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본 사람들은 세상을 바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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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 남북공동선언 이후 7년. 북한뿐 아니라 재일조선인에 대한 관심 또한 높아지고 있다. 영화 〈GO〉가 재일조선인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켰다면, 〈SBS스페셜〉 ‘나는 가요-도쿄 제2학교의 여름’은 평단과 대중의 지지를 동시에 받으며 편견의 장막을 걷어냈다. 〈SBS스페셜〉은 지난달 29일 ‘도쿄 제2학교의 봄’을 후속 방송했다. 〈KBS스페셜〉도 오사카 조선고급학교 축구부의 이야기를 담은 ‘오사카 일레븐’을 지난 2월 방송했다.

 

 

▲다큐멘터리 '우리학교'의 한 장면


이런 가운데, 조선학교 아이들의 생활을 담은 다큐멘터리 〈우리 학교〉가 개봉 한 달 만에 전국 관객 수 3만 명을 넘어서며 흥행 몰이를 하고 있다. 전국 10여개 극장 상영과 각지에서 유료 공동체 상영을 하고 있는 〈우리 학교〉는 국내 다큐멘터리로 최다 관객을 동원한 〈비상〉(3만 5000명)의 기록까지 가뿐히 넘어설 태세다.


김명준 감독은 예상치 못한 반응에 얼떨떨한 기분이다.


“만들 때는 이 정도까지 반응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거든요. 특히 영화를 본 사람들이 보여주는 반응이 기대 이상으로 대단해요. 주위 사람들에게 적극 권하고, 공동체 상영을 하면 손을 잡고 데려오기도 하시더라고요. 너무도 큰 반향에 당황스럽기까지 합니다.”

 

재일조선인에 대한 깊고 따뜻한 시선, ‘우리 학교’

 

 

 

 

 

 

 

 

 

 

 

 

 

 

 

 

 

 

 

 

 

 

 

 

 

 

 

 

 

 

 

▲김명준 감독

김명준 감독은 2003년 불의의 사고로 사망한 고 조은령 영화감독의 남편이기도 하다. 촬영 감독이던 김 감독은 재일조선인에 대한 극영화를 준비하던 고 조은령 감독의 촬영에 동행하며 조선학교를 처음 접했다.

고 조은령 감독은 개인으로서는 최초로 조총련으로부터 조선학교를 자유롭게 출입하는 공식 허가를 받기도 했다. 이후 조은령 감독이 세상을 떠나고, 김 감독은 아내의 넋을 첫 번째 연출작 〈하나를 위하여〉에 담았다. 〈우리 학교〉는 그의 두 번째 연출작품으로 재일조선인에 대한 더 깊고 따뜻한 시선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우리 학교〉는 일본 홋카이도의 유일한 조선학교인 ‘혹가이도 조선초중고급학교’의 이야기를 진솔하고 생생하게 담아냈다. 김명준 감독은 2003년 10월부터 2005년 4월까지 학교 기숙사에서 먹고 자며, 60분짜리 테이프 500개에 아이들의 생활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우호적인 조선학교 친구들과 선생님들 덕분에 쉽게 친해질 수 있었지만, 아이들이 일본말을 섞어 쓰는 탓에 처음엔 의사소통에 애를 먹었다”는 김 감독. 그는 초급부 1학년 교실에서 일본말을 익혀 8개월 만에 자유롭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아이들과 친하게 지내는 것은 문제가 아니었지만 초반의 불편함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학교 선생님들도 대부분이 조선인 3세이고, 아이들은 책으로만 우리말을 배운 탓에 “말에서 느껴지는 어색함”은 어쩔 수가 없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만 우리말을 사용하거든요. 교문 밖을 나가면 모두 일본말을 쓰죠. 그래서 어휘가 많지 않고, 책으로만 배우다 보니 문어체로 말을 해요. 한번은 한 친구에게 ‘밥 먹고 왔니?’라고 물으니 이해를 못 하는 거예요. 옆에 있던 선생님이 ‘밥을 먹고 왔느냐고 묻고 있다’라고 ‘번역’을 해주니 그때서야 알아듣더라고요. 문어체에 익숙한 아이들은 생활 속에서 우리말을 사용하기 위해 ‘입말유행어’라며 구어체 사용에 힘쓰기도 한답니다.”


