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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해 안에 동명의 드라마 2편이 동시에 방송을 타게 되더군요. 조선시대 의적이 2008년 상반기부터 해서 하반기까지 안방을 계속 휘젓고 다니는 거죠. 물론 내용은 차별을 꾀한다고 하지만 정작 제작하는 당사자들은 무척이나 곤혹스러울 겁니다. 중요한 것은 같은 타이틀의 드라마를 방송하기로 양 방송국이 이미 결정을 하였다는 것이고 우연의 일치라고 하며 치부하기에는 꽤 큰 후폭풍이 있을 것 같습니다. 드라마시장 내부에서 생겨난 피치 못할 경쟁이 궁극적으로는 드라마PD의 생존권과 시청자들의 권리까지 훔치게(?) 되는 상황 말이죠.

문제는 이런 상황에 대한 드라마시장 자체의 자정능력일겁니다. 혹시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작년에 ‘직장인 가장의 밴드 성공기’를 다룬 영화가 거의 동시에 개봉한 적이 있습니다. 물론 나중에 개봉한 쪽이 흥행이 더 안 되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당시 그 영화들 중 한 편에 출연했었던 배우가 이런 좋은 영화들을 동시에 개봉할 수밖에 없는 충무로 현실을 개탄하는 인터뷰를 한 기억이 나는데 저는 지금 이 상황에 당시의 상황이 겹쳐지는군요.

물론 드라마가 한두 푼짜리도 아니고 이번처럼 100억 가까운 대작들이 될 경우에는 결정을 하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편성을 하는 것도 변경을 하는 것도 말이죠. 드라마라인업이 삽시간에 되는 것도 아니고 적어도 1~2년 전부터 준비를 해 온 것인데다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당사자들도 너무 많기 때문이죠.

하지만 정작 결정적이고 구조적인 문제가 바로 여기서 발생하게 되는 것이죠. 충무로 영화는 어디 한두 푼짜리인가요? 수많은 인력과 비용이 투자된 비슷한 내용의 작품들이 비슷한 시기에 개봉됨으로써 궁극적으로 충무로가 입게 된 피해를 우리는 목도했습니다. 지금 드라마의 상황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솔직히 그렇게 수많은 이해관계자들이 걸려 있고 엄청난 돈이 걸려 있는 사극 프로젝트라면 이런 모든 상황들을 고려해 오히려 좀 더 신중하고 좀 더 합리적인 결정을 내렸어야 하지만 각 방송국 드라마 제작의 주체들이 그런 의무를 방기하지 않았나하는 아쉬움이 드는 거죠. 그게 아니라면(저는 이 정도이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아마도 모든 상황들을 다 고려하고서도 전략적인 선택을 하였다고 볼 수밖에 없는데 이것은 서로에게 출혈을 강요하는 어려운 상황이 되더라도 일단 시청률 경쟁에서 이겨야한다는 대단히 섬뜩한 결정이라고 보아야겠지요.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기사에서 보았듯이 분명히 두 작품의 차별화는 이뤄질 겁니다. 그리고 분위기도 많이 다르겠죠. 그런데 시청자들의 권리는 어떻게 되는 것이죠? 왜 하필이면 2008년에 같은 이름을 한 의적의 이야기를 상반기와 하반기에 나누어서 비교해보고 그 색다른 매력을 찾아보는 노력까지 시청자들이 해야 하는가에 관한 문제 말입니다.

▲ 박기호 KBS 드라마 기획팀 PD

어쩌면 대박이 될 거라고 입소문이 나면 일단 무조건 자사의 프로그램 라인업에 잡아 놓고 정작 새로운 기획을 쏟아낼 수 있는 젊은 연출가들과 신인작가들의 등용문 자체는 막아버리는 안타까운 현실이 이런 일을 부채질하는 게 아닌가하는 아쉬움이 드네요. 절박한 지상파의 경영악화 상황이 문제이긴 하지만 당장 급하다고 언제까지나 스스로 고기를 잡을 수 있는 법 배우는 것을 계속 미루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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