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통신] 일본에서 보는 일본문화의 개방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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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후쿠오카의 한 방송인한테서 전화가 왔다. 최근의 한일 양국관계 개선에 발맞춰 그동안 개인적으로 해오던 한일교류 활동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후쿠오카에 있는 한국인, 재일동포, 일본인 유지들과 더불어 정식으로 단체를 결성했다 한다. 축하파티에서 거나하게 한 잔 걸치고 술기운에 전화를 한 것인데, 들뜬 목소리는 조금은 뜬금없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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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3|"어이, 송군, y2k, 러브레터, 철도원! 정말이지 대단하네. 수십년 한일교류를 위해 애써온 나로서는 약간 씁쓸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하여간 감격이네 감격!" 서울특파원 경력을 가진 이 한국통 방송기자를 감격하게 하고 수십년간에 걸친 개인적인 교류활동이 문화가 지니고 있는 영향력에 비해 얼마나 무력한 것인지를 실감하게 한 변화가 최근 한국과 일본 양쪽에서 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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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6|일본의 텔레비전에 소개된 몇 가지 화제를 중심으로 이러한 변화의 양상을 한 번 살펴보기로 하자. 얼마전 민방의 와이드쇼에서는 연일 y2k가 화제였다. 세 명중 두명이 일본인인 이 그룹이 한국 청소년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이면 무조건 미워할 것임에 틀림없는 한국인들이 일본가수에 열광하다니..." 프로그램 출연자들의 말에서는 이런 뉘앙스가 풍겼는데, 발을 동동구르며 거의 광적으로 일본인 가수들을 외쳐부르는 한국의 어린 여학생들의 모습은 내가 봐도 신기하고 재미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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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9|서울에까지 출장가서 취재·제작한 y2k 얘기는 와이드쇼뿐만 아니라 뉴스에도 빈번히 등장했는데, 텔레비전 화면을 보다가 정작 나 자신조차 깜짝 놀라고 말았다. 자료화면으로 한국의 어느 텔레비전 쇼프로 영상이 나오는데, 아니, 우리 청소년들이 일본국기 히노마루를 흔들어대며 아우성을 치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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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12|또 하나 일본의 텔레비전이 빼놓지 않고 방송한 화제는 일본영화 러브레터와 뽀뽀야(철도원)가 한국에서 빅히트했다는 것이었다. 서울의 극장가와 관객들은 물론 러브레터의 촬영지인 혹카이도를 찾은 한국인 단체여행객들(대부분 젊은 여성들)이 눈밭에 엎어지며 "겡키데스카?, 와타시모 겡키데스(잘 있어요? 나도 잘 있어요)"하며 소리치는 장면이 자주 텔레비전에 나왔다. 한국여성 관광객들 대부분이 이와이순지 감독, 여주인공 나카야마 미호의 이름을 줄줄 읊어댄다. 러브레터를 열번 가까이 봤다는 어떤 아가씨는 영화에 나오는 일본말이 너무나 멋있어서 일본어 공부를 본격적으로 하기로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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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15|한편, 한국에서 히트한 일본영화가 한참 화제가 되고 있는 동안에 이번에는 일본의 텔레비전에서 크게 떠들어댄 한국영화가 있었다. 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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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18|개봉을 전후하여 연일 텔레비전 브라운관을 장식했는데, 영화평론가는 꼭 봐야할 영화라고 추천한다. 극장에서 나오는 관객들은 "감동해서 울었다" "일본 영화보다 훨씬 낫다" "한국에 가보고 싶다" "최민식이 연기가 너무 멋지다" 등등 카메라 앞에서 소감을 쏟아낸다. 극장밖에 나와서도 축축한 눈가를 줄곧 손수건으로 찍어 누르는 여자관객도 있다. 비극적인 사랑얘기에 감동을 받았을뿐만 아니라 남북한의 갈등과 대립을 전혀 몰랐는데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었다고도 한다. 그 쉬리가 엊그제 드디어 관객수 백만을 돌파했다. 일본에서 수입해 상영한 아시아영화로서는 전대미문의 대히트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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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21|주인공 한석규가 나오는 "8월의 크리스마스"도 제법 관객이 들었었는데, 쉬리를 본 관객들은 다시 한석규가 나오는 "8월의 크리스마스"를 비디오로 빌려다 보고, 최민식이가 나오는 다른 영화는 없는지 찾기 시작했다고 한다. 영화 쉬리의 영향은 또 다른 방향으로도 파급되고 있다. 며칠 전 tv를 보던 아들 녀석이 소리쳤다. "아빠, 이거 쉬리에 나오는 음악 아녜요?" 무슨 강력사건에 관한 민방의 보도제작 프로였다. 가만 들어보니 정말이지 줄곧 쉬리 음악을 배경음악으로 쓰고 있는게 아닌가. 담당pd가 어지간히 영화 쉬리의 음악이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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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24|또 있다. 토쿄시내 유명 수족관에 키싱구라미가 처음으로 등장하고 발렌타인데이를 앞두고는 열대어 가게들이 앞다투어 키싱구라미를 선물용으로 들여놓았다. 키싱구라미를 찾는 젊은 연인들이 갑자기 늘어났기 때문이란다. 아는 일본사람한테 물어보니 그전에는 키싱구라미라는 물고기 이름은 들어본 적도 없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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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27|y2k, 러브레터, 철도원. 이들 이른바 일본의 문화상품이 한국에서 히트를 기록하고 한국 인들의 대일인식에까지 영향을 미치게된 데는 물론 한국정부가 취한 일본문화의 개방정책 이 있다. 그렇다면 일본에서 쉬리가 대히트한 까닭은? 당연히 영화자체의 재미와 완성도가 가장 큰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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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30|하지만, 한국정부의 일본문화 개방정책 또한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일본영화가 한국에서 크게 히트하고 있다는 사실이 일본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됨으로써, 일본인들의 한국에 대한 저항감이 적잖이 희석되었고 동시에 한국과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이 상당히 높아진 때문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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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33|이런 맥락에서 생각한다면 한국의 일본문화 개방정책은 단순히 한국시장 진출을 노리는 일본인들에게 있어서뿐만 아니라 일본시장 진출을 염두에 두고 있는 한국의 음악, tv, 영화 산업 종사자들한테 있어서도 기회의 확대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쉬리의 뒤를 이어 일본시장을 석권할만한 문화상품이 과연 한국에 얼마나 더 있을까. 한국시장을 일방적으로 일본에 내주는 것으로 끝나고 말 것인지, 한국보다 몇 배나 큰 일본시장을 한국의 문화상품으로 넘치게 할 것인지, 일본문화 개방시대에 한국 문화산업 종사자들의 능력이 시험대에 올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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