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램 리뷰] ‘태양의 여자’ 통속극의 반가운 성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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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가 모처럼 웃었다. 1~2년 동안 처참할 만큼 저조했던 미니시리즈 성적이 마침내 반등하기 시작했다. 수목드라마 〈태양의 여자〉(연출 배경수, 극본 김인영)가 KBS를 웃게 한 주인공이다.

비록 경쟁 드라마 SBS 〈일지매〉에 비해 시청률이 10%p 이상 뒤처지고, 아마도 지난 1~2년간 가장 성공한 KBS 미니시리즈였을 〈쾌도 홍길동〉의 평균 성적에도 못 미치지만, 시청률의 유독 가파른 상승세가 기분 좋은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 5월 28일 6.7%의 시청률로 출발한 〈태양의 여자〉는 1주일 만에 10.2%로 껑충 뛰어오르더니 지난 10일엔 17.4%(이상 TNS미디어코리아 집계)라는 자체 최고 기록을 세웠다.

▲ KBS 수목드라마 '태양의 여자'의 출연진. 왼쪽부터 한재석, 이하나, 김지수, 정겨운 ⓒKBS
〈태양의 여자〉의 선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KBS 미니시리즈의 침체기와는 별개로 진부하고 해묵은 설정을 너그러이 이해해줄만한 시청자들이 얼마나 있을까 싶었다. 누구나 인정하듯이 〈태양의 여자〉의 소재는 뻔하고 진부하다. 거칠게 말하자면 출생의 비밀, 복수, 4각관계가 이 드라마를 설명하는 핵심이다.

교수 양부모에 입양된 도영(김지수)은 어린 시절 파양될 것이 두려워 동생 지영(사월·이하나)을 서울역에 버렸다. 20년 후, 기억을 찾은 사월은 도영에 대한 복수를 계획하고, 도영 역시 지지 않고 맞선다. 준세(한재석)는 사월을 아끼면서도 약혼녀인 도영을 지키려 하고, 사월의 보육원 친구인 동우(정겨운)는 도영을 향한 사랑을 접지 못한다.

출생의 비밀이란 설정, 두 여자의 처절한 복수극, 이들을 지키는 두 남자의 헌신적인 사랑은 90년대 드라마에서 많이 본 듯한 인상을 준다. 전혀 새롭지 않은 소재의 드라마인데 시청자들은 열광한다. 역시 출생의 비밀 따위로 드라마를 엮었던 〈문희〉나 〈어느 멋진 날〉 등이 외면당한 기억이 생생한데도 말이다. 왜일까.

드라마의 관심은 ‘도영과 사월의 과거가 어떻게 폭로될까’ 정도일 뿐인데,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인물들의 심리는 꽤 긴장감을 자아낸다. 생방송에서 사월과 도영이 “그런데 왜 사랑받은 티가 안 나지?”, “닥쳐. 네 목을 부러뜨리기 전에”라며 거침없이 대사를 주고받을 때, 대사의 강도만큼 인물에게 생겨나는 감정의 파동이 그대로 포착된다. 덕분에 시청자들은 어느 드라마보다도 강한 집중력을 발휘해 드라마에 몰입할 수밖에 없다.

▲ 사월(왼쪽)과 도영은 20년 전의 사건을 두고 복수극을 벌인다. ⓒKBS
배우들의 호연은 단연 빛난다. 아나운서라는 역할조차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완벽한 캐릭터 몰입을 보여주는 김지수, 친엄마의 외면에 눈물을 흘리며 만두를 삼키는 이하나, 그리고 여배우들을 뒷받침하는 역할에 그치지 않고 그 자체로 믿음을 주는 한재석과 정겨운의 연기도 일품이다. 〈태양의 여자〉는 아마도 많은 부분 이들에게 빚을 지고 있을 거다.

〈소문난 칠공주〉를 연출한 배경수 PD와 〈결혼하고 싶은 여자〉, 〈메리대구 공방전〉 등에서 통통 튀는 캐릭터로 발랄하게 일상을 그려냈던 김인영 작가는 〈태양의 여자〉를 통해 상당히 수준 높은 통속극의 절정을 선보이고 있다.

이들은 통속극이 결코 저급한 것이 아니며,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 가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성과를 얻을 수 있다는 깨우침을 터득한 듯하다. 그래서 〈태양의 여자〉는 뻔한 소재에, 어느 시청자 층에게나 호소할 수 있는 통속극이면서도 전개나 결말을 섣불리 예상할 수 없게 한다.

제작진은 작품 기획의도에서 “서로가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인, 피가 섞이지 않은 두 자매의 이야기”라고 설명하며 “궁극적으론 인간애를 그려보고 싶었다”고 밝혔다.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인 도영과 사월은 서로를 벼랑 끝으로 내몰지만 그들은 결코 선과 악으로만 구분되는 인물이 아니다.

어디 도영과 사월만 그럴까. 인간이 대부분 악하면서도 가엾고, 한없이 나약하다는 것을 〈태양의 여자〉는 보여주고 있다.

‘명품 드라마’란 평가는 다소 어색한 감이 있지만, 일련의 통속극 연장선상에서 〈태양의 여자〉가 특별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이제 남은 4회 동안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갈지가 관심사다. 드라마 초반에 가졌던 우려가 결말에 이르러 찬사로 바뀌는 ‘반전’을 내심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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