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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스페셜〉 대선기획 ‘대폿집토크/ 4인의 정객, 시대를 토(吐)하다’ 제작현장

누군가에게 풀어진 모습을 보이고 싶을때, 술이 최고다. 서로의 경계심을 풀 때도 역시 술이다. 대선을 20일 앞두고 있는 각 당의 정치인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각 당의 후보가 정해졌고, 본격적인 선거 운동도 시작됐다. 그 어느 때보다 상대 후보에 대한 경계를 바짝 조일 수밖에 없는 시기다. 

이런 가운데 〈 KBS 스페셜〉이 정치인들의 경계심을 풀어보려고 나섰다. 술을 마시며, ‘솔직’한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자는 거다. 이름하여 ‘대폿집 토크’. 29일 오후 8시 숙명여대 근처 한 대폿집에 4명의 정치인이 모였다. 유시민 대통합민주신당 대통합위원장, 홍준표 한나라당 클린 정치 위원장, 노회찬 민주노동당 선대위원장, 정범구 창조한국당 선대본부장이다. 사회는 가수 조영남 씨가 맡았다. ‘입담’ 하면 모두 빠지지 않는 이들이다. 그날 대폿집에선 무슨 일이 있었을까.

도착순서도 지지율순

서울 숙명여대 인근 대폿집. 오후 7시부터 KBS 중계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출연자들이 차에서 내리는 모습부터 술집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찍기 위해서다. 술집 안에는 30여 명의 스태프가 각자의 위치에 자리를 잡고 있었고, 7대의 카메라가 준비돼 있었다. 미리 제작진의 초대를 받은 일반인들도 자리를 메웠다. 이들에게 술과 고기는 무한 '리필'이다.  

오후 7시 50분. 홍준표 의원이 제일 먼저 도착했다. 바깥에 있는 제작진은 무선 마이크를 통해 안쪽에 있는 스태프들에게 홍 의원이 도착했다는 말을 전했다. 안에 있는 카메라는  의원들이 들어오는 입구를 찍기 위해 대기했다. 2분 뒤 유시민 의원이 도착했고, 이어 정범구 의원이 차례로 등장했다.  

노회찬 의원은 권영길 후보 유세 현장에서 바로 달려와 민노당의 주황색 선거 운동복을 그대로 입고 도착했다. 목소리도 잔뜩 쉬어 있었다. 이런 노 의원에게  “선거 운동을 제일 열심히 하는 것 같다”는 정 의원의 말이 이어졌다. 4명의 의원들은 10분 간격으로 도착했지만, 공교롭게도 도착 순서는 현재 각 당 대선 후보의 지지율 순이었다.     

처음이라 모두 어색, “방송 되겠어요?” 

정치인들의 ‘대폿집 토크’. 모두가 처음이었다. 이 날 출연한 정치인들도, 가게 종업원들도, 그리고 제작진까지도. 처음이란 어색함을 출연자들은 술로 풀었다. 이 날 마신 소주는 6~7병.  대부분이 토크 초반과 마지막에 마신 것이다.
  
종업원들은 카메라를 의식해 의원들 주변을 마음 놓고 지나가지도 못 했다. 꼭 지나가야 일이 있으면, 허리를 있는 힘껏 숙이고 종종 걸음으로 빠르게 지나갔다. 자연스러운 선술집 분위기를 원한 제작진은 종업원들에게 “그냥 평소처럼 자연스럽게 지나가 달라”는 부탁을 해야 했다.

어색함은 토크에도 이어졌다. 의도적인 연출 없이 자연스럽게 의원들의 얘기를 끌어내야 하다 보니 제작진이 애초 주제로 정한 얘기들이 충분히 나오지 않았다. 이 때문에 제작진은 토크 중간 중간 쪽지를 통해 “큐시트대로 해달라”는 말을 전하거나 조영남 씨에게 질문을 전달했다. 얘기가 진행되는 동안 제작진들 사이에선 “겉핡기식 얘기만 해 걱정”이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결국 술자리 초반에 나온 ‘시대정신’에 대한 얘기는 제작진의 요청에 의해 녹화 막바지에 다시 차례로 대답하는 시간을 가져야 했다.

