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한샘의 예술이야기] ⑩ 나무를 심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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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한샘의 예술이야기] ⑩ 나무를 심는 사람
  • 오한샘 EBS PD
  • 승인 2007.10.05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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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완연한 봄이다. 3월초만 해도 꽃샘추위다 뭐다 해서 옷깃을 여미게 만든 날씨도 이제는 수줍은 소녀 도망가듯 소리 소문 없이 그 모습을 감추고 있는 듯하다.

따사로운 햇볕의 여유와 함께 느껴지는 주변의 푸르른 생명력 속에서 문득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한마디가 생각이 나는 것은 왜일까? - “세상에는 끊임없이 더 많은 것을 얻으려 하다가 결국엔 모든 것을 잃고 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 충분히 가졌음에도 소유욕의 노예가 되어 결국엔 자신의 모든 것을 파멸의 구렁텅이로 빠트리고 마는 인간 유형의 무서운 한 단면을 설파한 명쾌한 한마디이다.

일찍이 자기 한 몸 누일 수 있는 방 한 칸과  언제든 바라볼 수 있는 하늘의 구름 한 점, 그리고 책 한권과 시원한 물 한바가지만 있으면 부러울 게 없다는 선비의 호탕한 기개는 아니더라도, 소유로부터 자유로울 때 인간은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다는 고흐의 깨우침은 생각날 때마다 쉽게 넘어가지 않는 대목이다.

과연 소유하지 않고도 삶을 풍요롭게 가꾸는 인생이 가능할까? 여기에 하나의 답을 제시하는 영화가 있다. 애니메이션 <나무를 심은 사람>!

지금으로부터 14년 전, 처음 이 영화를 접했을 때의 감동을 필자는 잊을 수 없다. 마치 바다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시골 소년이 난생처음 엄청난 크기의 파도를 눈앞에 맞닥트리고는 할 말을 잃고 굳어져버린 것과 같은 형상이랄까? 그런데 그 파도는 십 수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위력적이다.

대자연과 피조물에 대한 너무나도 커다란 사상적 틀 앞에서 그간 얼마간의 짧은 지식에 기대어 이러저러한 현안에, 무던히도 의견을 내놓으려했던 필자의 모습이, 한순간 초라하다 못해 식은땀마저 흐르게 한다.

공포영화에서나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던 이 감정을 30분이 채 안 되는 단편 애니메이션에서 체험하게 해주었던 이 작품! - 도대체 얼마나 사색하고 고민해야 이 같은 성찰에 도달하게 되는 것 일까?

영화 <나무를 심은 사람>은 시작부터 무언가 다른 것이 있었다. 대문호 앙드레 말로가 20세기 프랑스 문학의 1인자로 뽑았다는 작가 장 지오노(Jean Giono)의 간결하면서도 단순한 묘사와 필치는 애니메이션 작가 프레데릭 바크(Frederic Back)의 섬세한 붓놀림과 만나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를 넘어 또 하나의 사상서를 읽는 듯한 무게를 전달하고 있었다.

담담하고 조용히 뿜어져 나오는 극중 인물들의 독백 한마디 한마디가 새벽녘 산사를 깨우듯 명료한 종소리가 되어 보는 이의 내면을 울리고 있었던 영화 속 장면들은 오랜만에 거장의 품격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는 듯하다. 이 작품은 흔히 알려져 있듯이 식목일 날 어린이들이 한번쯤 볼만한 애니메이션 영화에 절대로 머물러 있지 않다.

오히려 끊임없는 경쟁과 소유의 자본주의 시대에 쉴 새 없이 하루하루 메워 나가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시집이요, 잊혀진 일기장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작품 속에선 도시의 소음에 묻혀 좀처럼 듣기 힘든 각종 자연의 소리들...흙 밟는 소리, 바람 소리, 새소리,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들을 아무런 방해 없이 만날 수 있다.

가장 아름다운 음악이라 일컬어지는 이른바 대자연의 교향악! 지금 이 순간, 여러분들을 잠시 작품 속 주인공 에이자 부피에의 집으로 초대해보고자 한다.

“흔히 혼자 사는 사람이 그렇듯 그는 통 말이 없었다. 그러나 양치기는 자신감과 확신감이 있어보였다. 그래도 이 황무지에서는 모든 게 신기해보이기만 했다. 그의 집은 오두막이 아니라 진짜 집이였으며, 그것도 돌로 지은 집으로 벽은 수리한 흔적이 역력했다. 지붕은 견고했고 그 위로 부는 바람소리는 해변에 밀려오는 파도소리 같았다. 그는 나에게 하룻밤을 묵게 해주었다.(중략) 내가 돕겠다고 하니까 자기일이라고 했다. 얼마나 꼼꼼히 일을 하는지 나는 우기지 않았다. 우리가 말을 한 것은 그때 뿐 이었다. 이 사람과 함께 있으니 매우 평화로웠다.(나무를 심은 사람 中에서...)”

평화! 오늘밤 그 평화와 대자연에서 울려져 나오는 협주곡들을 한번쯤 조용히 감상해보는 것은 어떨까?

오한샘  / EBS 교양문화팀 PD 


1991년 입사해 <예술의 광장> <시네마천국> 등 문화, 공연 예술 프로그램을 주로 연출했다. 그 밖에 대표작으로  <장학퀴즈> <코라아 코리아> 등이 있다. 영화, 음악 그리고 미술 등에 조예가 깊으며 현재 연재하고 있는 영화음악 뿐만 아니라 '영화 속 미술 이야기'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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