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경수의 방송 맛 보기] '미녀들의 수다'와 호텔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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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생활에서 호텔은 필수적인 편의시설이다. 굳이 잠은 안 자더라도 호텔 식당을 이용하는 것은 기분전환이라는 점에서 탁월한 효용이 있다. 어질러진 집과 반대로 정돈된 실내, 요리와 설거지를 하지 않고 식사할 수 있는 곳. 여자 친구가 있거나, 아내가 있는 사람이 호텔 식사를 멀리해서는 그 관계가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것은 이미 검증된(?) 가설이다. 
 
하지만 호텔은 비싸다. 맛과 서비스는 보증되나 값이 비싼 딜레마가 있다. 가까이 하기에도 멀리 하기에도 부담스런 존재가 호텔식당이다. 호텔에 가서 뭔가 부족한 서비스를 받게 되면 따지고야 마는 까다로운 손님이 생기는 것은 바로 이 점 때문이다.
 
2002년에 캐나다의 반프 텔레비전 페스티벌에 참가했다. 반프의 가장 크고 오래된 호텔인 반프 스프링스 호텔에서 국장을 모시고 소고기 스테이크를 시켰다. 짧은 영어로 “미디엄”으로 부탁했다. 연륜이 깊은 호텔에서 먹는 스테이크는 매우 양이 많았고 맛도 있었다. 뭐 흠잡을 만한 것이 없었다. 식사를 거의 다 마칠 즈음 국장께서 “우리가 미디엄으로 시키지 않았나? 고기가 미디엄 웰던으로 나온 것 같다”고 품평했다. 생각해보니 그런 것 같아, 웨이터를 불렀다. 그리고 어설프게 이야기했다. 매니저도 아닌 웨이터는 곧장 “그럼, 돈을 안 받겠다.”고 흔연스레 응대했다. 훌륭하기 그지없는 스테이크를 먹고 값을 치르지 않는 행운을 얻었다. 호텔 서비스가 지향하는 바가 고객의 만족이라는 것과 호텔에서 따지면 돈을 안 받기도 하는 구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후 서울의 한 호텔에서 뷔페 음식을 먹다가 식사를 마칠 즈음 디저트로 가져온 푸딩에서 이물질이 발견되었다. 매니저를 불렀다. 매니저는 푸딩을 유심히 살폈다. 혹시 우리가 넣은 것은 아닌지 살피는 듯 했다. 그리고는 푸딩에 콕 박혀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뭘 더 드시겠습니까?” 뷔페 식사를 마친 손님에게 무슨 음식을 더 권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더 먹을 수 없을 만큼 배도 불렀고, 어처구니없는 제안에 기분이 나빴다. 하지만 참고 이렇게 말했다. “캐나다에서는 이럴 경우에 돈을 안 받더군요” 매니저 당황해 하더니 곧 이런 대답을 했다. “저희도 안 받겠습니다”
 
이런 에피소드를 겪고 얼마 있다가 영화를 보았다.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모녀가 병에 유리가루 등을 넣어 가지고 다니며 식사를 끝내고 집어넣어 돈을 내지 않는 모습이 담긴 영화다. 모녀가 식사를 마칠 즈음 다투어 말한다. “오늘 식사는 내가 계산할게” 그리고는 핸드백 속에서 유리병을 꺼내 이물질을 집어넣는 식이다. 서비스가 생명인 호텔의 약점을 이용한 생계형 얌체다.
 

 
 ▲ KBS '미녀들의 수다' ⓒKBS


영국에 사는 가까운 친척은 호텔 혼내주기로 명성이 자자하다. 영어를 잘하는 부부가 영국호텔에서 얼마나 호텔 혼내주기를 많이 했는지 들어보면 속이 시원하다. 아시아인에 대한 인종차별 경향이 보일 때마다 이들 부부는 웨이터와 매니저를 불러다 놓고 ‘잘하는’ 영어로 닦달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좋은 자리를 놔두고 다른 자리로 안내한다거나, 음식이 늦게 나온다거나, 서빙하는 태도가 불성실하거나 하는 경우가 주 타깃이다. 이렇게 따지고 나면, 꼭 사과와 더불어 부가적인 서비스가 추가된다는 것이 이들의 증언이다.
 
