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경수의 방송 맛 보기] '섬마을 음악회'와 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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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독의 발견〉을 연출하고 있던 2006년 여름, 추석특집 음악회를 만들라는 명을 받았다. ‘찾아가는 음악회’라는 컨셉이 주어졌다. 시골의 당산나무가 있는 정자를 찾아다니면서 그곳에서 음악회를 하는 것이 어떠냐는 것이 팀장의 조언이었다. 나는 정자보다는 섬에 가고 싶었다. 육지야 아무리 오지라도 차만 있으면 갈 수 있지만, 섬은 하늘의 일기에 따라 접근이 결정되는 곳이다. 민족의 대명절이라도 비바람 치면 오도 가도 못하는 곳이 섬이다.

 

2006년, 유난히 섬을 자주 들렀다. 여름에 이미 〈봄의 왈츠〉의 주인공 서도영을 데리고 완도의 청산도를 다녀왔다. 맑은 공기와 아름다운 풍광을 맛보았던 좋은 기억이 있다. 이번에는 가을 바다와 섬이 보고 싶었다. 촬영지로 전남 신안군 우이도와 증도를 택했다. 우이도는 목포에서 배로 4시간 걸리는 곳에 위치한 모래사구로 유명한 섬이다. 증도에는 신안 보물선 발굴 유적지와 대형 염전이 있다. 신안군청에서는 흑산도 홍도를 제안했지만, 관광지로 유명한 곳에 갈 일은 아닌 듯했다.

 

한편의 다큐멘터리를 만들기로 했다. 이름하여, 추석특집 다큐콘서트 섬마을 음악회. 한명의 가수를 주인공으로 하여 2박 3일간의 섬마을 순회 방문과 공연 그리고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그대로 담고자 했다. 주인공 섭외가 문제였다. 추석 즈음에 3일간 시간을 낼만한 가수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염두에 두고 있었던 가수는 계속 고민을 하다가 녹화 일주일 전, 사전답사를 떠나는 날 결국 ‘어렵다’는 통보를 해왔다.

 

주인공 결정도 하지 못하고 떠난 답사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누구라고 결정되어야 스토리라인을 짜며, 이미지구성을 할 텐데……. 아름다운 우이도의 바닷가를 걷다가 가수 송대관씨 매니저에게 전화를 했다. 〈낭독의 발견〉에 출연한 인연인지 긍정적으로 답했다. 일본의 유명한 시리즈 영화 ‘남자는 괴로워’의 주인공 구루마 도라지로(아츠미 키요시 분)가 떠올랐다. 일본 곳곳을 유랑하는 중년의 남자가 그곳에서 사람을 만나고 소동을 벌이다가 고향집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담은 영화다. 송대관이라면 아츠미 기요시처럼 구수하게 고향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어울릴 것 같았다.

 

황금 같은 추석 전주 3일 스케줄을 비운 송대관과 관현악단 7인조 콤보밴드를 구성해서 본 녹화를 하기로 했다. 왕복 8시간의 배타기가 힘들었는지 사전답사에 참가했던 촬영 감독은 본 녹화에는 참석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불안해서 바뀐 촬영감독과 다시 한 번 답사를 했다. 당일치기로 우이도를 다녀왔다. 힘은 들었지만 자신감이 생겼다.

 

드디어 촬영날……. 새벽 일찍 용산역에 모여서 KTX를 타고 목포로 향했다. 준치 회덮밥으로 점심을 하고 배를 타고 도초도로 향했다. 많은 인재를 배출한 섬은 한적했다. 선착장에서 급작스런 무대를 만들어 짧은 공연을 했다. 연주 악기는 기타와 아코디언 뿐. 한시간만에 공연을 마치고 다시 우이도로 향했다. 이미 날은 저물고 어두어서야 우이도 민박집에 도착했다.

 

다음날 사전 답사 때 본 마을을 들르기로 했다. 할아버지 한 분이 쌀가마니를 들고 내리는 모습을 답사 때 본 기억 때문이다. 수소문해본 결과 그 마을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두 분만 사신다고 했다. 마을 사람들과 자녀들 모두 떠나고 우이도 마을에 사는 노부부. 촬영 팀이 들르자 반가워하셨다. 방송보다도 사람이 반가운 듯했다. 송대관씨는 두 분의 손을 꼭 잡고는 ‘목포의 눈물’을 불러드렸다. 두 분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기신하기도 어려운 노구에 할머니는 염소고기로 전을 부치고 돔을 사서 구어 놓고 손님을 기다렸다. 녹화가 끝나고 스태프들은 할머니의 정성을 생각하며 음식을 먹었다.

 

점심을 먹은 후에는 곧바로 다시 증도로 향했다. 다음날 있을 염전음악회를 위해서다. 석양을 배경으로 염전에서 7명의 콤보밴드가 펼치는 무대는 환상적이었다. 역광 때문에 주인공의 얼굴이 안 보인다는 카메라 감독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석양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설득하여 결국 태양을 마주보는 카메라 배치를 시도했다. 카메라 감독들의 협조로 석양 영상은 뛰어났다. 트로트와 ‘고엽’ 등 팝송을 부르는 가을의 염전....... 가수도 스태프들도 주민들도 평생 잊지 못할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며칠간 밤을 새며 편집을 해서 겨우 방송날짜에 맞춰 납품했다. 절대적인 시간부족으로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영상과 편집 모두 부족한 방송. 하지만 부끄럼 없이 최선을 다했기에 그 추억은 아름답기만 하다.

 

방송이 끝나고 아직까지도 기억에 강하게 남아있는 것은 묘하게도 음식이다. 섬마을 음악회를 만드는 내내 총 다섯 번 민어를 먹게 되었다. 목포의 영란횟집과 지도읍의 지도횟집, 엘도라도 리조트의 한식당, 증도의 식당, 다시 지도읍의 식당. 다섯 번 중에 가장 맛있었던 것은 역시 영란횟집의 민어다.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본 즉 회를 써는 방식과 찍어먹는 양념의 차이인 듯하다. 도톰하게 썰고 독특한 초장과 참기름에 함께 먹어야 제격인 듯하다. 게다가 아교풀을 만드는 재료인 부레와 삶은 껍질을 소금에 찍어 먹는 맛은 황홀하기까지 하다. 그리고 식사로 먹는 기름이 풍부한 매운탕에는 탄성을 멈추기 어려웠다.

 

민어는 백성 民자를 쓰는 생선이다. 강강술래에도 민어 포와 민어 풀 이야기가 나오는 만큼 오래된 민초의 먹거리였다. 복달임으로도 민어가 일품, 도미찜이 이품, 보신탕이 삼품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사랑받는 생선이라고 인터넷에 나와 있다. 섬마을 음악회가 민어와 굳이 상관관계가 없고, 단지 계절적인 연관만 있지만, 백성 민이라는 글자를 통해 민초, 대중의 삶에 깊숙이 침윤하는 방송의 사명을 견강부회로 되새겨 본다. 방송이 시청자를 찾아간다면, 큰 이야기 큰 무대가 아닌, 조그맣고 섬세한 방식으로 시청자의 일상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야 할 것이다. 맛있는 민어가 의미도 풍부하기만 하다.

 

홍경수 KBS 〈단박인터뷰〉 PD


현재 〈단박인터뷰〉를 연출하고 있으며, 맛있는 음식 먹는 것을 좋아한다. PD지망생들을 위한 < PD, WHO & HOW >를 대표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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