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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태희 OBS 〈생방송 쇼영〉 PD
 
홍경민은 아티스트며 연기자다. 그리고 홍경민은 3개월 전부터 필자의 프로그램의 MC다.
그를 처음 봤을 때는 1997년. 하루에도 신인가수가 네다섯씩 새 앨범을 쏟아내던 대중음악의 전성기였다. 그의 첫인상을 잘 기억하고 있다. 연예계에 발을 들인 수줍은 미청년의 미소.

▲ 공태희 OBS〈생방송 쇼영〉PD

그 때의 신인가수는 거의 예외 없이 하이톤의 과장된 목소리로 조금은 낯간지러운 인사를 했다. 아이돌의 태동기이자 전성시대로 기억될 당시, 방송가에서는 꽃미남 셋과 미소녀 둘 혹은 미소녀 넷에 꽃미남 하나 등으로 이루어진 신인 그룹이 90도로 허리를 숙이며 "안녕하세요! 신인그룹 000입니다!"라며 외치는 첫인사를 하루에도 몇 번씩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홍경민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서글서글한 인상에 낮고 듣기 좋은 목소리로 약간은 수줍으면서도 충분히 예의 바른 인사를 건넬 뿐이었다. 상대가 데스크이건 플로어를 뛰어 다니며 다음 출연자를 애타게 호출하는 연출부 막내이건.

그래서 첫인상이 더 기억에 남는지 모른다. 다만 필자 역시 방송계 막내의 고단한 삶을 살고 있을 때였으니까, ‘목소리가 좋고 잘생긴 신인’정도로 그를 기억할 뿐이었다. 또한 그가 그토록 빨리 가요계 정상에 등극하리라고는 상상 조차하지 못했다.

그는 데뷔한지 단 3년만에 ‘흔들린 우정’으로 당대 최고 스타의 반열에 올랐다. 많은 사람들이 당시의 그를 ‘한국의 리키 마틴’이라고 불렀지만, 정작 리키 마틴이 홍경민처럼 감칠맛 나게 발라드를 부르는 모습을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물론, 최고 스타가 되고서도 식당에서 만난 낯선 이의 촬영요청이나 사인공세에 언제든지 상냥한 미소로 답하는 모습은 중남미의 대표적 선행스타 리키 마틴과 같긴 하지만.

그는 스타가 되었지만, 여전히 우리와 같은 삶을 살았다. 가요계의 정점에 올랐었고, 당대 최고 프로그램의 진행자로서도 전성기를 구가했다. 무대 위에서도 아래에서도 여전히 소탈하고 소박했다. 또한 그는 병역의 의무를 피할 생각도 전혀 없었다.

그게 말처럼 쉽기만 할까. 스타의 본성이 아무리 소탈하고 소박했을 지라도, 일단 스타가 되면 더 이상 우리와 같은 땅에 발을 딛고 살수 없다. 아니 살 수 없게 만든다. 별들의 주변에서 끊임없이 누군가 사람으로 몇 겹의 장막을 치고 몇 계단위로 올려놓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정상에 올라서도 그리고 더 이상 최정상에 머무르지 않게 되었어도 특유의 소탈함과 소박함을 잃지 않았다. 잃기는커녕 최고의 위치에서 최고의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도, 서너 계단 아래의 후배들과 동료들을 돌아 볼 줄 아는 미덕이 넉넉했다. 그가 연예계에서 소박하고 진솔하게 보낸 시간이 11년이 지났다. 1인자의 위치에서도 2인자를 홀대하지 않았고, 1인자가 아니어도 1인자를 질투하지 않았다. 1인자와 1인자가 아닌 어떤 위치와도 잘 어울리는 11년이었다.

필자의 프로그램, 홍경민이 MC로 출연하는 프로그램에서 그는 맏형이다. 주말 예능계의 초격전 시간대에 2시간 생방송을 책임지고 진행해야 하는 메인MC. 절반 정도가 신인들로 꾸려진 고정패널 중 맏형. 그를 믿고 MC로 전면에 내세운 생방송이 이번 주말이면 12회, 정확히 세달 이다. 지난 3개월 동안 그에게 많은 말을 했고, 태반이 독설뿐이었다. 이번엔 그에게 이 말을 하고 싶다.
고마워! 홍경민!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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