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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상식의 빈 자리를 채워주는 "영상 여행"의 즐거움
  • 승인 2000.03.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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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은 즐겁게 시청할 수 있는 좋은 프로그램이다. 그렇게 된 데에는 몇 가지 역설적인 요인들이 작용하고 있다. 첫 번째 역설적 요인은 방송 시간대이다. 이에 대한 설명을 위해서 kbs 가을 개편 관련 토론회의 한 장면을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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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2|외부참석자 : 처럼 좋은 교양 프로그램들을 프라임 타임에 방송하면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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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4|내부연구원 : 늦게 귀가해서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는 지금 시간대도 좋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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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9|이 장면에 등장한 외부참석자는 프라임 타임 대에 연예오락물 일색으로 편성된 상황을 비판하는 것이어서 큰 뜻에서는 옳은 문제의식이었다고 할 수 있지만, 어떤 프로그램들은 차라리 늦은 밤 시간으로 밀려나 있음으로 해서 더 빛나는 경우가 있다. 가령 11시대에 방송되는 <이소라의 프로포즈>가 인기를 끈다고 해서 10시로 옮겨가게 되면, 차분한 감상과 잔잔한 토크에서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을 많이 포기해야 한다. 의 경우도 같은 이치로 생각할 수 있다. 날을 넘겨 새벽 12시 10분에 편성되어 있다면 실로 변방 중의 변방으로 밀려난 시간대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다른 방해 없이 차분하게 프로그램에만 몰입할 수 있다는 역설이 성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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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14|두 번째 역설적 요인은 적은 제작비이다. 해외 제작물로서 은 아주 적은 제작비를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것은 1인 제작 체제를 취한 데에서 가능해진 것 같다. 일반적으로 pd는 지휘자에 비유되지만, 이 프로그램의 경우 기획, 구성, 촬영, 편집 등 작곡가와 연주자의 역할까지 상당 부분 맡게 되어 있다. 이처럼 일련의 작업을 한 명의 pd가 통일된 관점에서 직접 수행함으로써 그는 작가적 위상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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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19|하지만 이는 적은 제작비에서 프로그램의 최적화를 이루어냈다는 뜻이지 돈을 적게 들였기 때문에 프로그램이 더 좋아졌다는 말은 아니다. 이 시청의 즐거움을 주는 프로그램이라고 한 뜻은 그동안 누구나 알고 있다고 여겨왔으되 기실 따지고 들어가 보면 알맹이를 갖고 있지 못하던 상식의 빈자리를 이 프로그램이 채워준다는데 있다. 그래서 이 프로그램은 시청자에게 익숙함과 새로움을 동시에 만족시켜 준다.하지만 거기까지이다. 제작비가 적기 때문에 문화 "기행"이라고 해도 사실상 제작의 중심은 국내이고 외국 출장은 그림과 현장성의 보완 정도에 머물 수밖에 없다. 따라서 그 소재는 국내에 널리 알려져 있는 대상에 치중하게 되고, 재활용할 수 있는 기성의 영상물들이 많아야 한다. 을 보면서 소재와 관련된 극영화의 장면들이 어떤 경우 꽤 비중 높게 사용되는데 그런 저간의 사정을 떠올리면서 미소짓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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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24|그래서 은 익숙한 대상에 대해 아는 줄 알았는데 막상 구체적으로는 떠올리지 못하던 내용을 아주 잘 정돈된 형태로 새로 알게 된다는, 이를테면 절판되었다가 새로운 장정을 하고 등장한 교양서적을 접할 때의 산뜻한 즐거움은 주지만, 새로운 대상과 관점, 더 해박하고 심층적인 지식과는 격을 같이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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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29|kbs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라있는 최근 스무 편의 목록을 보니 시청하고 나서 "교양"이 되어 몸 여기 저기 스며들어 있던 열 편의 내용과 시청 당시의 감흥이 다시 살아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날아가는 듯한 스트라디바리와 긁어대는 과리넬리의 소리를 비교해 듣던 그 새벽, 디에고 리베라의 열정, "네루다여 영원하라"는 장의 행렬의 외침이 주던 뜨거운 그 무엇, 도시 전체를 명작의 고향으로 살려낸 조이스의 더블린, 그리고 "이걸 왜 못 봤을까"하는 자책에 머릴 쥐어뜯게 만든 나딘 고디머와 호세 마르티 등 그 제작 목록을 보게 되면 의 교양의 지향이 그저 "쇼팽의 연인들" 수준에 머물고 있지 않음을 금세 알 수 있다. 즉, 분단시대에 나타날 수밖에 없는 한 징후인 사상과 교양의 편향성을 극복하고자 하는 제작진의 숙고와 노력이 느껴진다. 특히 그동안 보여왔던 단편적인 아이템의 완결을 넘어 하나의 소재를 다각도로 조명하는 "선" 3부작과 같은 시도는 앞서 나열한 소재의 다양화 경향과 더불어 의 지향점을 짐작하게 하면서 기대를 갖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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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34|그래서 제안하는데 이 보여온 이런 노력이 질적인 성취로 이어질 수 있도록 다만 "안전빵"으로 가는데 머물지 말고 더 과감한 기획을 수용하면 좋겠다. 가령 태국 하면 떠오르는 민속 무용은 텔레비전 화면에 상투적으로 등장하는 그림이지만, 그 무용수들의 삶을 조명한다면 그것은 새로운 시도일 수 있다. 또, 장기간 바다를 항해하는 항공모함 같은 폐쇄된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병영 문화라든가, 난민촌 같은 자연 발생의 공간 구성의 특징, "칼"이나 "길"과 같은 단일한 대상을 풍부한 상상력을 동원하여 다면적으로 조망하는 시도 등 문화의 개념을 유형의 성취물로서의 문화재와 예술작품에 국한시킬 것이 아니라 현재도 살아있는 무형의 것으로 확장시키면 어떨까. 그러기 위해서는 제작 과정의 최종 단계로서의 해외 출장이 아니라 기획과 자료 조사 단계에서부터 작업 방식의 융통성이 기해져야 할 것 같다. 저예산으로 이만큼 만들면 되지 않느냐는 인식보다는, 그런 상황에서 어떤 가능성을 보여준 제작진들에게 더 많은 자원을 배분해야 한다는 판단도 자연스러운 상식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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