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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말 프로듀서?홍경수KBS TV2국

|contsmark0|입사해서 4년차까지 정말 신났다. 매일매일 새로운 일들이 기다리는 직장, 함께 일하는 사람과의 멋진 호흡 그리고 무언가를 만들 수 있는 일을 한다는 것이 적지 않은 즐거움을 주었다. 일과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밤늦게까지 예고의 문안을 고민하는 시간도, 일요일에 회사에 나와 프로그램 아이디어를 생각해내는 일도 즐거움이었다. 이 즐거움이 입사 초년생의 첫사랑같은 열정이었는지 모른다고 자문해보지만 분명한 것은 그에 못지 않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스스로 생각한 것을 즉각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위치여, 고맙고도 감사하다.만든다는 것, 이것이 얼마나 커다란 즐거움을 주길래, 내가 만났던 수많은 인기인들도 하나같이 자신이 만드는 것에 그렇게 큰 자부심과 만족감을 보였을까? 음악이면 음악, 연기면 연기, 이미지면 이미지, 이제는 몸까지…. 인기인들과의 대화 도중 내 자신은 내가 만드는 것에 얼마나 만족하고 있는지 스스로 가늠해보고는 다시 대화를 잇곤 했던 일이 이제는 까마득하다.요즘은 스스로 만든다는 것에서 점점 멀어져가고 있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려는 의욕도 약해졌으며, 이런 나를 꾸짖거나 아니면 잘 유인해서 새로운 것을 만들게 할 선배나 장치도 안보이는 것 같다. 누구의 말처럼 비전도, 신뢰도, 의욕도 약해진 프로듀서의 모습이다.프로듀서. 내 이름 석자를 쭉 따라오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따라다닐 프로듀서란 무엇인가? 만드는 사람 아닌가? 어떤 선배는 이렇게 설명했다. “우주 삼라만상에는 무수한 기호들이 있다. 이 기호들 중에는 아름다운 기호들도 혼재되어 있다. 프로듀서는 아주 예민한 안테나를 가진 사람으로 이것들을 포착해 걷어올리는 사람이다. 그래서 프로듀서에게 필요한 것은 감각의 안테나를 날카롭게 벼리는 것이다.”우리 프로듀서들의 감각의 안테나가 무뎌진 것인지 어쩐지 프로그램 모방·표절이 방송계의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방송프로그램 모방관련 토론회에 참석했다. 모방·표절의 원인을 학자들은 제작자의 부도덕성과 게으름에서, 제작자는 시청률 지상주의와 부족한 시간 등 구조적인 문제에서 원인에서 찾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디 문제의 원인이 하나일 수 있겠는가마는, 모방·표절의 행위의 주체가 프로듀서고 또 이런 모방·표절을 강요하는 구조와 환경이 있다면 이것을 개선해야하는 것도 결국은 프로듀서가 아닐까?프로듀서가 마음껏 감각의 안테나를 벼리기만 하면 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는 것일까? 어쩌면 거창한 구호보다는 작은 실천이 아닐까? 프로듀서들이 서로 프로그램에 대해 더 자주 이야기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끌어낼 수 있는 장치(조연출만을 상대로 한 아이디어 콘테스트, 예고 콘테스트?)를 만들고, 짧은 기획기간을 늘려달라고 당당히 요구하고, 한 명 한 명의 아이디어를 모아 아이디어뱅크를 만들고…. 그러기 위해서는 프로듀서들이 만나야 한다. 더 자주 만나고, 더 많이 이야기하고, 더 많이 모여야 한다. 그래야만 프로듀서가 진정 만드는 사람이 되는 날이 온다. 예술이란 ‘아름다움과 참됨, 선함을 가로막는 온갖 불순한 것과의 치열한 싸움에서 얻어지는 결과물’이기 때문이다.|contsmark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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