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주 사장 해임 집행정지, 신속한 심리가 '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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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주 사장 해임 집행정지, 신속한 심리가 '정상'
[백병규의 미디어워치] 신속한 심리만으로도 머리가 복잡해진 <조선>
  • 오마이뉴스 백병규
  • 승인 2008.08.18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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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본관 회의실에서 감사원의 해임요구 결정 등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벌어진 사퇴압력에 대해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마치고 나서는 정연주 전 KBS 사장. ⓒ 오마이뉴스 권우성

이명박 대통령이 대통령의 권한으로 행사한 사장 해임 처분이 부당하다며 이의 집행을 정지시켜줄 것을 요청한 정연주 KBS 사장의 해임처분 집행정지 가처분신청 사건에 대한 심리가 18일 오후 2시 서울행정법원에서 열린다. 하루 뒤인 19일에는 정연주 사장이 KBS 이사회를 상대로 낸 해임제청 결의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에 대한 심리가 서울남부지법에서 열리게 된다.

정연주 사장이 낸 소송 순서나 일의 수순으로 보아서는 서울남부지법이 먼저 하고, 서울행정법원이 나중에 해야 하지만 순서가 바뀌었다. 가장 먼저 열려야 했을 감사원의 해임 요구 결정에 대한 정 사장의 집행정지 신청에 대한 심리 일정은 같은 서울행정법원 소관이지만 아직 기일도 잡히지 않았다.

어쨌든 서울행정법원이 정연주 KBS 사장 해임처분 집행정지 신청 사건에 대한 심리를 그래도 비교적 신속하게 열게 된 것은 그 결과 여부에 관계없이 바람직하다. 정 사장 해임 요구 근거의 정당성 여부와 무관하게 과연 대통령이 KBS 사장을 해임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느냐하는 점에서부터 숱한 논란이 돼 왔던 만큼 법원의 신속한 판단이 필요한 사안이었다.

더욱이 이같은 근본적인 법리 논란에도 불구하고, KBS 이사회나 대통령이 전격 작전하듯이 정 사장 해임을 강행하고, 후임 사장 선정 절차를 신속하게 끝내려 하고 있는 점에 비춰볼 때 정 사장 해임의 정당성 여부를 따지기에 앞서 일단 해임처분의 효력을 중단시키는 '가처분 결정'에 대한 심리를 법원이 신속하게 열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서울행정법원의 신속한 심리가 일견 '뜻밖'으로 보이는 것이 오늘 대한민국의 현실이고, 대한민국 사법의 실제이다. 당연히 이명박 대통령의 정연주 KBS 사장 해임권 행사에 대한 해임집행정지신청에 앞서 심리가 이뤄졌어야 할 감사원과 KBS 이사회의 정사장 해임 요구 및 제청안에 대한 가처분신청 심리가 오히려 뒤늦게 열리거나 아직 기일도 잡히지 않은 것이 그 단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선일보>가 16일자 신문에 이 소식을 전하면서 "재판부가 정씨의 신청을 받아들이면 복잡해진다"고 보도한 것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조선>, 정씨 신청 받아들이면 복잡해진다고?

<조선일보>는 16일자 기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해임 결정에 대해 정연주 사장이 낸 '집행정지신청'에 대한 심리가 18일 오후 2시에 있게 된다며 "재판부가 정씨의 신청을 받아들이면 복잡해진다"고 했다. "당분간 정씨가 KBS 사장직을 유지하면서 본안 소송에서 법적 다툼을 벌일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혹은 "다음주에 KBS의 신임 사장이 결정된 뒤 재판부가 정씨가 낸 집행 정지 신청을 받아들이면 당분간 KBS 사장은 2명이 되는 '촌극'이 빚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복잡할 일도, 촌스러운 일도 벌어질 이유가 없다. 서울행정법원이 신속하게 심리를 열기로 한 것이야말로 사실은 '복잡한 일'과 '촌스러운 일'을 방지하자는 법적 절차에 충실히 따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법원이 일단 법리적 다툼 등이 많은 사안이어서 본안 소송 결과가 나올 때까지 정 사장에 대한 해임 처분의 결정을 중단시킨다고 결정을 내린다고 해서 그것이 복잡할 일은 전혀 없다. KBS 후임 사장 선임 절차를 소송이 끝날 때까지 중단시키면 되기 때문이다. 단 법원은 본안 소송에 대해서도 가능한 한 신속한 결정을 내려야 할 책무가 뒤따른다 하겠다.

오히려 그렇지 않을 때 더 큰 복잡한 혼란이 예상되는 사안이다. 본안 소송에서 법원이 만약 정연주 사장 해임이 부당하고 위법적이었다고 판단하더라도 그 때는 이미 <조선일보>의 보도처럼 후임 사장이 임명돼 있어 큰 혼란이 야기될 수 있다. 정 사장 개인은 물론 사법정의가 실현될 '기회' 자체가 원천봉쇄되는 상황이 우려되는 것이다.

정연주 사장 해임 논란은 처음부터 KBS 사장에 대한 대통령의 임명권이나 해임권 등과 관련한 법조문의 해석 등에서 근본적인 논란이 제기됐다. 정 사장 측은 물론 정연주 사장 해임 강행이 부당하다고 보는 쪽에서는 해임 사유의 부당성은 말할 나위가 없고 대통령의 KBS 사장 해임권 행사 자체가 초법적 권력 남용이라고 비판해왔다. 따라서 본안 소송 이전에 일단 '집행정지신청'에 대한 신속한 판단이 요구되는 사안이다.

법원 결정, 비관론과 낙관론 사이에서

게다가 이번 사안은 단지 법조문 해석이나 감사원과 KBS 이사회,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대통령의 권한 행사에 대한 법리적 다툼의 성격을 뛰어넘는 것이기도 하다. 권력의 방송 장악 기도, 나아가 감사원이나 검찰, KBS 이사회 같은 국기기관이나 공적 기구 역시 전적으로 권력의 도구로 전락하면서 법치의 근간과 한국의 민주주의가 위태롭게 되고 있다는 '시대적 위기의식'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라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서울행정법원의 판단 자체가 어떻게 나올지는 알 수 없다. 지난 주 <오마이뉴스>가 정연주 사장 해임 직후 지난 12일 긴급하게 마련한 '정권의 방송장악 시나리오, 그 실체와 대응 모색'이란 토론회 참석자들 중에서는 법원에 대해서 '기대할 것이 별로 없다'는 비관론과, 그래도 법원이 이 정권의 폭정을 제어하는 최종 보루가 돼 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론'이 교차했다. 서울행정법원의 이번 결정은 그 중요한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것이다. 나아가 21세기 한국 민주주의의 여정에 있어서 결정적인 분수령이 될 지도 모른다. 지켜보자.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http://www.ohmynews.com)에서 제공하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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