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기준 10조원 이상 변경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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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채수현 전국언론노동조합 정책국장

방송통신위원회가 방송법 시행령의 개정과 IPTV법 시행령 제정을 통해 보도와 종합편성에 관한 ‘방송채널사용사업’이 금지된 대기업의 기준을 ‘독점 규제 및 공정 거래에 관한 법률’이 정한 ‘상호출자 제한 기업집단’ 중 자산총액 3조원 이상에서 10조원 이상으로 상향 조정하기로 결정했다. IPTV법 시행령 제정을 위한 공청회에서는 오히려 10조원보다 상향 조정하겠다는 뜻을 비치기도 했다.

방통위는 “글로벌 미디어 환경을 고려할 때 대기업이 종합편성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어야 한다”는 개념 없는 모호한 말로 논점을 피하고 있다. 이명박 정권의 미디어정책을 옹호하는 대표적인 논리로써 보도와 종합편성 채널을 런칭하기 위해서는 초기에 막대한 투자가 필요하고 시장에서 성공적인 안착을 위해서도 지속적인 투자가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에 대기업의 참여가 불가피 하다는 것으로 해석 가능하다. 방통위는 지금 보도와 종합편성 채널이 왜 더 필요한지에 대한 논의 없이 자본투자 여력 여부로 대기업의 기준을 바꾼 것이다.

대기업에 보도와 종합편성 채널의 소유를 금지하는 것은 소비자 보다 특정기업의 이익을 대변하여 여론과 시장을 왜곡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도를 포함하는 방송은 권력의 소유를 동반한다. 언제든 권력을 이용하여 민주주의를 위협할 수 있다. 우리사회가 이러한 염려를 불식시킬 만한 명백한 미디어환경과 제도에 획기적인 변화가 생기지 않는 한 임의대로 결정할 일이 아니다. 방통위는 논의 순서를 왜곡함으로써 절차를 무시했다.

규제완화 의도도 불순하다. 애초 IPTV법 시행령은 정보통신부와 방송위원회가 각각 준비했다. 방송위는 10조원 이상을, 정통부는 방송법을 준용하여 3조원 이상으로 하였다. 방송위는 IPTV 시행에 반대하는 케이블 방송사업자를 달래기 위해 방송법 시행령 개정을 시도하면서 대기업의 기준을 상향 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덩달아 방통위가 분별없이 수용한 것이다.

대기업 기준완화는 이명박 정권의 신문∙방송 교차소유 및 겸영 허용을 위한 포석이다. 신문을 소유한 대기업이 보도와 종합편성 채널을 소유하는 경우 신문, 방송사업자는 지배 대기업을 사이에 두고 우회적으로 겸영 및 교차소유가 가능해진다. 재계순위 24위~57위의 기업집단 중 케이블 SO를 소유한 현대백화점, 태광 등은 신문을 소유할 수 있고 보도∙종합편성 채널을 소유할 수 있어 MSO, MPP의 미디어산업 지배력은 도를 넘게 된다.

한나라당의 전방위 방송개방 정책은 지역 지상파방송과 케이블 SO의 겸영 허용도 고려하고 있다. 케이블 SO를 소유한 대기업이 보도∙종합편성 채널을 소유하는 것은 대기업, 지상파방송, 케이블 SO, 보도∙종합편성 P.P를 종횡으로 지배하여 방송의 상업적 편향과 여론 및 경제력의 독점은 더욱 공고해진다.

현행 방송법에 대기업의 기준이 3조원 이상으로 정해진 이유도 분명치 않다. 방송언론을 지배하는 대기업의 기준을 공정거래법상 ‘상호출자제한기업 집단’으로 단순히 정하는 것은 언론의 민주적 기능에 비추어 마땅하지 않다.

IPTV 사업법 시행령 재정에 보도와 종합편성 채널사용사업 가능한 대기업의 확대는 콘텐츠 동등접근권과 망개방에 묻혀 제대로 논의되지 않았다. 다른 조항들은 사업 시행 후 사업자의 지배력이 과도하게 전이되는 경우 언제든 변경가능 하지만 방송사업자 자격요건은 허가 후 부작용이 생겨도 되돌릴 수 없다.

▲ 채수현 언론노조 정책국장

따라서 방송통신위원회의 출범으로 방송∙통신 관련법의 종합적인 제∙개정이 필요한 이때, 논란이 분명한 대기업집단의 기준을 개별법의 시행령으로 개정하는 것은 시기에 맞지 않다. 현행대로 유지하면서 장기적인 미디어산업의 발전과 방송의 공적기능이 지속 가능한 틀에서 사회적 합의를 모아 개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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