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성폭행 사태’ 미디어 교육 부재가 빚은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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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성폭행 사태’ 미디어 교육 부재가 빚은 비극
[고승우의 미디어 리터러시] ⑨
  • 고승우 박사 (한성대 전 겸임교수)
  • 승인 2008.05.02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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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우 박사
언론들은 대구 초등생 성폭력 사태를 주요 뉴스로 보도했다. ⓒYTN

▲ 고승우 박사
대구에서 최근 밝혀진 초등학교 교내 집단 성폭력 사태는 여러 각도에서 접근해야 할 심각한 문제다.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이지만 미성년자의 음란영상물 시청도 그 가운데 하나로 추정된다. 아이들이 인터넷, 케이블TV 등을 통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음란물이 성폭력을 유발한 직접적 원인의 하나가 된 것이다.

이번 사건은 미디어가 어린이 청소년에게 얼마나 치명적인 흉기인가 될 수 있는지 를 경고하고 있다. 영상미디어가 어린이 청소년에게 심각한 피해를 주는 화근의 하나로 지목되고 있지만 미디어 교육을 전면적으로 실시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미디어 교육이 이번과 같은 사태를 방지할 근본적인 대책의 하나인데도 그에 대한 인식이 아직도 부족하다.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이번 사건에 연루된 학생들은 대부분 음란 영상물을 시청하고 그 흉내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그것도 학교 잔디밭에서 집단적인 폭력이 가해졌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런 비상식적인 일이 벌어진 원인의 하나는 음란 영상물이다. 음란 영상물은 성과 관련한 사회적 규범, 윤리성 등이 완전히 생략되거나 왜곡되어 있다.

남녀의 성행위가 쾌락만을 주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성행위로 인한 법률적, 윤리적 문제나 임신, 성병 등의 문제는 담겨져 있지 않다. 이런 영상 음란물을 접한 어린이, 청소년은 성행위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갖기 쉽다. 부적절한 성관계라 해도 상대에게 쾌락을 준다는 것으로 잘못 인식하게 되어 죄 의식을 갖지 않게 된다. 이번 사건에 관련된 학생 대부분이 죄의식을 갖지 않은 채 집단적으로 성폭력을 저질렀다는 것이 위와 같은 추정을 가능케 한다. 상업용으로 만들어진 음란 영상물이 철없는 어린이들을 잘못된 길로 빠지게 한 것이다.

어린이와 청소년의 음란 영상물 시청에 대한 우리 사회의 대비책은 무엇인가? 무조건 음란물을 보지 마라는 것이 거의 전부다. 체계적인 미디어 교육을 통해 어린이, 청소년이 수동적이 아닌 적극적, 능동적인 태도로 TV, 비디오, 인터넷 등 영상매체를 활용하는 것을 어렸을 때부터 익혔다면 음란 영상물에 대해서도 교육하기 용이했을 것이다.

그러나 미디어를 비판적으로 활용하는 지식을 전수하는 미디어 교육이 전무한 상태에서 음란물을 보지 말라는 말만 듣게 되면 아이들이 음란물에 신비감을 느끼고 더 빠지게 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우리나라는 미디어 강국으로 성장했지만 미디어 교육의 후진국을 탈피치 못한 것이 대구 사태를 초래한 주요 원인이다. 어린이 청소년이 미디어에 무방비 상태로 방치되는 것은 교육계 뿐 아니라 전사회적인 문제다.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히 세워져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는 다매체 다채널 시대가 되면서 어린이 청소년을 미디어 폐해로부터 보호하는 문제가 나날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 부모들은 흔히 아이들의 먹 거리, 과외공부, 건강 등을 신경 쓰지만 미디어에서 자녀들이 무엇을 보고 듣는지에 대해서도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건전한 미디어 접촉과 활용은 가정에서 신경 써야 할 최우선적인 요주의 항목이 되었다. 대구 사태처럼 아이들이나 청소년은 한 순간에 평생 지워지지 않은 고통스런 상처를 입게 되는 것이다.

가정에서 부모들은 자녀가 TV 등 영상매체를 통해 호기심을 키우고 새로운 지식을 얻게 되며 재미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부모는 자녀들과 함께 TV 프로그램 가운데 자녀들에게 도움이 될 것을 선택하고 그것을 같이 시청하면서 같이 즐기는 방식을 익혀야 한다. 자녀가 취학하기 이전에 건전하게 성장하도록 돌볼 책임은 부모에게 있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자녀 양육에 부모의 책임을 최우선시 하기 때문이다. 국가나 지방 정부 등이 아이들 성장에 개입하는 정도는 미국 등 선진국에 크게 뒤진다. 미국에서는 자녀들을 부모가 심하게 매질할 경우 부모의 자녀 양육권을 박탈해 버리고 국가가 책임을 진다. 우리 사회에서는 이런 것은 먼 나라 이야기로 인식할 만큼 인권, 복지 문제에 대한 사회적 의식이 아직도 후진적이다.

