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의 눈]아이 엠 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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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의 눈]아이 엠 붓다
  • 최근영〈KBS 스페셜〉PD
  • 승인 2008.05.14 14: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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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만개의 불상이 모셔져 있다는 미얀마의 한 사원. 그 곳의 불상들은 순박하고 유치했습니다. 예술적이라거나 고상하거나 세련된 구석이라곤 없었습니다. 사원 여기저기 기도하는 사람들 틈에서 우리 일행이 탄 차를 운전하는 청년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운전을 하다가도 사원을 지나치면 합장을 하곤 해서 가슴을 철렁하게 했었습니다. 불상 앞에서 청년은 오래 이마를 땅에 대고 만트라를 외고 있었습니다. 사원을 나오면서 무슨 기도를 그렇게 열심히 했냐고 물으니까 청년이 머뭇거립니다. 그는 떠오르지 않는 영어를 한참 찾다가 겨우 한 마디를 내놓습니다. 아임 붓다. 나는 웃으며 말을 고쳐 주었습니다. 유민 유아 부디스트. 청년은 알아들었는지 어떤지 그냥 멋쩍게 웃습니다.

미얀마는 예상보다 더 가난했습니다. 10살도 안 된 아이들이 동생을 업은 채 염소를 몰고 나무를 하고 물을 긷고 마을입구 찻집에서 밀크티를 팝니다. 미얀마는 군부독재국가입니다. 비밀경찰이 횡행하고 정부를 비판하면 그 사람은 물론 가족까지 쥐도 새도 모르게 잡혀 들어간다고 합니다.

한편 미얀마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명상수행처들이 있는 곳입니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 45분간 격렬하게 코로 호흡하고 이후 45분 이상 몸의 고통을 관찰하는 혹독한 수행으로 유명한 순룬센터. 우리가 방문했을 때, 스님들의 수보다 휴일을 이용해 방문한 일반인들이 더 많았습니다. 남자들뿐만 아니라 20대의 여인들, 그리고 80세는 족히 되어 보이는 할머니들도 대열 한쪽에 앉아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습니다. 넓은 명상홀을 가득 채운 그들이 격렬하게 호흡하는 통에 마룻바닥에 진동이 느껴졌습니다.

미얀마에서 돌아와 오래지 않아 그곳에 엄청난 태풍이 몰려와 1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군부는 태풍이 오고 있다는 소식을 국민에게 제대로 알리지도 않았고 재해에 대한 아무런 대책도 없었습니다. 참사이후 국제사회 자원봉사인력의 입국을 허락하지 않았으며 유엔에서 보낸 구호물품에 군부장성들이 자기 이름을 써넣어 나누어 주었고 군부의 영구독재를 위한 개헌투표에 찬성표를 던지는 사람에게만 구호물품을 허락했다는 뉴스도 들려옵니다.

미얀마를 다녀온 저로서는 많은 사람들의 안부가 걱정스럽습니다. 명상센터에서 90분간의 고통을 감내하던 할머니와 걷기 수행하던 사람들. ‘나는 부처입니다’라고 말했던 청년. 그들은 인간의 삶이 본질적으로 취약하고 무상하며 분노와 폭력으로는 이 근원적인 고통을 끝낼 수 없다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생각 때문에 지지리도 가난하고 재해대책도 없으며 극악무도한 군부독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걸까요?

▲ 최근영〈KBS 스페셜〉PD

그들에 비하면 지지리도 풍족하나 항상 부족하며 많은 보험료를 내고 있지만 여전히 불안하고 돈과 욕망과 마음의 독재에서 벗어나지 못해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속에서 전쟁을 치르는 저로서는 선뜻 그렇다고 대답할 수가 없습니다. 나는 그저 ‘너는 부처가 아니라 불교신자야’라고 고쳐주고는 약간 우쭐한 감정이 솟구쳐 오르는 그 정도의 사람일뿐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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