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영의 alive or all live] "제주의 결혼은 3일이나 걸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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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치커피’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흔히 육지(제주에서는 한반도를 육지라고 표현합니다.^^)에서는 ‘다방커피’라고들 하죠. 하지만 제주에서는 그 커피를 잔칫집에서 많이 마셔봐서 그런지 ‘잔치 커피’라는 표현을 씁니다.

지금 보이는 사진은 제주도 동쪽에 위치한 한동리 라는 마을의 결혼잔치가 있던 날 찍은 사진입니다. 육지에서는 점점 간소화 되고 있는 결혼식이 아직 제주에서는 옛 방식 그대로 진행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여기도 선진문화(?)의 도입으로 간추린 결혼으로 가는 추세이긴 하지만 아직도 3일 동안 온 동네가 함께 즐기고 축하하는 결혼식이 치러지고 있습니다.

우선 일정을 간략히 살펴볼까요? 3일의 첫 날엔 돼지를 잡으며 잔치의 분위기도 잡는 날입니다. 얼마나 많은 손님이 잔치에 올 건지 미리 계산해서 양을 산정하는데 이 집은 무려 돼지를 13마리!!나 잡았습니다. 제주하면 섬이고 하니 생선을 많이 먹을 것 같지만 사람들은 돼지고기를 훨씬, 더, 많이 즐겨먹더군요.

아무튼 이 잡은 돼지는 다양한 방식으로 요리되는데요 돼지를 삶아 도마에 놓고 먹는다 해서 이름 붙여진 돔베(도마의 제줏말)고기, 그 삶은 물에 모자반을 넣고 푹 고아 끓인 몸국, 직접 만드는 순대 등 버릴 것 하나 없이 다양한 요리를 만들어 내 놓는걸 보면 육지 사람이 보기엔 그냥 입이 쩍. 하고 버러질 따름이죠. 돼지로 이렇게 다양한 요리가....둘째 날엔 본격적으로 사람이 몰려들기(?)시작합니다. 거의 1000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아침, 점심, 저녁에 나눠 왔는데 신랑 부모님과 신랑이 사람 좋기로 소문난 분들이어서겠죠. 동네 분들은 3끼 모두 이 집에서 먹는다니 대접하는 인심과 대접 잘 받아주는, 아무리 이웃사촌이어도 잘 통하는 이 사람들의 사는 방법이 그냥 미소짓게 만들더군요.

셋째 날 결혼식이 이어지는데 신랑은 홍세함이라 부르는 함에 신부가 몇 시에 시댁으로 들어와 어느 방향에 앉아야 하는지, ‘풍수’를 받아 넣고 신부를 데리러 갑니다. 식후에는 신랑쪽이 신부측 식구들을 모두 신랑 집에 모셔 잘 차린 상으로‘최초의 대접’을 하는데 역시 사람 마음잡는 데는 먹는 것 만한 게 없죠! 지금이야 그렇다 쳐도 옛날 생각해보면 거친 땅에는 나는 게 별로 없어 음식문화가 크게 발달하지 않은 제주에서 있는 반찬 없는 반찬 다 모아 차린 상은 내 딸을 이 집에 보내도 되겠다라는 마음이 학.실.히 들게 만들고도 남습니다. 사돈끼리 별 왕래가 없는 육지의 결혼문화와 확연히 다른 부분이죠.

3일 동안 풀타임, 최상의 서비스를 하면서 대가 없이 돕는 손길들과 대접한 음식 배불리 먹고 가는 하객들, 그리고 주인공인 신랑 쪽 사람들 모두 최대의 배려와 예의를 염두에 둔 눈치로 하나가 되는 것 같아 참 행복해 보였습니다.

3일 동안의 잔치를 지켜보면서 발동된 직!업!본!능!

내가 그 사람들을 데리고 PD로서 어떤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그 많은 인원이면 드라마도 만들 수 있고 라이브 쇼도 가능할 것 같고 버라이어티도 가능하지 않을까...잠시 생각해봤습니다만 그거 보다는 이 잔치를 라이브 생중계 하는 편이 훨씬 재미있을 것 같단 결론을 내렸습니다.

여기엔 음악, 자막, 영상효과 같은 양념들이 없어도 프로그램 자체를 아주 맛있고 담백하게 즐길 수 있게 만들어줄 포스가 강한 인물들이 배치돼 있거든요. 3일 밥 안 먹어도 배부른 신랑아버지, 사물놀이 리듬에 맞춰 나이트 댄스 스텝 밟아주는 신랑, 신랑친구들 군기 잡는 이웃삼춘......타이틀은 대~단한 결혼식! 진행자 한 명과 마이크 하나, 스테디 캠 한 대 만 있으면 원 테이크로 한 시간, 시간가는 줄 모르게 ‘말아(?) 먹을 수 있겠다’라는 약간 위험한 생각이 들게 한 제주의 결혼잔치 현장이었습니다. 

양자영 / KBS 제주방송총국 PD


2004년 KBS에 입사해 2005년 〈4ㆍ3기획 화해를 넘어 상생으로〉, 2006년 〈KBS 스페셜〉, 〈KBS스페셜〉의 '바람의 말 제주어'를 연출했다. 현재 제주 방송총국에서 〈6시 내 고향〉,〈특별음악회〉연출을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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