술이 들어가도 정치인은 정치인

초반의 어색함을 어느 정도 덜고, 슬슬 술기운이 오르기 시작했다. 가끔 언성이 높아지기도 했고, 웃음도 터져 나왔다. 그러나 대선을 코앞에 둔 민감한 시기, 출연자들은 쉽사리 경계심을 풀려고 하지 않았다. 자기 당 후보에 대해 공격하면 바로 맞받아쳤고, 상대에 대한 공격의 고삐도 늦추지 않았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대통합민주신당의 정동영 후보는 왜 지지율이 안 올라가는 것 같아요?” 조영남 씨가 유 의원에게 묻는다. 이 때 옆에 있던 노 의원이 한 마디 던진다. “‘가짜’니까 안 오르죠.” 여기서 정 의원도 거든다. “통합신당은 화장을 너무 많이 바꿨어요.” 

대구 출신 종업원과 얘기하던 중 경제가 어렵다는 얘기가 나오자 노 의원이 한 마디 한다. “대구는 시장, 시의원들 90% 이상이 다 한나라당인데.” 이 얘기를 듣고 홍 의원이 가만있지 않는다. “대통령이 시원치 않아서 그래요.” 이때 발끈한 유 의원. “모든 것을 대통령 탓으로 돌리지 말라”고 한다. 그러자 홍 의원, 본심을 드러낸다. “욕 먹더라도 대통령 한번 해보고 싶다(웃음)”고.

'건배' 구호를 놓고도 한 차례 실랑이가 벌어졌다. 각 당 후보들 이름을 한 명씩 부르며 ‘당선을 위하여’를 외치자는 제안이 나왔다. “문국현 후보의 당선을 위하여!”, “권영길 후보의 당선을 위하여!”. 여기까지는 순조롭게 이어졌다.

문제는 정동영 후보와 이명박 후보. 홍 의원은 “정동영 후보를 위하여!”를 자신이 외칠 테니 유 의원에게 “이명박 후보를 위하여!”를 외쳐 달라고 제안했다. 그러나 유 의원은 “그건 받아들일 수 없다”며 거절했다. 그는 “‘이명박 후보의 당선을 위하여’라고 말하고 싶지만 소속당이 있고, 세상사가 자기 원하는 대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붙였다. 5분여간 계속된 주변의 권유에 결국 유 의원도 “이명박 후보를 위하여!”를 외쳐야 했다.

 ‘후보들을 위하여’를 외친 후 홍 의원, 또 한 마디 던진다. “오늘 참 별짓 다 한다! 하하.”  

민감한 얘기엔 '녹화 끝' 종결선언이 최고?

이 날 녹화에선 최근 논란이 일고 있는 BBK 의혹이나 삼성 비자금 관련해서는 얘기하지 않았다.  BBK 문제는 제작진과 사전에 얘기하지 않겠다고 합의한 문제라고 하지만, 삼성 관련 얘기가 나오지 않은 것에 대해선 제작진들도 아쉬워했다.  

녹화 마지막 부분에 유 의원이 도곡동 땅 얘기 등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와 관련된 의혹들을 얘기하려 하자 홍 의원은 녹화 “끝!”을 외치며 마이크를 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죄 지어놓고 종결선언하면 어떡하냐”는 유 의원의 항의에도 홍 의원은 아랑곳하지 않고 녹화 끝을 선언했다. 이에 유 의원도 어쩔 수 없다는 듯 더 이상 몰아붙이지 못 했다.  

이날 마신 소주는 6~7병, 유시민·홍준표 의원은 주량 3잔 초과 

이 날 녹화는 오후 8시에 시작해 11시경에 마무리됐다. 소주 6~7병을 마셨다. 한 사람 당 한 병씩은 마신 셈. 소주 3잔이 주량이라던 유 의원과 홍 의원은 주량을 훨씬 초과했다. 유 의원은 귀 뒷부분까지 빨개져 있었다. 

녹화 뒤 각 의원들의 개별 인터뷰가 진행됐다. 한 명씩 인터뷰를 하는 동안 옆에서 같이 술을 마시던 일반인들은 대기하는 의원들과 사진을 찍기도 하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시민들과 사진을 찍을 때도 의원들은 자신의 본분을 잊지 않았다. 유 의원과 노 의원은 각자 자당의 후보 기호를 포즈로 선택했다. 유 의원은 손가락 하나를, 노 의원은 세 개를 펼쳐 들었다.

이 날 녹화를 지켜본 한 시민은 “취중에도 각자의 본분을 잊지 않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며 “특히 이날 출연자들이 정치권에서도 워낙 말 잘하는 사람들로 유명하다보니 서로간의 입담이 오고갈 때 제일 재밌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러나 “삼성 관련 얘기에는 노회찬 의원 외에는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아 아쉬웠다”고 말했다.   

