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英 지상파 뭉쳐 ‘캥거루 프로젝트’ 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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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MBC, SBS가 조인트 벤처를 차린다? 아니다. 사실은 영국의 이야기다. 영국 대표 지상파 방송사인 BBC (엄밀히 말하면 BBC Worldwide), ITV, 채널4가 ‘또’ 조인트 벤처를 차렸다. 이들이 과거 디지털 지상파 방송 서비스인 프리뷰(Freeview), 디지털 위성 방송 서비스인 프리셋(Freesat)에 이어 다시 힘을 뭉쳤다.

바로 ‘프로젝트 캥거루(Project Kangaroo)’다. 시청자들이 한 곳에서 디지털 방송 콘텐츠를 볼 수 있는 통합 콘텐츠 시장을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초기 단계라 구체적인 형태를 예측하기는 힘들지만, 미국 애플 iTune의 방송콘텐츠 전문 버전이라고 예상하는 사람들이 많다. 다른 점이라면 시장의 원리보다는 방송의 공영성을 우선시하는 영국식 퓨전 서비스라는 점이다.

▲ 디지털 지상파 방송 서비스인 프리뷰(Freeview) 홈페이지

흥미로운 것은 최근 BBC의 애슐리 하이필드(Ashley Highfield)가 이 조인트 벤처의 CEO를 맡을 예정이라는 점이다. 하이필드는 지난 8년간 BBC의 뉴미디어 분야를 이끌면서 BBC 웹사이트, 인터랙티브 서비스, 모바일 서비스, BBC 디지털 아카이브 등 BBC가 디지털 환경에 단단한 기반을 다지는데 누구보다 큰 역할을 해온 사람이다. 34세의 나이로 뉴미디어를 총책임지는 디렉터로 일하기 시작하면서 BBC 역사상 최연소 임원이라는 기록도 세웠다.

능력 있는 신임 CEO지만, 캥거루 프로젝트에 참여한 다른 방송사로부터는 프로젝트를 BBC에 유리하게 꾸려가지 않겠느냐는 걱정의 목소리가 나올 법도 하다. 그러나 각 방송사 사장들은 한입으로 가장 적임자가 CEO를 맡았다며 오히려 반기고 있다.

영국의 지상파 방송사인 BBC, ITV, 채널4, 파이브는 지배·수익구조는 다르지만 모두 공영방송의 책무를 가지고 있다. 물론 디지털 환경에서 공영방송의 책무에 대한 해석이 모호해지고 있지만, 아직은 가장 영향력 있는 매체가 가져야 할 최소한의 임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이들이 뭉쳐 사업을 진행할 때면 각자 속내는 무엇이든 간에 전면에 내세우는 가치가 있다. 바로 ‘시청자가 최고 품질의 콘텐츠를 추가 비용 없이 향유할 권리’다. ‘공익’을 중시하는 사회주의 전통이 강한 때문인지 모르지만, 최소한 미국과 같이 시장에 입각한 결정은 아닌 것이 틀림없다.

사실 이들 지상파 방송사들이 힘을 뭉치는 경우가 잦아진 것은 디지털 환경이 본격적으로 전통 방송 영역을 침범하기 시작한 즈음부터다. 이미 이들은 시장에서 실패를 한번 경험했다. 1998년 상업방송사들이 주도한 유로 디지털 방송 서비스가 큰 적자만 남기고 가입자 부족으로 문을 닫은 경험이 있다.

디지털 환경 속에서 시청자가 세분화되고, 시장의 파이가 급속도로 조각나면서 위기의식을 느낀 대형 방송사들은 협력의 길을 선택했다. 프리뷰가 디지털 방송 서비스로서는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것도 생존을 위한 협력관계에 기반해 있다. 또한 프리뷰 사업에 능동적으로 참여한 대형 방송사들은 추가 채널을 확보하여 디지털 환경 속에서 브랜드 입지를 더욱 확장할 수 있었다.

프리뷰는 신규 진입 채널들에게도 유리하게 작용했다. 소규모 채널들은 공영성과 전통에 기반한 대형 방송사들의 이미지와 더욱 대비가 되는 틈새시장으로 뛰어들어 시청자를 끌어 모을 수 있었다. 영국 방송사들의 채널 브랜딩이 뛰어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읽을 수 있는 현상이다.

▲ 영국=성민제 통신원/ 프리랜서 프로듀서

유료 디지털 위성방송인 BSkyB의 공익적 대안인 프리셋(Freesat)을 ‘HD시대의 프리뷰’라는 슬로건 하에 준비하고, 주문형 비디오의 통합 시장으로 캥거루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영국의 그들을 보면서 언제 우리나라 방송사들이 시청자들을 위해 힘을 뭉친 적이 있나 기억을 더듬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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