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유대주의 만평가의 ‘정치 풍자’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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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의 자유가 도덕적으로 옳지 않은 생각에도 적용되어야 할까. 프랑스는 한 만평가를 둘러싸고 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지네(Sine)라는 작가명을 쓰는 79세의 만평가가 그 주인공이다.

이 고령의 만평가는 강제 노역으로 국가에 시달린 아버지를 보며 국가, 경찰 등에 대한 반감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알제리 독립전쟁 기간에는 반식민주의 입장을 견지하며 프랑스 정부를 비판하였고 전쟁이 끝나던 1962년에는 당시 재직 중이던 렉스프레스(l’Express)지를 떠나 반식민주의, 반자본주의 등을 기치로 내건 신문을 창간하기도 했다. 그 후에는 텔레비전과 라디오 방송에도 참여하며 왕성히 활동해 왔다. 최근까지 그는 샤를리엡도(Charlie Hebdo)라는 정치풍자 주간지에서 만평을 그려왔다. 

▲ 만평가 지네의 해고 결정을 지지한 사설

하지만 우리의 지난 정권에서의 보수언론들처럼 정부에 비판적이라는 것이 정치적, 도덕적인 면에서 올바른 생각을 지녔다는 반증이 될 수는 없다. 지네의 경우 유대인에 대한 혐오감이 꾸준히 문제가 되어 왔다.
대표적인 것이 1982년 8월 9일의 로지에 거리 난사사건에 대한 지네의 입장표명 논란이었다. 이 사건은 이슬람 과격분자로 추정되는 무장괴한 5명이 파리 시내 한복판에서 난사한 총에 6명이 사망하고 22명이 부상당한 일이다.

참사 며칠 후 방송된 라디오 토론 프로그램에서 지네는 “나는 반유대주의자”라고 공개적으로 밝히며 “모든 유대인이 두려움에 떨며 살기를 바란다”고 말해 물의를 빚었던 것이다. 그는 방송 후 ‘인종주의와 반유대주의 거부 국제연맹’에 공식적으로 사과하며 자신이 취해 있었다고 변명했었다.

지네가 이번에 다시 ‘사고’를 친 것은 사르코지 대통령의 21살 난 둘째아들 장 사르코지 때문이었다. 장 사르코지는 파리근교 오드센(Hauts-de-Seine) 지역의 의원으로 일하고 있는데 지난 6월, 전자제품 판매그룹인 다티(Darty) 사의 상속자 제시카 세바운-다티(Jessica Sebaoun-Darty)와 약혼식을 올린 바 있다. 이 약혼녀는 유대인으로 장 사르코지 역시 유대교로의 개종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유대교로의 개종을 앞둔 장 사르코지의 행보가 반유대주의자 지네에게는 당연히 탐탁치 않아 보였을 것이다. 그는 지난 2일자 샤를리 엡도지를 통해 장 사르코지가 유대교 개종을 통해 얻을 것이 많다며 “이 친구는 인생을 잘 살고 있군”이라고 비꼬았다.

그 후 며칠 뒤인 7월 8일, 라디오 채널 RTL 방송에서 저널리스트인 끌로드 아스콜로비치(Claude Askolovitch)가 논평을 통해 지네의 글을 반유대주의라 비판하며 논란이 표면화되었다. 유대인 단체와 언론계의 비판에 대해 샤를리 엡도의 편집장인 필립 발(Philippe Val)은 지네를 해고하는 것으로 사태를 일단락 지으려 했다.
하지만 지네는 해고조치에 승복하지 않고 법적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몇몇 이들에 의해 “옳지 않게 반유대 혐오자로 몰려 샤를리 엡도에서 해고당했다”며 자신을 반유대주의자라고 지목한 이들을 법정에 고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미 자신을 지지하는 2천명의 만평가 및 작가들의 서명을 확보해 놓았다고 했다.

▲ 프랑스=표광민 통신원/ 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 정치학 석사과정

하지만 여론의 움직임은 지네에게 냉정하다. 리베라시옹의 편집자인 로랑 조프랭(Laurent Joffrin)은 지난 25일 ‘샤를리 엡도: 반유대주의를 금하다’란 사설을 통해 지네 해고 결정을 지지했다. 유대인 단체들 역시 지난 28일, 필립 발 편집장에 대한 지지성명을 발표했고 같은 날 문화통신부 장관인 크리스틴 알바넬(Christine Albanel) 역시 필립 발 편집장에 대한 지지의사를 표명했다. 표현의 자유는 사회적 편견들과 싸우기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닐까. 반유대주의에 갇혀 표현의 자유를 남용한 지네의 모습에, 반공주의의 껍데기를 통해 세상을 보는 우리의 보수언론들이 겹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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