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포츠를 탄생시킨 ‘리얼리티 쇼’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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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저녁, 언제나처럼 TV 리모컨을 움켜쥐고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고 있으면 종종 한국의 주말드라마와 오락 프로그램들이 그립기도 하다.주말이라고 해서 영국 스타들이 나오는 드라마를 기대하는 건 지나친 욕심이다. 아무리 눈 씻고 봐도 영국 드라마에는 주 드로, 케이트 윈슬렛 혹은 키이라 나이틀리 같은 스타들이 출연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맥 플라이 같은 영국의 보이 밴드가 출연하는 쇼 프로그램이 있는 것도 아니다. 영국에서 TV와 함께 주말을 보내야 한다면 도대체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 폴 포츠

영국의 주말 저녁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TV 프로그램 장르는 바로 리얼리티 쇼다. 2007년 BBC에서는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리바이벌 뮤지컬 <죠셉>의 주인공을 뽑는 리얼리티 쇼를 방영하여 큰 호응을 얻었다. 주인공 죠셉으로 뽑힌 리 미드는 일약 런던 웨스트앤드의 뮤지컬 주역으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고, 비록 주인공으로 뽑히진 않았지만 영국의 대형 슈퍼마켓 체인인 테스코에서 점원으로 일하던 키스 잭은 마지막까지 치열한 접전을 펼치면서 뮤지컬 스타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앤드류 로이드 웨버는 뮤지컬 주인공을 뽑았을 뿐 아니라 영국 전역에 그의 뮤지컬 <죠셉>이 새로운 버전으로 제작됨을 알릴 수 있게 됐다.

한편, 영국의 민영방송 ITV는 2007년 <브리튼 갓 탤런트>라는 리얼리티 쇼를 제작하여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영국판 전국 장기자랑 쇼라고 할 수 있는 <브리튼 갓 탤런트>는 영국 전역에서 모여든 소시민들이 자신들의 끼를 마음껏 펼치는 무대이기도 하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휴대전화 가게 매니저였던 폴 포츠는 일약 세계적인 오페라 스타로 떠올랐다.

이렇듯 이제 영국에서 리얼리티 TV쇼를 통해 새로운 스타가 탄생하는 것은 특별한 일도 아니다. 영국의 팝 아이돌 프로그램인 <X 팩터>를 통해 윌 영과 가레스 케이츠가 세계적인 팝스타로 성장했고, <빅 브라더>라는 리얼리티쇼에 출연해 스타덤에 오른 제이드 구디는 그녀의 이름을 내건 향수가 만들어질 정도로 유명해 졌다.

영국의 리얼리티 TV 장르는 콘테스트 형식에서부터 다큐형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포맷으로 TV를 점령하고 있다. 누구나 아는 유명 연예인보다는 거리를 지나다니면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 TV에 가득한 것도 워낙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TV는 더 이상 특별한 사람들을 볼 수 있는 창이 아니라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들여다보는 거울 같은 매체로 인식되고 있다. 나와 비슷한 뚱뚱한 사람이 살을 빼기 위해 나오고, 나처럼 늙어 보이는 사람이 10년 젊어 보일 수 있는 비결을 얻기 위해 나온다. 하지만 재밌는 것은 이렇게 평범한 사람들이 리얼리티 TV 프로그램을 통해 아주 특별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최근 ‘어떻게 TV가 영국을 변화시켰나?’라는 주제로 제작된 채널4의 다큐멘터리에서 말했던 것처럼 TV는 이제 특별히 재능 있는 사람만이 나오는 네모상자가 아니라 누구나 나와서 명성을 얻을 수 있는 무대가 된 것 같다. 특히 <빅 브라더> - 스무 명 남짓의 일반인들이 동거동락하며 그들의 사생활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프로그램 - 출연자들 가운데 상당수는 유명인이 되고자 하는 바람을 스스럼없이 말하기도 한다.

▲ 영국=배선경 통신원/ LSE(런던정경대) 문화사회학 석사

정해진 줄거리 없이도 개인의 감정과 내면에 최대한 밀착하여 감동과 재미를 주는 리얼리티 프로그램들은 TV와 나와의 심리적 거리를 상당히 가깝게 만들고 있지만, ‘값싼 재료로 만들어지는 상술이 가득한 햄버거’ 같은 느낌을 주지 않으려면 이 프로그램들의 상업적 위험성에 대한 계속적인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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