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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북으로 이사를 가면서 생긴 바람직한 변화 가운데 하나가 지하철 출퇴근이다. 물론 처음 한 달 간은 걷고 갈아타고 부대끼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가뜩이나 운동부족인 내게 걷기는 좋은 운동이 되었고, 내리는 위치만 조금 바꿔도 갈아타는 건 얼마든지 번거롭지 않을 수 있었다. 더욱 극적인 변화는 사람들과의 부대낌에서 나왔다. 출퇴근 시간 지하철의 번잡스러움은 더 이상 말할 필요조차 없이 끔찍한 수준이지만 뒤집어보면 그만큼 생생하게 시장조사를 할 수 있는 시간도 분명 없을 것이다.

지하철역 입구에서 무가지를 두 개쯤 골라 들고 열차에 오르면 30분은 족히 지나간다. 무가지라고 해서 결코 무시할만한 수준이 아니다. 이미 지하철 신문 시장을 초토화시키고 안방자리를 꿰찬 미디어다. 나머지 30분은 이리저리 기웃거리기에도 충분치 않은 시간이다. 출근 지하철엔 세 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다. 무가지를 보는 사람과 TV를 보는 사람, 그리고 게임을 하는 사람. 한 손에 족히 들어가는 PMP나 DMB 단말기에 이어폰을 꼽은 사람들의 표정은 대체로 옅은 미소를 띠고 있기 마련이다. 혼자 은밀하게 즐기는 내 손 안 미디어의 새로운 시청자들이 보이는 대표적인 표정이다. 나머지 세 번째 유형의 사람들은 게임에 몰입하고 있다. 두 엄지손가락의 움직임만큼이나 안구의 움직임도 정신없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발을 밟히더라도 사과 받기를 바라지 않는 것이 마음 편하다.

강북에서 출발한 열차는 한강을 건너 강남에 들어서면서 조금 한산해진다. 한산해진 틈을 어김없이 비집고 들어오는 건 바로 지하철 행상들이다. 여전히 단돈 1000원이다. 그러나 품목은 다양해졌다. 황사가 오면 마스크, 갑자기 비가 내리면 우산..순발력도 정보력도 만만치 않다. 몸을 돌려세울 수 있을 만큼 여유가 생기면 으레 주변을 둘러본다. 분명 그날의 연인들이 눈에 포착된다. 바디 컨택트에 열중하고 있는 연인들과 정면으로 눈이 마주치는 어색한 순간만 피한다면 이 또한 좋은 공부다. 젊은 연인들의 애정표현 수위를 보며 15금인지 19금인지 나름 생각한다. 

지하철 공부 꼭 한 시간이면 회사에 도착한다. 한 시간 동안 얻은 아이템과 아이디어와 사람들의 말들을 차근차근 정리해본다. 기획안이 따로 필요 없다. 무가지 DMB 닌텐도는 제작방향과 매체 전략에, 날씨를 앞서가는 행상들의 순발력은 곧 홍보 전략에 활용된다. 점심시간엔 지하철에서 목격한 연인들의 애정행각을 놓고 가벼운 설전. 오후 시간동안 현실감각이 무뎌진대도 걱정할 필요 없다. 퇴근길 지하철에서 복습의 기회가 있으니까. 출근길과는 달리 모든 것이 역순으로 진행된다는 것만 다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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