이 부부, 얼마 전 서울의 유명 호텔에서 가족모임을 했다. 괜찮은 호텔 식당인지 드레스코드 운운하며 반바지를 입고 온 가족 중 한명의 입장을 거부했다. 그리고는 바지를 빌려줄 테니 입고 들어가라고 제안했다. 그 가족, 남의 바지를 입기 불편했는지 다시 집에 다녀오겠다고 나섰다. 이들 부부가 가만있을 리 없다. 호텔 식당 안을 살펴보니 짧은 핫팬츠 차림의 여자 손님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매니저를 불러서 부당함을 따지기 시작했다. 드레스코드를 적용하려면 ‘저 빤스같은 바지’ 입고 들어와 있는 여자 손님을 모두 끌어내라고 따졌다. 매니저가 여자는 괜찮다고 하자, 부부는 페미니스트들이 들고 일어날 일이라며, 여자다리는 볼만하고 남자다리는 볼썽사납냐며 식당을 흔들어 놓았다. 결국 사과를 받아냈지만, 가족은 식당에서 식사를 하지 않고 그냥 나왔다. 이들 부부를 더욱 화나게 한 것은 매니저의 형식적인 사과였다 한다. 젠 체하는 태도로 생글생글 웃으며 하는 사과. 일부 호텔에서는 종업원들이 자신이 주인인 양 거들먹거리며 서빙하는 경우가 있다. 자신이 종인지 주인인지 구분 못하는 일부 외교공무원처럼.
 
이야기를 듣고 책을 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제목은 "How to Punish Hotels". 호텔에서 제대로 서비스를 받고 싶은 사람이 예상 독자며, 호텔업계 종사자들도 울며 겨자 먹기로 사보지 않을 수 없다. 까다로운 손님을 응대하려면 알아야 하니까.
 
글로벌 토크 <미녀들의 수다>를 보면서 호텔식사가 떠올랐다. 젊고 예쁜 미녀들이 한데 모여 서툰 한국어로 수다를 늘어놓는 프로그램의 이미지가 호텔에서 세계적인 수준의 서비스를 받는 것과 닮은 듯하다. 다양한 음식을 맛보는 뷔페와 비교한다면, 각국의 문화를 맛보는 점과 더욱 겹쳐진다. 이 호텔 식사 한번 뜯어보자.

우선 미녀들의 반대편에는 남자 패널들이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이들의 수다를 경청하기도 하고 설명하기도 한다. 관음주의라는 측면이 프로그램을 이끌어가는 바탕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다만, 그것이 아주 노골적이지는 않아서 불쾌하지는 않다. 더군다나 웃음을 목적으로 하는 오락 프로그램임을 고려할 때 크게 문제 삼기는 어렵다. 이 프로그램이 주는 이차적인 만족감은 타자들의 시선을 확인하는 데 있다. 미국 영국 이태리 독일 일본 등 우리가 주눅 들기 쉬운 외국인들이 함께 모여 외국어가 아닌 한국어로 한국에 대해 이야기한다. 시청자는 이중적인 감정태도를 가진다. 미국 유럽 등 서구 출신 미녀들에게는 국가적인 콤플렉스를 개인적 차원으로 환치해서 되갚고, 동남아시아 출신 미녀에게는 오리엔탈리즘적 시각을 버리기가 어렵다. 방송이 어려운 것은 이 위험한 아슬아슬한 경계를 잘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출연자에 대한 편애나 왕따 등 부정적인 현상이 문제가 되었었고, 그런 기미도 엿보인다. 말 잘한다고 계속 앞줄에 앉히고 발언 기회를 많이 주고 길게 붙이는 편집 등이 불안해 보인다. 특히 출신국가와 피부색깔에 따라 대접에 차이가 생기는 것에는 보통 이상의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왜냐하면 그 결과는 몇 배로 확산되고, 심지어 외교문제로 비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보다 앞서 전 세계의 거의 모든 방송사의 기본이념은 평등이라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열심히 균형을 맞춘다고 노력하는 사이에도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외국인들을 등급을 나누고 차별대우를 하거나 젠체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일부 호텔 종업원이나 외교공무원처럼. 이런 호텔이나 대사관이나 방송사는 똑똑하고 깐깐한 손님으로부터 punishment를 당하기 마련이다. 호텔이나 대사관이나 방송사나 업태는 서비스업이다.
 
참, 호텔 뷔페는 아무래도 하얏트 호텔 테라스가 맛있다. 

 

홍경수 KBS 〈단박인터뷰〉 PD


 현재 〈단박인터뷰〉를 연출하고 있으며, 맛있는 음식 먹는 것을 좋아한다. PD지망생들을 위한 〈PD, WHO & HOW〉를 대표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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