대구 사태의 경우 문제를 일으킨 어린이 청소년이 맞벌이 부모를 둔 경우라고 보도되고 있다. 미성년자에 대한 교육을 공교육기관과 미디어가 책임을 지는 시스템이 가동되고 있다면 이번 사태는 예방이 가능했을지 모른다. 어린이와 청소년을 전 방위적으로 보호하는 시스템의 하나인 미디어 교육이 선진국처럼 시행되고 있다면 미디어 폐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린이와 청소년이 영상 음란물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필요성은 누구나 공감하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 그에 대한 체계적인 대비책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지금은 부모가 그것을 챙길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의 제반 여건이 미비해서 체계적인 미디어 교육이 단기간에 실시될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감안해 미국의 미디어 교육전문 사회단체인 PBS(Public Broadcasting Service)가 제공하는 부모의 자녀 TV 시청 지도 방식을 소개한다. 그 지도방식은 연령별로 부모가 자녀에게 어떻게 TV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지를 가르치는 내용이다.

10대가 되기 전 아동의 미디어 교육에는 부모가 매우 중요하다. 부모가 10대 이전의 자녀에게 TV 프로그램이 어떻게, 왜, 무슨 목적으로 만들어졌는지 질문하게 하면 자녀의 TV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다. 부모의 미디어 교육이 성공적인 경우 10대 이전의 아동은 TV를 능동적으로 비판적으로 활용할 안목을 갖춘다. 즉 TV에서 보고 듣는 것에 대해 질문하는 법을 통해 TV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깊어진다.

부모는 자녀의 TV 프로에 대한 모든 질문에 대해 다 답변하지는 못한다 해도 자녀와 같이 시청하는 일을 생략하면 안 된다. 자녀는 부모와 TV프로에 대해 대화함으로써 TV 프로가 한 방식이 아닌 다양한 방식으로 평가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즉 모든 프로는 많은 분야의 전문가들의 참여 속에 제작된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TV 광고는 상품 판매를 촉진할 목적이라서 TV 제작자에게 일정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부모는 유치원 취학 이전(5살 이하) 자녀에 대한 미디어 교육부터 신경 써야 한다. 두 살 이전의 어린 자녀는 가급적 TV를 시청치 않도록 하는 것이 최선이다. 전문가들은 두뇌가 정상적으로 발달하는데 TV가 부적절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부모는 2살 이후의 자녀에게 TV 시청시간을 최소화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 TV 시청 습관을 익히도록 한다.

즉 TV 시청을 수동적으로 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활용토록 한다. 그 방법은 자녀가 시청할 프로를 부모가 정해주고 같이 시청하면서 TV 프로 출연자가 하는 말이나 노래, 춤을 따라 하도록 한다. 이 때 부모도 똑같이 행동한다. 그러면서 자녀에게 TV에서 무엇을 보고 들었는지를 물어본다. 자녀는 이 방식을 통해 TV 프로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진다.

6~7살 아동은 주변 사물에 대해 주의 깊게 살피면서 그 의미를 파악하는데 열중한다. 주변 사람들이 서로 다른 생각과 행동을 한다는 것을 이해한다. 8~9살이 되면 타인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진다. 이런 지적 발달을 거치면서 아동의 TV에 대한 생각이 깊어진다. 6살에서 9살까지 아동이 부모의 도움을 받으면서 TV 시청을 하게 되면 판단력이나 비판력을 기를 수 있다.

부모는 자녀에게 TV 프로그램에 대해 의문을 갖고 질문하게 함으로써 건전한 문제의식을 지니게 할 수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자녀는 TV가 많은 분야의 분업과 협업으로 제작되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또한 TV에 나온다 해서 객관적인 진실로 받아드리는 일이 없어진다. 이런 습관을 기르면 어른이 되어서 “신문에 났는데”라든지 “TV에서 보았는데”하는 식으로 미디어를 맹신하는 버릇을 지니지 않게 된다.

10대가 된 자녀는 미디어 교육을 제대로 받았다면, TV의 모든 것에 대한 이해를 하게 되면서 전문가 비슷한 TV 비평가가 될 수 있다. 이런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부모의 도움이 절대적이다. 성숙해진 자녀들은 TV프로의 의미는 다각도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TV가 제시하는 메시지를 액면 그대로 받아드리지 않고 숨겨진 의미를 파악하려 한다.

TV에 대한 비판적 지식이 많아지면서 TV 프로 등장인물의 가치관, 사고방식 등을 다각도로 이해하려 한다. 예를 들어 음란 영상물은 상업용으로 만들어졌고, 성과 관련된 사실을 과장하거나 왜곡해서 만든 것이란 점을 이해하게 된다. 실제 성관계는 법적, 윤리적 문제와 함께 임신, 성병과 같은 심각한 후유증이 있다는 것도 파악하게 된다. 이러면 음란 영상물이 성범죄로 연결되는 일이 원천적으로 방지될 수 있다.

부모는 자녀에게 최초이자 가장 영향력 있는 TV 안내자가 되어야 한다. 자녀가 성장기에 익힌 TV에 대한 지식과 이미지는 평생을 간다. 자녀들이 TV를 통해 더 건전해지고 사회에 유익한 인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부모가 적극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이번 대구에서 발생한 집단 성폭력 사태와 같은 비극이 예방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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