제작진 역시 약간의 아쉬움을 비췄다. 첫술에 배부르겠느냐만, 새로우면서도 진솔한 정치인들의 이야기를 담고 싶은 욕심이 다 채워지지 않아서다. “선거 끝나고 다시 한 번 하면 더 잘 될 것 같다”는 제작진의 말을 뒤로 하고 대폿집을 나섰다.

< KBS 스페셜>(황진성, 조정훈) '대폿집 토크'는 2일 오후 8시 KBS 1TV에서 방송됐다.  

백혜영 기자 otilia@pdjournal.com 

 


 

#에피소드1. 홍준표 의원, 이미지 관리 바빠

홍준표 의원은 녹화 중에도 연신 이미지 관리에 바빴다.

홍 의원은 “정동영 후보는 좋은 사람”이라며 정 후보 칭찬을 한참 늘어놓았다. 그러면서 이 얘기는 꼭 방송에 내보내달라고 신신당부했다. 그러자 유 의원이 “홍 의원이 이미지 관리한다”며 “이미지 관리한다는 것, 국민들은 10초만 보면 딱 안다”고 지적했다. 이에 지지 않고 홍의원이 한 마디 한다. “자기도 보건복지부 장관할 때 안경도 쓰고 이미지 관리 했으면서..” 이때 노 의원이 이들의 논쟁을 한 마디로 정리한다. “둘이 동병상련이다.” 

 

#에피소드2. 보좌관 임무는 술자리에서도 계속된다. 쭉~ 

유시민 의원이 “원더걸스는 라이브를 못한다”는 예를 들었다. 잠시 쉬는 시간이 되자 바로 보좌관이 달려와 쪽지 하나를 건넨다. 쪽지를 읽은 유 의원은 억울하다는 듯 “원더걸스 라이브 힘들었다고 박진영 씨가 얘기했다”고 항변한다. 요즘 텔미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원더걸스 비하 발언을 했다가 혹시 네티즌들의 비난을 받을까 우려했나? 유 의원뿐 아니라 다른 의원들 역시 보좌관들의 쪽지는 계속 날라왔다. 녹화가 진행중이라 직접 나서지 못할 때는 술을 갖다 주는 종업원의 손에 쪽지를 들려 보내는 센스를 발휘하기도 했다.

#에피소드3. 고기굽기는 유시민 의원에게
 
녹화가 진행되는 3시간 동안 참 많이 먹었다. 막창부터 시작해 돼지껍데기까지. 그리고 이 모든 고기들을 굽고, 자르는 일은 유시민 의원이 도맡아 했다. 유 의원은 고기를 구우며 다 익은 고기들은 다른 의원들 접시에 슬쩍 슬쩍 올려주는 자상함을 보이기도 했다. 날카롭게 공격 잘 하고, “옳은 말을 해도 참 싸가지 없게 말한다”고 누군가 칭한 유 의원, 알고보면 따뜻한 사람?  

#에피소드4. 쉬는 시간엔 담배가 최고  

오후 8시부터 3시간 가량 진행된 녹화에서 2번의 쉬는 시간이 있었다. 쉬는 시간에 의원들이 가장 먼저 찾은 것은 담배. “끊은 지 4년 돼서 담배 피우는 것을 보면 집에 가서 혼난다”던 홍 의원도 한 번 담배를 피우기 시작하자 녹화하는 동안에도 슬쩍 슬쩍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역시 긴장을 푸는 데는 담배가 최고?

노회찬 VS 유시민, 비유 누가누가 잘하나  

“폭주족 피하다가 과속차에 치이면 어떡하냐”(노회찬) 

“참여정부는 시계가 잘 안 맞았다. 그런데 시계 안 맞는다고 (한나라당으로) 바꾸면 그냥 그 자리에 멈춰있을 것이다”(유시민) 

“그동안 고양이가 잘못하면 덜 나쁜 고양이로 바꿔왔다. 이제 고양이가 아니라 쥐가 나서야 할 때다. 쥐구멍에도 볕뜰날이 있다”(노회찬) 

“홍준표 의원은 한나라당 클린정치위원장이 아니라 틀린정치위원장이다”(유시민)

 

백혜영 · 이기수 기자 otilia@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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