이데올로기의 차이도 낯섦과 두려움을 안겼다. 혹가이도 조선학교 고급부 교실에 걸려 있는 김일성 주석의 초상화도 그랬다. 김 감독은 “원래 갖고 있고, 교육 받아왔던 반공 이데올로기에서 느껴지는 두려움 때문에 처음엔 낯설었지만 차차 익숙해졌다”고 말한다.

 

동포 위해 뛰고, 눈물 흘리고…

 

조선학교 아이들은 “‘오또상, 오까상’을 ‘아버지, 어머니’로 부르면서부터 ‘조선인’으로 살아간다”고 고백한다. 아이들은 “일본에서 조선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선 내면뿐만 아니라 외적으로도 조선인이어야 한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추운 겨울에도 치마저고리를 입고, 스스로 ‘우리말 100% 운동’을 실천해 나간다. 축구 경기를 해도 “동포와 부모, 선생님을 위해” 달리고, 경기에서 져도 “재일동포에게 미안해” 눈물을 흘리는 아이들이다.


그런 아이들은 ‘소조’를 짜서 학습, 지각, 결석, 복장 등에 관한 자신들만의 규율을 만든다. 그리고 조별 경쟁을 하고 다른 지역의 조선학교와도 경쟁을 하며 뒤처지는 친구들을 끌어올린다. 선생님은 간섭하지 않고 도와줄 뿐이다. 일본 학교에서 편입한 학생들은 이런 분위기를 처음엔 귀찮고 불편해하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 하고 감동하기까지 한다. 그래서 일본 어머니들도 조선학교를 신뢰한다. 김 감독은 “조선학교는 교육적으로도 연구 대상”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일본 정부와 우익단체들은 끊임없이 조선학교와 이들을 지원하는 조총련을 탄압하고, 학교에 전화를 걸어 “조선 아이들을 죽여 버리겠다”는 협박도 서슴지 않는다. 치마저고리를 찢는 일도 빈번해 등하굣길에는 ‘제2의 교복’을 입기도 한다.


김 감독은 “일본 전역에서 벌어지는 양상이 심각하다”고 증언한다. 이 때문에 일본 극장 측에서도 “영화는 좋지만 상영은 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조선학교’가 ‘우리학교’ 되는 날까지…

 

일본의 상황은 점점 나빠지고 있지만, 한국의 상황은 좋아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공동체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 시간을 가지면, 많은 분들이 ‘그동안 (조선학교에 대해)몰랐는데, 이제 알았으니까 무엇을 해야 하냐’고 묻더군요. 아이들을 조선학교에 유학 보낼 방법을 묻던 한국의 부모들도 있었어요.”


여기에 김 감독은 선배의 말을 빌려 “영화는 세상을 바꿀 수 없지만, 영화를 본 사람들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관객들이 아이들을 만나고 싶다는 말을 많이 해요. 하지만 제가 그 아이들에 대해 다 알고 있다고 판단해선 안 됩니다. 이제 영화를 본 사람들이 스스로 공부하고 직접 알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김명준 감독은 인터뷰 내내 조선학교를 ‘우리학교’라고 불렀다. 남북을 떠나, ‘재일 동포’라는 이름을 떠나 ‘우리’ 모두가 조선학교를 ‘우리학교’라고 부르는 것이 김 감독의 작은 소원이다. 영화 제목도 그 바람을 담은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통일은 미래를 향한 ‘소원’일 뿐. 그러나 김 감독은 “나 스스로는 그 아이들과 뒹구는 사이에 이미 통일이 됐다”고 말한다.


“재일조선인 문제는 남과 북, 북과 남의 통일문제를 떠나 생각할 수 없어요. 60년 동안 장막 때문에 제대로 볼 수 없었던 재일동포, 조총련계 사람들을 장막을 거둔 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작은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김고은 기자 nowar@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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