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종료 & 노·정 합의 내 생각은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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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종료 & 노·정 합의 내 생각은 이렇다
  • 승인 1999.07.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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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민주적이고 개혁적인 방송법 제정’을 요구하며 연대파업에 나섰던 방노련은 지난 26일 국민회의와의 합의안을 도출해 어제(28일) 오전 6시부터 파업을 종료하고 현업에 복귀했다.그러나 파업에 참가한 대다수 pd들은 노·정 합의안에 대해 ‘전혀 개선된 바 없는 빈껍데기 안’이라며 분통을 터트리고 있다. 파업의 시작과 그 끝. 무엇이 문제였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할 지 pd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편집자>
|contsmark1|침묵과 냉소에서 벗어날 때 양승동kbs tv1국지난 월요일 오후 pd총회장.“이걸(합의문) 들고 어떻게 사무실로 되돌아 갈 수 있습니까?” 이번 방송법개혁을 위한 파업투쟁에 적극 앞장섰던 후배 pd들의 허탈한 심경으로 한 말이다. 그러나, 파업은 끝났고 돌아와야 했다. 어떤 pd는 분노를 삭이지 못한 채, 또 어떤 pd는 그래도 조금은 안도하는 심정으로….이번 파업이 옳았는지 또 철회방식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는 많은 논의가 있을 수 있으나 생략하기로 하고, 조합원의 입장보다는 pd로서 이번 파업에서 느낀 것 한 두가지만 말하고 싶다.먼저, 이번에 가장 아쉬웠던 것은 보름동안 침묵을 지킨 선배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후배 pd들이(주로 20기 이하) 한여름의 폭염과 폭우 속에서도 흐트러지지 않고, 또 규찰활동을 한다고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고생하는 모습과 선배들의 침묵은 서로 어울리지 않았다. 특히, 과거 노조나 pd협회에서 리더쉽을 보여줬던 선배들의 침묵에 실망하는 목소리가 많았다.‘정권으로부터의 방송독립’이라는 대의 명분은 옳지만, 이 시점에서 파업까지 해야하나 하고 선뜻 참여하기가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침묵을 하나의 의사표현으로 선택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파업이 끝날 때까지 두 주일이 지나는 동안, 선배로서 후배 pd들에게 자신의 견해와 솔직한 심정을 공석에서나 사석에서나 밝힐 시간을 거의 갖지 못한 것은 문제가 있었다는 생각이다. 혹시 ‘너희들도 고참돼 봐라’ 하는 냉소주의도 한몫한 것은 아닐까?이번 파업을 통해서 후배 pd들을 다시 발견한 것이 개인적으로 내가 얻은 소득중의 하나다. 입사 11년차인 나는 투사적 기질이 부족한 것 같다. 구호 외치고, 파업가를 부르는 게 갈수록 어색해진다. 그래서 끝까지 가열차게 투쟁하자는 소위 ‘강성’ 후배 pd들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조하지는 못한다. 오히려 파업열기를 자제시키는 쪽이라고 할까? 하지만, 개인적인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앞장선 후배들에게서 그 순수한 열정과 아름다움은 충분히 읽어낼 수 있었다.현실의 벽을 넘지 못한 채 일터를 돌아오는 후배들의 절망감은 클 것이다. 그 순수한 열정과 반비례해서. 절망을 극복하고, 그 열정과 동력이 pd집단과 프로그램 속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이제 선배pd몫이다. 그동안 침묵과 냉소에서 벗어나 속 깊은 대화가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contsmark2|조합원은 대상이 아닌 주체다이채훈mbc 교양제작국
