쇼프, 푸도프킨, 에이젠스타인은 각자 다양한 몽타주의 가능성을 탐색하였다. 클레쇼프는 재료의 조직으로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할 수 있는 몽타주 기법에 몰두하였고 눈에 띄지 않는 자연스런 편집을 지향하였다. 클레쇼프의 이론을 계승한 푸도프킨은 몽타주란 사건들을 잘 선택하고 연결해서 현실을 보다 인상적으로 묘사해야 한다는 주장 아래 사실주의 몽타주 이론을 고수하였다. 이와 달리 에이젠스타인은 급작스런 비약에 기초한 충돌의 몽타주를 주장하였다. 푸도프킨이 쇼트간의 조리 있는 연결로 이야기를 선명하게 전개하고자 한 반면 에이젠스타인은 쇼트와 쇼트 사이의 급작스런 비약이 초래하는 충돌로 정서적 반응을 얻고자 하였다. 일반적으로 연결의 몽타주가 삶의 순간들을 그럴듯하게 연결시켜 현실에서 일어나는 것과 같은 느낌을 주려고 했다면 충돌의 몽타주는 인간의 삶을 단편적인 조각들로 재구성해 새로운 리얼리티를 창조하려 했다고 할 수 있다.몽타주 이론에 대한 두 천재의 대립되는 주장과 논쟁은 소비에트 영화 발전의 동력이 되었을 뿐 아니라 세계 영화 발전에도 크나큰 기여를 하였다. 특히 몽타주의 잠재력을 영화에 국한하지 않고 예술과 문화 전반으로 확대하여 하나의 미학이론으로 전개시킨 에이젠스타인의 탐구정신은 시대를 초월하여 높이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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