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미국은 왜 공정성 원칙(Fairness doctrine)을 폐기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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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공정성 원칙은 공적으로 중요한 쟁점에 대해 대립되는 여러 견해를 다룰 때에는 상대편에게도 상당한 방송기회를 가질 수 있게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는 이른바 ‘균형’의 의무를 말한다. 그런데 지극히 당연하게 보이는 이 개념 속에는 미국 정당간 치열한 당파적 투쟁과 이념적 대립 그리고 국가 폭력이 들어 있다.

1920년대 미국은 사회주의 이념이 활발히 논의되던 시기였다. 일례로 1931년 영국 극작가 버나드 쇼는 CBS 라디오를 통해 공산주의를 찬양하고, 미국을 비판하는 방송을 하였다.이러한 시대 분위기속에서 연방무선전파위원회는 1929년 공정성의 개념을 수립했는데, 이 개념을 도입해 ‘편파적인’ 진보 성향의 방송을 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1929년에는 ‘좌익’의 시카고노동연맹이 단체 홍보 목적으로 라디오 방송국 매입을 시도하자 같은 독트린을 적용해 무산시켰다.

여세를 몰아 FCC는 공정성 원칙을 1949년 공식 조항으로 채택하였으며, 공정성 원칙을 방송사 재허가 심사에 반영하여 큰 영향력을 끼쳤다. 정치권은 이러한 공정성 원칙을 놓치지 않고, 선거등의 이해관계에 활용했다. 그중의 하나가 케네디 대통령이다.

1964년 존 F 케네디 대통령 후보는 극우 성향의 공화당 대통령 후보 배리 골드워터의 정치적 입지를 약화시키기 위해 공정성 원칙을 강하게 밀어붙여 골드워터를 지지했던 보수 성향의 라디오들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도록 막아냈고 결국 승리를 거두었다.

당연히 공정성 원칙이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킨다는 반발이 끊임없이 있었다. 급기야 미국 법원은 1973년 “공정성 원칙이 표현의 자유를 신장하기 보다는 위축시킨다”며 “비록 공정 보도를 위한 것일지라도 정부가 언론 규제에 직접 개입하도록 하는 것은 수정헌법 제1조에 위배된다”라고 판시했다. 공정성 원칙이 오히려 언론 자유를 위축시킨다는 연방 법원의 결정은 이후 미국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결정과 1980년대 레이건 행정부의 규제철폐 움직임과 맞물려 1987년 FCC는 공식적으로 공정성 조항을 폐지했다. 그러면 미국은 어떤 이유로 공정성 조항을 폐지한 것인가?

첫째, 공정성 조항은 언론에 위축효과(Chilling Effect)를 가져와 아예 논란이 되는 사안을 보도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공공의 이익에 역행하는 효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위축 효과는 구체적으로는 방송사 재허가, 소송과 맞무려 있다. 재허가와 소송을 무기로 국가와 상대자가 위협을 가할 때, 방송사는 ‘자기 검열’을 발동해 보도에 위축이 올 수 밖에 없게 된다는 것이다.

둘째, 연장선상에서 공정성 조항은 국가 규제의 한 방식으로, 상당한 내용간섭이라는 것이다. 국가 기관이 방송사로 하여금 무엇을 어떻게 말하라고 제도적으로 강제하는 것이 되므로 공정성 조항은 ‘사전 검열’과 ‘국가 폭력’의 효과를 지니는 ‘빅 브라더’로 방송사를 짓누르고 있으므로 표현의 자유를 심대히 훼손하는 위헌성을 띄고 있다는 것이다.

셋째, 다매체 다채널 시대를 맞으면서 시청자들이 자유롭게 채널을 선택할 수 있으므로 ‘전파 희소성’의 이론에 근거한 공정성 조항은 폐기하는 것이 맞다는 것이다. 즉, 공정성은 한 채널안에서 구현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 전체 미디어 지형에서 판단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이다.

▲ 박건식 MBC 시사교양국 PD

원론적으로 볼 때, 공정성의 원칙은 알권리와 표현의 자유를 신장시킬 수도 위축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현실속으로 들어가면, 공정성의 원칙은 항상 정치권과 정치권에 사실상 예속된 정부 기구에 의해 악용되어 왔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과연 한국은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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