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진의 타블라 라싸] ‘BIG Brother’. ‘little bro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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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내가 태어난 시골의 진풍경 중 하나는 애송이 처녀총각들이 신랑 신부 첫날밤을 훔쳐보려다 물벼락을 맞고 줄행랑을 치는 장면이었다.

결혼식 치른 날 으슥한 밤이 오면 짓궂은 형과 누나들은 무리지어 신혼집 뒷담을 넘어 새 각시방으로 다가갔었다. 그리곤 손가락에 침을 발라 창호지를 뚫다가 목적달성을 하기도 전에 물벼락을 맞고는 낄낄거리며 도망을 쳤다.  

그래서 내 어릴 적 소원 하나는 손가락 끝에 눈이 달리는 거였다. 그 특별한 눈으로 신랑 신부 첫날밤을 온전하게 훔쳐보는 거였다. 

얼-쑤! 그렇게만 된다면야 어디 첫날밤만 엿볼 뿐이겠는가?

그 지겨운 시험 때는 얼마나 좋으며 편하고 쉬운 일이 어디 한 둘 뿐이겠는가?

좋아하는 순이 치마를 '아이스께키' 할 필요도 없거니와 또 모든 친구들이 내 부하가 되려고 줄을 설 것 아닌가? 

그래서 하늘을 올려 보며 뭉게구름 뒤쪽을 향해 중얼거리기도 했었다. 

“ 하나님! 손가락 끝에도 눈깔 하나 터-억 달아주면 얼마나 좋아요!” 

손가락에 눈 달린 인간을 만난 것은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를 읽을 때였다
소설 속 ‘BIG Brother’는 열 손가락에 눈이 달린 인간과 다를 바 없었다. ‘텔레스크린’으로 모든 이의 활동을 감시하고, 신혼 방은 물론이거니와 심지어는 화장실의 은밀한 사생활까지도 엿보는 공포의 인간이지 않던가?  

책이 출간 된 1948년만 해도 ‘BIG Brother’는 너무 비현실적인 존재라 대중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소설을 읽던 ‘70년대 초엔 10년 앞에 와 있던 ‘1984년’이 마치 나그네의 길목을 지키고 선 스핑크스 같았다.  

시대를 비슷하게 살아온 이들은 느낀적이 있었을 것이다. 정보화 시대로의 전이가 빠르게 움트던 '70년대 ,우리 삶의 모퉁이를 뚜벅뚜벅 걸어오던 'BIG Brother'의 발자국 소리와 그가 몰래 장착해 놓았을 것 같은 텔레스크린의 눈총들을! 그래서 다가오는 미래를 막연히 두려워 한 적이 더러 더러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오매불망 내 소원이 달성되었다! 절쑤! 

마침내 내 손가락에도 ‘빅브라더’처럼 눈이 달리는 기적이 일어났다.

나는 이제 물벼락을 맞지 않고도 신랑신부의 첫날밤을 훔쳐볼 수 있게 되었고, 내가 좋아하는 순이의 치마를 들치지 않고도 내 음흉한 욕심을 채울 수 있게 되었다. 창조주께서 드디어 내 어릴 적 기도를 실현해 주신 것이다.  

그런데 불만이 생겼다.

소망은 나 혼자만 이룬 게 아니었다. 모든 사람들이 동시에 손가락 끝에 눈이 달려버렸다.

요즘 핸드폰을 가진 사람들은 모두 손가락에 눈 달린 인간들이다. 핸드폰에 콩알보다 작은 카메라가 장착되면서 우리 모두는 비로소 BIG Brother처럼 특수한 인간이 되어버린 것이다. 인터넷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은 BIG Brother가 세상을 감시하기 위해서 만들었던 ‘사상경찰’을 채용한 꼴이다. 

그리하여 21세기는 신인류의 시대가 되었다.

밤말은 쥐가 듣고 낮말은 새가 들어서 전해주던 시대를 지나 인간 스스로 쥐가 되고 새가 되어 모든 것을 듣고 보는 것이 가능한 시대가 온 느낌이다.  

이제 세상을 둘러보면 험악스런 BIG Brother의 그림자와 함께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는 또 다른 존재들을 느낄 수 있다. 그들은 BIG Brother처럼 거구이거나 괴력을 가진 존재도 아니며 우리와 똑같은 몸체와 이목구비를 가진 존재들이다.  

‘BIG Brother’가 세상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무기로 텔레스크린과 사상경찰, 마이크로폰과 헬리콥터를 사용했다면, 그들이 가진 것은 핸드폰 앞에 달린 극소형 카메라와 인터넷과 UCC 같은 것들이다. 

그들은 그 극소형 카메라와 인터넷과 UCC를 융합시켜 ‘BIG Brother’의 '텔레스크린'과 '사상경찰'과 '헬리콥터'에 상응하는 무기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리하여 ‘BIG Brother’와 대등한 힘으로 세상 곳곳을 감시하고 통제할 수 있으며 똘똘 뭉치면 ‘BIG Brother’ 이상의 괴력을 발휘하는 존재로 탈바꿈한다. 

그들은 ‘BIG Brother’의 압제를 벗어던지기 위해서 탄생했다고 할 수 있다. BIG Brother와 그 주구들이 저지르는 불의를 들추어 고발하고 그들의 패악에 맞서 싸우기 위해서 태어났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들의 탄생은 축복이며 그들은 보호되어야 하고 존중받아야 한다. 그들이야말로 21세기 더 두려워진 ‘BIG Brother’의 압제로부터 우리 민중을 지켜줄 유일한 구원자요 해방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little brother’라 부른다.

브라보! little brother! 

그런데 요즘은 브라보를 더 이상 외칠 기분이 아니다.

‘little brother’가 ‘BIG Brother’보다 더 공포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힘이 축적되자 권력을 남용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이에나처럼 몰려다니며 동료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고 보호해 주어야 할 인격을 오히려 무자비하게 물어뜯는 야수성을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BIG Brother가 ‘텔레스크린’과 ‘사상경찰’과 ‘헬리콥트’를 동원해 세상을 압제하는 이상으로 그네들은 몰래카메라와 인터넷과 UCC를 융합해서 무차별적으로 힘없는 동료를 유린하고 린치를 가하기도 한다. 그 결과 선량한 형제의 목숨을 앗아가는 사태도 빈번하게 발생된다. 

여행길 스핑크스를 벗어나기 위해 뭉친 나그네들이 그들 형제의 손발을 자르는 만행을 저지르는 형국이라 할까? 

**

오늘도 나는 세상의 여행길에 나선다.

물론 내 손가락엔 오매불망 소망했던 그 특별한 눈을 달고서.

그러나 나는 왠지 두렵다. 어릴 적 내 꿈이 실현되었건만 나는 왠지 행복하지 못하다.  


이응진 / KBS 드라마팀 PD , 문화칼럼니스트


대표작으로 1994년 최수종과 배용준. 그리고 이승연,최지우가 출연한드라마 <첫사랑>과 <딸부자집> 등이 있으며  2004년 KBS 연수원 교수로 활동했다. 현재 'HDTV 문학관' 을 제작 중이다.  '타블라 라싸'는  흰 백지 상태를 의미한다. 어린 아이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 순백의 상태를 말하듯 철학자 로크는 교육의 중요성을 설명하며 이 말을 사용했다. 흰백지 위에 생각을 쓰자는 의미에서 이 칼럼이 마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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