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의 오락 프로그램 출연 적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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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우의 미디어 리터러시]⑧

철부지 어린이라 해도 특정 TV 프로를 열심히 시청하는 경우도 있다. 일주일의 어느 정해진 요일에만 정기적으로 하는 프로일 때 그 날을 잊지 않고 시청하려 한다. 이럴 때 부모나 다른 형제가 다른 프로를 보려 하면 소동이 벌어지는 일이 흔하다. 특히 그 철부지 어린이가 고집이 남다른데 형이나 부모가 다른 프로를 보려 하면 일이 커진다.

TV 오락프로들이 요즘 어린이를 출연시키는 일이 많다. 유치원에 다닐 정도의 어린이를 등장시켜 어른 개그맨들과 어울리게 한다. 아동들이 TV 카메라와 청중 앞에서 웃음을 자아내게 말하고 행동한다. 시청자를 즐겁게 하고 시청률을 올리기 위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도입한다는 차원에서 이해할만하다. 어린이들은 흔히 어린이가 출연하는 프로를 매우 좋아한다. 꼬마 어린이가 출연하는 것을 눈여겨 본 전국의 많은 어린이들이 그 프로를 기다리고 있다면 시청률이 올라가는데 큰 도움이 될 법도 하다.

그러나 그런 프로에 꼬마들이 출연한 것이 어색해 보일 때가 적지 않다. 성인들의 관심사에 대한 어린이들의 말이 너무 어른스러울 때 특히 그렇다. 유머나 개그 프로는 최첨단의 유행어로 시대감각을 풍자하는 경우가 많다. 어린이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소재로 엮어진다. 출연하는 아이가 조숙하다 해도 전국의 평균적인 어린이들이 얼마나 이해할까 걱정스럽다.

실제 어린이들은 연령에 따라 시청하는 TV에 대한 이해가 차이가 있다. 어린이들이 성인용 TV프로를 시청할 때 더욱 그러하다. 즉 미국 초등학교 2학년 어린이는 성인용 TV 프로 내용의 66%를 기억했고, 5학년은 84%, 8학년은 92%를 각각 기억했다. 이 때문에 어린이들은 TV, 영화 등의 줄거리 가운데 명확한 내용을 기억하거나 주요 장면을 인식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그리고 개성이 강한 남녀 출연자들이 하는 연기에 담긴 다양한 의미나 그들의 의도와 다른 엉뚱한 내용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현상은 초등학교 저학년과 고 학년 간에 차이가 있다. 대체적으로 어린이들은 성인 수준에서 영화감상 시 관찰 가능한 극중 인물의 행동이나 여러 가지 일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 SBS '놀라운 대회 스타킹'에 출연한 영국의 최연소 가수 코니탤벗 ⓒSBS
어린이들은 또한 명확한 내용보다 함축적인 내용을 파악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 미국의 초등학교 2학년은 함축적 내용의 TV 프로의 경우 47%를, 5학년은 67%, 8학년은 77%를 각각 기억했다. 어린이들은 사건과 사건 사이의 연관관계 등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에 따라 어린이들은 배역들이 무언의 행동으로 묘사한 윤리나 도덕성에 대한 연기에 대해 전혀 다른 방향으로 파악하기도 했다.

이상과 같은 사실을 고려할 때 TV오락 프로에 출연하는 어린이들은 개그맨들의 말이나 행동을 이해한다고 보기 어렵다. 그것을 시청하는 전국의 어린이도 마찬가지다. 개그맨들은 흔히 웃기기 위해서 과장된 말과 몸짓을 하거나 은어, 비유법 등을 사용하기도 한다. 순진한 어린이를 개그맨들과 섞어놓고 벌이는 발상은 검토할 점이 많다고 여겨진다. 오락의 영역은 어린이와 성인의 그것이 동일하지 않다. 그런 프로가 계속된다면 ‘애늙은이’가 양산되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TV 오락 프로에 아동들을 출연시키는 일이 적절한 것인가 하는 점이다.

TV프로 담당자는 흥미를 끌기 위해, 시청률을 올리기 위해 여러 가지 기법을 활용하는 것이 일상적인 일이다. 프로의 종류에 따라 그 기법은 매우 다양하다. TV 드라마는 시작부분에 매우 인상적인 내용이나 장면을 내보낸다. 시청자가 채널을 다른 곳으로 돌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수십 초 동안 시청자의 흥미를 끌지 못하면 시청자는 계속 시청할 의욕을 상실한다.

