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의 눈] 엔지 컷 2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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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의 눈] 엔지 컷 2초
  • 최근영〈KBS 스페셜〉PD
  • 승인 2008.07.30 15: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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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해 온 테이프를 프리뷰하다 깜짝 놀랄 때가 있다. 달라이 라마의 미국 강연을 취재하고 돌아와 편집실에서 테이프를 보다가 또 한 번 놀란다. 달라이 라마의 강연에 감동했다고 ‘인크레더블’을 연발하는 미국인과 인터뷰를 끝내고 카메라 앞으로 걸어 나가는 내 모습이 2,3초 정도 카메라에 담겼다. 앞의 인터뷰가 끝나기가 무섭게 튀어나와 뒤를 돌아보며 촬영감독을 재촉하는 나의 얼굴에는 급한 마음이 역력히 드러나 있다. 2,3초면 충분하다.

저런 얼굴로 스태프들 앞에서 다니면 주변 사람들 참 피곤하겠지 싶다. 여전히 나는 현장에 나가면 마음이 급하고 초조해하고 예민해진다. 10여년 그렇게 사는 동안 그런 속마음을 감추는 법을 어느 정도 연마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전혀 아니다. 모든 것이 드러나는 데 2초면 충분하다. 스태프들이라고 그것을 왜 모르겠는가.

<추적 60분〉의 한 선배는 키가 큰 카메라감독과 촬영을 나가 사건현장을 밀고 들어가는 장면을 프리뷰하다 기절하는 줄 알았다고 한다. 촬영감독의 키가 크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가 본 것은 음습한 퇴폐이발소의 현장도 아니고 억대도박판이 벌어지는 현장도 아니었다. 그것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자신의 뒷모습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정수리부분의 숱이 엄청나게 빠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부감이었기에 가능한 적나라한 앵글이었다. 그는 편집기를 조작하던 손으로 뒷머리를 더듬었다.

입사 초에 본의 아니게 리포터 역할을 한 적도 있다. 가족에게 사랑을 전하는 내용을 나그라 테이프에 녹음해 가서는 갑자기 틀어준다는 콘셉트였다. 사실 나는 다른 무엇보다 말하고 움직이고 행동하는 내 모습이 놀라워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카메라 안에서 말하고 움직이고 행동하는 사람은 내가 상상해 온 내가 아니었다. 수십 년간 거울을 볼 때에 내가 얼마나 나를 속여 왔는지 만천하에 드러난 순간이었다. 나는 한 번도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았던 것이다.

따지고 보면 기억 속의 나 또한 그런 식으로 뒤틀려 있다. 자신의 보고 싶은 면만 보느라 얼마나 애를 썼는지 그리고 그것을 합리화하기 위하여 또 얼마나 많은 수고를 했는지 생각해보면 그 모든 것이 새삼스럽게 황망하다. 나는 부감 tit으로 나의 뒷모습을, 정면으로 나의 마음을 볼 수 있을까. 나의 속 좁음을, 나의 이기심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을까.

요즘 친구나 친지들을 만나면 “너희 회사 어떻게 된 거야?”란 말을 인사처럼 듣는다. 반은 공격적이며 반은 걱정해주고 혹은 걱정인 체한다. 물론 내게도 견해가 있다. 그리고 그들의 무책임한 공격성이 기분 나쁘다. 모두들 남에 대해서는 한없이 엄격하다. 게다가 잘못된 정보와 편견을 가지고 달려들 때 그 기세가 더 등등하다. 그들이 이용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미치자 분노가 일어난다.

▲ 최근영〈KBS 스페셜〉PD

대답이 확 튀어나오려는데, 순간, 무언가 번쩍, 한다. 오케이 컷 사이에 얼핏 끼어든 PD의 모습이 거기 있다. 기나긴 2초. 나는 내 마음을 힐끗 본다. 나는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을까. 나는 나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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