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칼럼]새 방송위원장에 대한 궁금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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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칼럼]새 방송위원장에 대한 궁금증
  • 승인 2000.03.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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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통합방송위원회의 방송위원 9명이 지난 12일 임명됐다. 이들 방송위원들의 면면에 대해 말들이 많다. 전문성과 개혁성이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또 이들 중 몇몇은 선정 배경에 의혹이 제기되기도 한다. 아무개 씨는 누구와 개인적 친분이 있어서라는 소문까지 돈다. 방송사 인허가권과 각종 정책권 등 막강한 권한을 갖게 될 방송위원회의 위원에 잡음이 일 것이 빤히 보이는 인물을 추천했다는 것부터가 창피한 일이다. 신중하지 못했을 뿐더러, 어떤 흑심, 혹은 방송에 대한 과소 평가이거나 무지의 결과가 아닌지 의구심이 이는 것은 너무도 당연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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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5|이런 상황에서 지난 2월 15일자와 23일자 일간지에 실린 김정기 방송위원장의 인터뷰 기사들은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이 기사들만 보아서는 방송위원장으로서의 정책구상 전반을 알기 어렵고 모호하지만, 그 대강을 짐작할 수는 있게 해준다. 15일자의 기사에 따르면, 그는 "방송의 주요 정책권을 주무부서인 문화관광부가 가져야 한다"는 평소의 지론을 반복한 것으로 보인다. 또 방송의 산업적 측면을 강조했으며, 정치적 재정적 독립을 이룩해 방송의 공정성을 확보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23일자의 기사에서는 방송위원회의 독자성, 독립성에 대해 보다 강하게 이야기했으며, "타블로이드 방송"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방송의 선정성을 비판하고, 방송의 공정성을 강조했다. 또 방송의 산업적 측면을 좀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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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10|약 8일간의 격차가 있지만, 크게 달라진 것은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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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12|우선 방송이 공정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것의 전제로서 정치 권력과 자본으로부터의 독립 또한 필수적이다. 여기까지는 총론이며, 동어반복이라 할 수 있다. 정작 중요한 것은 방송이 정치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어떻게 독립할 수 있는 가이다. 이 부분에 대한 방송위원장의 견해는 드러나 있지 않다. 오히려 선언적 의미의 선언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정황이 많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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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17|위원장 스스로 방송의 정책권을 정부가 가져야 한다는 소신을 피력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15일자의 기사에 따르면, 그는 이 소신의 정당성을 설명하기 위해 이런 예를 들었다. "북한과의 방송교류를 위해서는 국정원이나 통일부의 협조를 구하고, 디지털 방송의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선 문화관광부 등의 뒷받침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이 예에서, "북한과의 방송교류", "디지털 방송"은 정책이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실무가 "국정원이나 통일부의 협조", "문화관광부 등의 뒷받침"일 것이다. 그는 혹시 정책과 실무를 혼동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는 이 혼동에 근거해 정책권을 정부에 양도하려 한 것은 아닐까. 이 혼동은 한국적 상황에서 곧바로 방송의 정치 권력에의 예속을 초래할 것은 빤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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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22|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은 어떤가. 선정된 방송위원 9명 가운데는 민병준 광고주협회장이 포함되어 있다. 그를 선임한 이유를 문화관광부는 "광고가 방송의 한 축이라는 현실적 측면이 고려됐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이 설명을 받아들인다면, 방송에는 적어도 수십 개의 축이 존재하는데, 그 중 왜 광고가 방송의 중요한 축인지는 납득하기 어렵다. 디지털 방송을 앞둔 상황이라면 디지털 분야의 전문가가 훨씬 중요할 텐데 말이다. 다른 고려가 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민병준 씨의 방송위원 선임은 자본이 제도적으로 권력화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잖아도 방송에 대한 자본의 힘은 점차 증대되어 가고 있는 상황이 아닌가. 물론 이는 방송위원장은 자기와는 무관한 사안이라고 할 수 있다. 만일 그렇게 말한다면, 그가 밝힌 방송의 공정성 확보는 그야말로 구두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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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27|마지막으로 그는 방송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는가 하는 것이다. 23일자 기사를 인용하자면, 그는 방송의 선정성을 비판하면서 "타블로이드 방송"이라는 표현을 썼다. 언론이(방송뿐만 아니라, 신문도) 점점 더 선정적이 되어간다는 원론적인 지적은 백 번 타당하다. 그런데 "타블로이드 방송"이라고 했을 때는 적어도 무엇이 타블로이드인가에 대해서 분명하게, 구체적으로 밝혔어야 하지 않을까? 트로트는 국민 정서 함양이고, 힙합이나 테크노는 퇴폐적인가? 그는 이에 대해서 "불특정 다수인 시청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방송"이라는 상식을 되풀이하고 있을 뿐이다. 그 동안 우리나라의 방송정책은 방송을 마치 부모가 끊임없이 감시하지 않으면 안 되는 철부지, 혹은 정신적 미숙아처럼 여겨온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규제를 철폐하자는 탈규제 움직임이 일 때에도 방송에 대한 규제는 점점 더 강화되어 왔다. 이제는 방송사로부터 무리하게 기금을 징수하면서 압박하기까지 한다. 그리고 그 배후에는 정책입안자들의 계몽적 방송관이 있다. 방송을 "타블로이드"라는 말로 모호하게 비판한 신임 방송위원장은 어쩌면 무책임한 계몽주의자의 전통을 그대로 반성 없이 전수받은 게 아닌가? 계몽적 방송관이 왜 나쁘냐고? 5공 시절을 생각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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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32|최근의 보도내용을 근거로 한 이 글이 신임 방송위원장의 정책과 방송관을 다 파악한 연후의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빠른 시간 안에 그의 방송관과 구상 중인 정책이 있다면 보다 소상히 알 수 있는 기회가 오기를 기대한다. 각 방송현업단체 대표들과 함께 토론을 갖는 것도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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