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순간순간이 ‘삼성 트라우마’ 의 실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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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제작기] ‘KBS스페셜 - 삼성 트라우마’


▲ 박융식 PD
지난 9일 방송된〈KBS스페셜 - 삼성 트라우마, 우리에게 삼성은 무엇인가? 〉는 우리사회에서 ‘삼성’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가 우리가 삼성에 대해 갖는 다중적인 불안 심리에 있을 수 있다는 다소 추상적인 생각에서 출발했다. 우리에게 삼성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지, 있다면 그 실체가 무엇인지 알아보고 싶었다.

막상 전제는 세워놨지만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막막했다. 기존 경제 관련 다큐멘터리가 접근하는 방식과 달리 ‘삼성’과 우리 사회의 관계성을 해부할 수 있을까? 일단 국민의식조사(설문)를 떠올렸지만 이것 하나로 프로그램을 끌고 나갈 수는 없었다.

구체적인 사례와 현장이 필요했다. 그러나 삼성은 특검 전후로 공식행사의 대부분을 취소했음은 물론, 일반적인 입장 표명 수준의 인터뷰도 거절했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삼성과 함께 일을 했거나, 삼성에 투자하고 있거나, 삼성의 제품을 팔고 있거나, 삼성을 요모조모로 분석해 왔던 사람들을 만나기로 했다. 예상은 했지만 이것도 쉽지는 않았다.

▲ 〈KBS스페셜 - 삼성 트라우마〉의 한 장면 ⓒ KBS

삼성과 관계를 맺고 있는 국내 업체나 투자사의 취재 거부는 시작에 불과했다. 삼성에 투자했던 영국의 한 펀드회사는 몇 년 전 삼성 계열사에 투자했다 ‘적대적 M&A 의도가 보인다’는 국내 언론들의 공격을 받은 기억을 떠올리며 아예 만나주지도 않았다. 미국에 본부를 둔 한 투자사와는 변호사 입회 하에 ‘삼성’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는다는 각서를 쓰고서야 그다지 알맹이 없는 인터뷰라도 할 수 있었다.

미국의 전자제품 전문 판매업체는 한국제품에 대한 현지 소비자 반응을 취재하겠다고 하자 ‘삼성’의 허락을 받아오라고 했다. 삼성의 직영매장도 아닌데 어떻게 그런 요구를 하느냐고 묻자, 올 1월부터 한국 언론의 경우 삼성의 사전 허가가 필요하다는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자사 방침을 답변으로 내놓았다.

삼성의 영향력을 국내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확인하는 짜릿한(?) 순간들이었다. 동시에 삼성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공포, 삼성 ‘트라우마’가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섭외하고 취재하는 그 순간 순간이 ‘트라우마’의 현장이었고, 그 때마다 느꼈던 나의 감정들이 ‘트라우마’의 실체였다. 내가 ‘삼성 트라우마’ 속에 있었던 것이다.

▲ 박융식 PD는 “〈KBS스페셜 - 삼성 트라우마〉를 통해 우리에게 삼성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지, 있다면 그 실체가 무엇인지 알아보고 싶었다”고 밝혔다. ⓒ KBS

프로그램에서도 언급했지만, ‘트라우마’는 병리적인 현상이다. 극복해야 하는 문제다.

‘삼성이 흔들리면 우리나라도 위태롭다’ - 부지불식간 우리 의식 깊숙한 곳에 무시무시하게 자리잡은 삼성 트라우마, 혹은 삼성 이데올로기. 이제 이 정체불명의 명제를 수정하고 싶다.  ‘삼성이 바로서면 우리나라도 평안하다’ 스스로 바로 서지 못하면, 우리 모두의 안전을 위해 바로잡아 줘야 한다. 지긋지긋한 트라우마를 없애기 위해서라도.

P.S 삼성 트라우마의 완결판 : 방송 이틀 전에 나레이터 섭외를 위해 이름 석자만 들으면 다 아는 모 인사에게 전화를 돌렸다. 섭외에 흔쾌히 응하며, 제작 일정에 맞추기 위해 고맙게도 본인의 스케줄도 조정하겠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그 분 왈 “그런데 아이템 뭐죠?”,

PD 왈 “삼성에 대한 다큐멘터리입니다” 잠시 침묵. 다시 그분 왈 “아, 생각해봤는데 삼성 광고와 행사가 걸려있는 게 많아서… 죄송하지만 다음에 불러주십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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