|contsmark3|대화의 상대인 정부여당이 콧방귀도 안뀌는데 파업이 되겠는가 처음엔 자신이 없었다. 임시국회가 문을 닫았을 때 ‘맨땅에 헤딩하는 느낌’으로 곤혹스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10여년의 공정방송 투쟁을 결산하는 중요한 파업이라는 점, 나아가 20세기의 후진적 방송제도를 개혁하여 좀더 이성적인 21세기를 준비하는 ‘선한’ 투쟁이라는 점에 대해 조합원들이 굳건한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이번 싸움은 비록 길어지더라도 해볼 만 하다는 확신이 생겼었다. 그러나 집행부는 조합원들의 정서와 거리가 먼 ‘합의서’를 통해 조합원들의 신뢰를 잃고 말았다. 늘 그러했듯 지도부는 책임이 큰 만큼 일이 잘못되면 온갖 비난을 다 뒤집어쓰게 마련이지만, 우리의 5가지 요구사항 중 방송위원회 구성과 편성위원회 등 가장 중요한 사안에 대해 기존의 정부 여당안을 ‘재확인’한다고 합의한 것은 혹 떼려다 혹 붙인 격으로, 이런 합의를 하느니 차라리 파업을 안하는 게 나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결과는 상황에 대한 안일한 인식과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집행부는 이번 싸움을 ‘공세적’ 정치파업이라고 규정했다. 하지만 어느 모로 보나 우리는 ‘공세적’이 아니었다. 우리의 요구가 아무리 정당해도 상대방에게 아무런 정치적 압박을 가하지 못했다면 ‘공세적’이라고 할 수 없다. 아기가 젖 달라고 큰 소리로 운다고 해서 그 아기가 ‘공세적’으로 운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지도부가 싸움의 판세를 근본적으로 잘못 읽었다는 점에서 패배는 이미 잉태되어 있었다. 조합원들에게 자신감을 불어 넣기 위해 의도적으로 지나친 낙관론을 설파한 것이라면 조합원을 ‘주체’가 아닌 ‘대상’으로 여기는 그릇된 태도로 볼 수밖에 없다. 조합원을 싸움의 구경꾼이나 동원대상으로 전락시키고 심심하지 않게 해줘야 할 손님으로 대접하는 자세는 선량한 태도일지는 모르지만 결국 소수의 지도부가 싸움의 모든 부담을 떠안겠다는 무모한 발상으로 이어져 결정적인 순간에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높다. 이미 과거의 투쟁에서 여러 차례 경험한 이러한 오류가 이번에도 되풀이 된 건 유감스럽기 그지 없다. 승리의 유일한 선결조건이 바로 ‘대중투쟁’이다. 자사이기주의라는 편견, 수구적 야당과 비슷한 요구를 하고 있다는 곤혹스러움 등 결코 유리하지 않은 여론의 숲을 잘 헤쳐 나온 것은 오로지 조합원들의 단결된 힘이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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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5|똥바가지는 언젠가 터진다김석현kbs tv2국
|contsmark6|언제나 욕을 먹는 것은 놀부. 똥누는 놈 주저앉히고 애 밴 여자 샌드백치고 하나밖에 없는 동생 거리로 내몬 것도 부족해 제비다리까지 일부러 부러뜨렸으니…. 자본과 권력을 가진 자. 그들의 기본적 속성은 자기의 것을 내놓지 않으려 하며 또한 남의 것을 앗아가려는 데 있다. 하면 그것이 그들의 기본 속성일진데 왜 유독 놀부는 그토록 악질적 욕을 먹는 것일까?콧노래를 부르며 박을 켜는 놀부. 순간 튀겨나온 엄청난 똥물은 놀부의 성실성이나 근면성 흔히 권력과 자본이 스스로를 변호하는 인격의 모든 근본에 똥칠을 해버렸다. 그리하야 놀부의 인격은 완전히 똥이 되버린 것이다.장난이 아니라 전쟁이라는 그 파업은 어쨌거나 시작되었다.장교들은 우왕좌왕하였고 보병들은 뒤늦게 16개 동작을 배워갔다. 그런데 잠깐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게 웬일? 전쟁터에서 싸우는 것은 무식한 현역들 뿐, 예비군은 드물고 민방위들은 선전포고도 하기 전에 이미 적진의 포로가 되어버렸으니. 게다가 그 놈의 분석가는 왜 이리 많은지….하지만 나 김 일병은 그다지 크게 낙담하지는 않았다. 그 거대권력, 놀부라는 이름으로 상징되는 그들의 박덩어리를 한방에 터뜨려 우리를 압제하는 똥물의 실체를 드러내려는 야심까지는 애초에 없었으니깐. 다만 한번의 스치는 칼자국 정도를 기대했을까? 월요일 아침. 조금만 더 치면 그 권력의 더러운 똥물이 튀겨나올 것이라는 근거없는 구호들이 들렸다. 그리고 마침내 더러운 똥물을 보고야 말았다. 합의문이라는, 이런 젠장 흥부네 박에서 똥물이 터진 것이다.전쟁이 끝나자 분석가들은 말한다. “어 쭈구리, 내 이럴 줄 알았지.” 이럴 줄 알았지. 이럴 줄 알았지. 도대체 어쩌자는 것인가?똥물은 빨리 퍼내고 지하 500m에서 퍼낸 광천수를 담아 내야할 차례다. 이번에는 우리의 박에, 다음에는 아직 터지지 않은 우리 내부의, 우리 사회의 그 많고 많은 놀부들의 아직 터지지 않은 똥바가지에 말이다. 똥바가지는 언젠가는 터지기 마련이고, 터질때는 냄새가 나기 마련이다.|contsmark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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