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가 쓰는 대중음악 칼럼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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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가 쓰는 대중음악 칼럼 <5>
우리의 숲은 건강한가?
김우석
  • 승인 1997.04.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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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만약 숲에서 유해한 나무가 자라고 있다면, 그것은 그러한 환경과 토양을 제공한 숲에 그 원인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대중음악에 유해한 요소들이 산재해 있는 원인은 개별적 당사자보다는 그 전반적인 시스템에 있다고 보면 된다. 결국 “누구누구는 표절을 하더라...”, “저 친구들은 노래도 못하면서 춤만 추는 허수아비들이야...” 하는 식의 범인 색출, 또는 개인 후려패기로서는 근본적인 문제해결이 되지 않는 셈이다. 누구에 의해서, 어떻게, 왜 이러한 일들이 벌어질 만한 환경이 조성되었는가를 되돌아 보는 것이 문제 해결을 위해서 가장 먼저 고려되어야 할 점이다.표절, 획일화, 가창력의 부재, 가수층의 축소 등등... 우리의 대중음악에서 쟁점이 되고 있는 문제들은 결국 우리의 시스템이 갖고있는 고질적인 성향, 즉 몇가지 근성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 대부분이다. 지난 회에도 언급했듯이 어떠한 한가지 성향이 유행할 때 생산자, 수용자 가릴 것 없이 모두가 일치단결해서 한 방향으로 미친듯이 내달리는 것이 국내 가요유행의 일반적인 양상이었다. 한때는 트로트가 아니면 성공하기 힘든 때가 있었는가 하면, 그 다음엔 발라드, 또 댄스음악으로 이어지는 유행의 물결은 그에 앞선 유행을 순식간에 도태시킴은 물론, 불과 몇년 전에 스타로 군림했던 가수를 철저하게 무력화시키기에 충분했다. 따라서 몇몇의 빅스타를 제외한 대부분의 가수들의 수명은 대단히 짧아질 수밖에 없었고, 가요판에는 그저 “한탕주의”만이 남게되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9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러한 한탕주의와 음악적인 편중은 점차로 정도가 심화되었고, 이것은 대중음악의 건강한 저변을 좀먹는 결과가 되었다. 그래서 잉태된 것이 바로 현재의 문제점이다.그러면 해결책은 없는 것일까? 다시 생태학으로 돌아자보자. 하나의 숲은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우월한 수목의 종류가 바뀌게 된다. 이는 아주 유기적으로 얽혀있는 숲 자체가 새롭게 자라는 수종에 대한 환경조성을 자연스럽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렇게해서 숲은 아름드리 고목으로부터 아주 어린 나무까지 함께 어우러지며 자신의 존재를 유지시켜나간다. 자, 대중음악 전체를 숲이라 보자면, 우월한 수종은 메인스트림이요, 어린 나무들은 언더그라운드에 해당된다. 한 가지 수종이 우월해진다고 해서, 바로 직전에 우세했던 나무들이 순식간에 고사해버리는 환경이 과연 건강한 걸까? 거대한 고목들만이 무성하고, 어린 나무들이 자랄 수 없는 숲에 과연 미래가 있을까 말이다. 원래 숲이란 것은 관리자 없이도 자신의 조절능력으로 유구한 세월동안 생명력을 자연스럽게 유지해 왔지만, 적어도 우리나라의 대중음악이라는 숲은 자체적인 조절능력을 상실한 것처럼 보인다. 비록 완벽하지는 않지만 약간의 조절능력과 환경조성으로 숲에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집단들 중에서 우리 프로듀서들은 아주 강력한 영향력을 보유한 하나의 집합체이다. 그러나 우리는 나무들만 후려칠 줄 알았지, 정작 숲에서 우리가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정확히 인식하지 못한 것같다. 이제사 깨달았다 하더라도 늦어도 한참 늦은 셈이다.그러나 숲의 조절능력은 놀라웠다. 작년무렵부터 일련의 젊은 록 밴드들이 조용한 반란을 일으키며 부진했던 언더그라운드를 다시 일구기 시작했다. 참으로 가상한 일이다. 우리가 팔짱끼고 수수방관하며 뭣하나 도와준 일도 없는데, 몇몇의 밴드들은 음반을 발표하며 주류에 대한 공략의 발판을 착실하게 마련하고 있었다. 바로 이 순간, 적어도 우리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러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사건이 일어났다. 언더그라운드 록의 첨병을 가장한 가짜집단인 삐삐롱스타킹이 tv에서 물의를 일으킨 것이다. 당연히 우리중의 몇몇은 이들 집단에 대한 경계심을 느끼게 되었고,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도록 도와주어도 시원찮을 록밴드들의 음악에 무더기로 ‘방송부적격’판정을 내리는 각 방송사의 자율심의가 이어졌다. 유신시대의 잔재일까? 아니면 진정한 보수를 자처하는 소신일까? 소위 “알아서 기자”, 또는 “의심스러우면 일단 막고보자”식의 보신주의가 작용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숲에 생기를 불어넣기 위해서는 약간은 거칠더라도 어리고 싱싱한 나무들이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그 나무들을 무참하게 꺾고 짓밟고있다. 식목일에 즈음해서 한번 생각해 본 숲 이야기였다. 다음 회에서는 개별적 사례들을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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