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의 눈]촛불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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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의 눈]촛불의 의미
  • 공태희 OBS〈문화전쟁〉PD
  • 승인 2008.06.25 15: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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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촛불이야기입니다. 심각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6·10항쟁과 맞물렸던 2주 전, 무작정 카메라를 들고 거리로 나갔습니다. 촛불 전체의 흐름에는 집중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하나하나의 촛불이 궁금했습니다. 딱히 듣고 싶던 대답이 있던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정말로 묻고 싶은 질문 두 가지가 있었을 뿐입니다.

“당신에게 촛불은 어떤 의미입니까?”
“촛불 하나로 세상이 변할까요?”

방송을 위한 인터뷰라기보다는 삼촌 혹은 이웃집 동생과 조금 심각한 대화를 하는 것처럼 묻고 싶었고 또 그렇게 물어보았습니다. 몇 차례 언론과의 인터뷰 경험이 있는 듯 화려한 언변도 드물지 않았고, 조카 혹은 이웃집 손위 형에게 말하듯 어눌하지만 편안한 대답이 많았습니다.

“자기 자신을 태워서 세상을 밝히는 초처럼 우리 아이가 그렇게 살았으면 하는 염원을 가지고 나왔다”는 젊은 아버지, 그리고 아빠의 손을 꼭 붙잡고 있는 6살 꼬마.
“우리나라를 열심히 응원하기 위해 나왔다”는 초등학교 5학년, 그리고 그 아이의 친구들.
“힘없는 사람들이 변화를 이야기하기 위해 촛불을 들고 있다”는 40대 초입의 직장인, 그리고 그의 동료들.
“각자가 믿는 방법대로 해보고, 안되면 다른 방법도 해보자”며 촛불 대신 기타를 들고 노래하는 20대 청년, 그리고 그의 연인.

촛불이 얼마나 더 오랫동안 거리를 밝힐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은 하지 않았습니다. 또 모이고 모인 촛불의 물결이 멈추어야 하는 지점은 어딘가에 대한 질문도 하지 않았습니다. 지난 6주간 촛불의 규모에 열광했던 사람들도, 20세기적 권위주의와 리더십만이 이 나라를 구원할 유일한 힘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역시 촛불의 규모에만 집착하지는 않았을까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광화문 네거리를 중심으로 전국 방방곳곳에 밝혀진 촛불을 그저 하나의 생명체로 간주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언론의 관심도 몇 만 명의 시민이 모였고, 몇 십 만개의 촛불이 거리를 뒤덮었다는 식의 표현으로 헤드라인을 주로 장식했었으니까요……. 촛불은 네트워크가 되었지만 분명 이 슈퍼 네트워크를 만든 동력은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의지와 두 손에서 시작했을 것입니다. 잠들지 않는 서울의 밤을 밝히고 있는 촛불, 그 촛불을 들고 있는 사람에게 묻고 싶었을 뿐입니다. “당신에게 촛불은 어떤 의미입니까?”

거리 취재를 마치고 편집을 끝내고 방송까지 보내 지금, 거리에서 들었던 답변 중 하나를 제 나름대로 베스트 리플로 선정해 봅니다.

▲ 공태희 OBS〈문화전쟁〉PD

“촛불은 내리면 꺼지지만, 다시 붙이면 붙는다. 그래서 촛불은 꺼지지 않는다.”

그리고, 만일 누군가 제게 촛불의 의미를 물어본다면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거리의 촛불에는 위아래도, 좌우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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