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평김동춘 성공회대학교,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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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평김동춘 성공회대학교, 사회학
  • 승인 1999.12.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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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이번에 필자가 재직하고 있는 대학의 역사학 전공자 공채에서 62명의 박사들이 몰려왔다. 대부분이 한국사 전공자였고, 일부 서양사 전공자가 포함돼 있었다. 그 중 일부는 이미 많은 저작을 생산해 학계에서 상당한 명성을 쌓은 사람도 있었다. 산더미처럼 쌓인 심사용 학위논문과 연구논문들이 말하고 있는 지난 세월 그들의 땀과 정열과 고뇌를 생각해 보니 같은 과정을 겪어서 그나마 대학의 한 자리를 차지한 나로서도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들 대부분은 대학 입학 시절만 하더라도 주위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던 사람들이었으며, 30대를 거치는 긴 세월 동안 동료들이 월급이니, 승진이니, 주식투자니 노후대비니 하는 데 신경 쓰고 있을 때 오로지 학문의 성취만을 바라보며 살아왔다. 더러는 이국 땅에서 온갖 외로움과 수모를 견디면서 귀국의 그날을 손꼽아 기다려 왔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 젊은 박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구조조정이니 학부제니 하는 인문학 죽이는 대학사회의 거센 파도였으며, 컴퓨터나 영어에만 정신팔려 있는 젊은이들의 비정한 풍속도였다.“어리석게도 밥 빌어먹기 힘든 역사학을 왜 전공했는가”라고 이들의 잘못된 선택을 탓할 수도 있을 것이며, 사회적 수요보다 지나치게 많은 역사학 박사들이 배출되었다는 시장 논리도 들이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 사회와 대학, 그리고 기득권의 단맛을 누리는 학계가 너무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눈앞의 이득이나 세속사회의 입신 출세에 좀 둔감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힘든 수련의 과정을 거쳤으며 사회적으로 유용한 작업을 하는 한 최저의 생계는 유지할 수 있어야 하고 자존심을 지키고 살 수는 있어야 한다. 더구나 과거를 반성하고 삶의 궤적들을 정리해 미래를 대비하는데 빛을 던져줄 수 있는 역사학에 매진한 이러한 인재들을 이다지도 비참하게 만들고 있다면, 그 사회는 하루살이 사회가 아니고 무엇인가?몇 년 전인가 김영삼 정부는 국제화, 세계화 논리를 내세우면서 대학들로 하여금 국제대학원을 설립하도록 유도해 수백 억 원의 돈을 쏟아 부은 적이 있다. 그러나 그들 국제대학원이 지금 어떻게 되었는지, 정말 국제적인 감각을 갖춘 인재가 배출되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영어로 수업을 진행하면 국제감각 가진 인재가 배출된다고 보는 발상도 우스운 것이었지만, 우리 역사를 모르는 상황에서 외국 지역 연구가 어떻게 가능할 것이며, 우리 문화와 정신을 모르는 자들이 어떤 유능한 통상 전문가가 될지도 의문이다. 국사학자를 이렇게 천대하고, 한국사 과목 강좌를 없애버리고, 영어를 공용어로 만들어 모든 젊은이들에게 어학 능력만 익힌 다음에 우리는 무슨 물건을 어떻게 만들어 외국에 팔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도통 이해 못할 일이다. 우리 역사를 모르는 영화감독들과 만화가들이 어떻게 세계인들에게 공감을 줄 수 있는 훌륭한 작품을 만들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모든 박사 연구자가 꼭 대학으로 갈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사정을 보면 학위를 받는 사람이 대학 외에는 갈 곳이 없다는데 문제가 있다. 미국이나 영국에서는 역사 연구자들을 고급공무원으로 채용을 한다고 한다. 한국역사를 전공한 한 미국학자는 cia고급관리로 활동하면서 한미관계에서 미국의 국익이 철저히 관철될 수 있도록 자신의 지식을 십분 활용하고 있다. 독일 등 여러 선진국에서는 신문사와 방송사에 수십명의 박사 연구자들과 상당수의 역사 연구자들이 포진되어 있다고 한다. 제대로 된 기획 기사를 쓰기 위해서는 전문 역사학자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의 사정은 어떠한가? 대학 외에 역사학자를 채용하는 기관은 아무 데도 없다. 방송사는 그 많은 역사 다큐멘터리 영상물을 만들 때도 역사학자들의 값싼 노동력을 공짜로 이용하려 하기만 하고, 신문사는 역사 관련 기사를 쓸 때도 내부의 인력에 투자하려하기보다는 외부 원고에만 의존하고 있으며, 대일관계쪾대미관계에 언제나 시달리고, 프랑스에 가 있는 외규장각 도서를 되돌려 받겠다는 한국 정부도 역사학자들의 전문지식을 임기응변적으로만 이용하려 한다. 우리가 주변 강대국의 정책만 잘 살피면 되는 소국(小國)이라서 그런가? 우리는 왜 이다지도 자신의 과거를 알려 하지 않고, 역사에서 교훈을 얻으려 하지 않는 것일까?사실 한창 연구에 정진할 나이인 이들 역사학자들을 채용해 최저의 생계를 보조하는데 별로 많은 돈이 들지 않는다. 우리 사회의 수준이 문제인 것이다.
|contsmark1|※ 본 시평의 의견은 연합회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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