TV 뉴스도 마찬가지다. 뉴스 도입부분에 요란한 효과음과 함께 주요 뉴스의 중심 되는 내용만을 뽑아서 소개한다. 그러다보니 자극적인 내용을 앞세워 선정적인 보도를 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TV 광고는 소비자의 구매 욕구를 자극하기 위해 노력하는 대표적인 경우다. 수 초 또는 십여 초라는 짧은 순간에 상품의 특성 등을 알리기 위해 자극적인 음향과 빛을 사용하거나 방영되는 장면을 매우 빠른 속도로 바꾸기도 한다. 시청자의 시선을 붙잡아두기 위해서다.

모든 TV프로에 공통적으로 사용되는 영상효과 기법에 소리와 빛, 카메라 각도 등이 동원된다. 흡혈귀가 나오는 괴기 영화의 사례를 들어보자. 음악은 음산한 분위기를 강조하는 그런 음악을 사용한다. 흡혈귀가 나오는데 밝고 명랑한 음악이 사용되지 않는다. 빛의 효과를 이용해 공포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킨다. 달도 뜨지 않은 깜깜한 밤이나 으스스한 빛이 감싼 그런 곳에서 흡혈귀가 출현하는 것이다. 만약 흡혈귀가 해가 쨍쨍한 대낮에 등장하는 식이라면 사람들이 공포감을 덜 느끼게 된다. 흡혈귀가 무서운 괴력을 지닌 것으로 묘사하는 방식의 하나로 카메라 각도를 이용한다. 흡혈귀를 카메라가 올려다보는 식으로 촬영한다. 이런 기법에 대해 아동들이 이해하면 현실과 TV 가상세계를 분간하는 능력을 지니게 된다.

TV의 영상기법은 아동의 시선을 붙잡아 두기 위한 것으로 아동에게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지나치게 자극적인 기법을 동원할 경우 아동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아동의 사물 지각 능력은 느린 편이다. 예를 들어 동화책을 읽을 때 아동은 동화책에서 읽은 내용을 머릿속에 상상한다.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편다. 그런데 아동의 읽는 속도가 느린 것은 두뇌 회전의 속도가 느린 것도 한 이유다. 아동이 TV를 통해서 똑같은 동화를 접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아동의 동화에 대한 이해는 TV 제작자가 어떻게 화면을 구성하느냐에 달려 있다.

아동은 책을 읽는 것과 달리 TV 동화를 시청할 때는 머릿속에서 상상하는 작업을 거의 하지 못한다. TV의 쉴 사이 없이 바뀌는 장면을 따라가기 바쁘다. TV 장면이 아동을 사로잡을 만큼 흥미롭거나 자극적일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TV가 능동적이 되고 아동은 방영되는 내용을 쫓아가기 바쁜 수동적인 입장이 된다. 그러나 아동이 TV영상효과를 높이는 기법에 대해 이해하고 있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아동이 TV 동화를 능동적인 자세로 시청할 수도 있다. 즉 비판적으로 시청하는 방법을 익히는 것이다.

영상효과 기법에 대한 아동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는 자녀가 매우 좋아하는 프로를 활용한다. 그런 프로를 녹화해서 자녀와 함께 시청하면서 대화하는 것이다. 주요한 장면을 선정해 그곳에 도입된 영상효과의 종류에 대해 아동이 체크하도록 한다. 다른 영상효과 기법을 사용했을 경우에 대해 상상하면서 이야기를 나눈다.

예를 들면 싸움을 하는 장면에서 무사들이 공중을 획획 날아다니는 식으로 묘사되는 장면에 어떤 영상효과 기법이 사용되었는지 아동이 말하고 써보게 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 현실 세계에서 불가능한 그런 묘사가 왜 무협영화나 드라마에 일반화되는 것인지를 이해하게 된다. 시청자가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기법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음향효과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활극 장면에서 긴박감 넘치는 음악이 흔히 사용되는데 음악을 끄고 활극 장면을 같이 보면서 거기에 느낀 바를 대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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