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법 시행령 개정안’ 공청회 왜 무산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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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통위, 대기업 방송 문턱 낮추다 ‘된서리’

▲ 지난 14일 목동 한국방송회관 3층에서 열린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 공청회에 참석한 언론노조 지본부 산하 조합원들이 “지역방송 씨말리는 시행령 개악 절대 반대” 등의 피켓을 들고 방송법 개정안 공청회 철회를 주장했다.
현업단체, 토론자 대표성에 문제제기 … “9월 중으로 연기”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최시중, 이하 방통위)가 지난달 29일 입법예고한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에 대한 공청회가 전국언론노동조합(위원장 최상재, 이하 언론노조) 등 방송현업인단체의 거센 반발로 개최조차 되지 못한 채 무산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다. 방송관련 법안에 대한 공청회가 무산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방통위는 14일 오후 2시 목동 방송회관 3층 기자회견장에서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에 대한 공청회를 개최할 예정이었으나, “공청회 절차와 토론자 선정 방식 등이 편파적”이라는 언론현업인들의 항의가 계속됐고 일부 토론자들도 불참을 선언하면서 끝내 공청회를 열지 못했다.

이 같이 상황이 극단으로 치달은 이번 방송법 개정안이 이명박 정부의 친시장적인 정책들이 대거 반영되면서 대기업의 방송진출 문턱을 낮추고 케이블의 규제를 대폭 풀어주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지만 이를 반대하는 지상파방송사와 언론시민사회단체의 입장을 방통위가 반영하지 않고 형식적인 공청회를 강행하려고 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공청회 무산 배경과 앞으로의 전망을 정리해봤다.

■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은 주요 요지는 =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은 지난 2월 구 방송위원회에서 논의될 때부터 케이블 SO의 방송권역 확대, 대기업의 방송사 소유 규제 완화 등의 내용을 담고 있어 방송계 안팎으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았다.

특히 종합편성채널․보도전문채널 등의 지분을 소유할 수 있는 대기업의 기준을 자산규모 3조원 미만에서 10조원 미만으로 대폭 완화하는 내용이 개정안에 포함돼 있어 현대, GM대우, 현대백화점, 태광산업 등 굴지의 기업들이 방송에 진출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기 때문이다. 특히 이들 대기업이 뉴스를 내보낼 수 있는 종합편성채널을 운영할 경우 막대한 자본력으로 방송시장 전체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전체 중 80%가 넘는 가구가 유료방송을 통해 방송을 시청하기 때문에 종합편성PP의 출범은 위력적일 수밖에 없다.

또 개정안에는 케이블의 대대적인 규제 완화 역시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개정안에는 케이블 SO가 방송할 수 있는 방송 권역을 전체 77개 권역 중 15개에서 25개로 확대하고 케이블 SO가 반드시 운용해야 하는 최소 채널 개수도 70개에서 50개로 낮추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따라서 그동안 방송법에 갇혀 사업 확장을 할 수 없었던 CJ케이블, 씨엔엠, HCN, 티브로드 등 대규모 MSO들의 문어발식 확장과 군소 SO에 대한 M&A가 가속화 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다. 특히 대기업에 대한 진입장벽은 사업자들의 규제를 골간으로 하고 있는 방송법의 기본 취지를 흔드는 것으로 이해관계자는 물론 전체 방송시장과 시청복지에 미치는 파장이 크다는 게 방송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 때문에 지상파 방송사들로 구성된 한국방송협회(회장 엄기영, 이하 방송협회)도 지난 6월 26일 방통위 측에 ‘종합편성PP와 보도전문PP의 소유규제에 관한 건의문’을 제출했다. 방송협회는 건의문에서 자산총액 3조원 이내로 규제할 것을 주장하며 “지상파방송 외에 대기업이 소유하는 거대한 종합편선PP가 등장한다면 지상파방송과 새롭게 생기는 종합편성PP 외에 모든 전문 PP들의 상황은 더욱 악화돼 콘텐츠 시장의 다양성은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 공청회 파행 왜 불렀나 = 이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방통위는 지난달 입법예고를 하고 14일 공청회를 강행했다. 특히 그동안 방통위는 방송시장 규모가 확대되고 기업들의 자본규모 확대에 따라 방송에 진출할 수 있는 대기업의 자산규모 가이드라인을 조정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주장했지만 향후 방송법 개정에 따른 시장 파장력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단 한 차례도 공개하지 않았다.

최상재 언론노조 위원장은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에 대한 부정적 효과가 얼마든지 있는지 시뮬레이션했냐”며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이 가져올 방송계의 파급력이 얼마나 심각한데 겨우 10쪽짜리 발제문을 통해 공청회를 한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비판했다.

또 방통위는 방송법 개정안의 직접적인 이해 당사자라 할 수 있는 군소 PP, 시청자단체 관계자 등을 토론자 명단에서 배제했다. 이 때문에 언론노조를 비롯한 현업방송인단체들은 공청회장에서 방통위측에 패널 구성과 절차상의 결함에 대해 공개적으로 문제 제기하고 사실상 공청회 연기를 촉구했다. 심석태 민영방송노조협의회 의장(SBS노조 위원장)은 “유료방송인 케이블의 채널이 70개에서 50개로 줄어들면 당장 시청자들이 볼 수 있는 채널 20개가 줄어들고 시청자 복지에 영향을 준다”며 “시청자 복지가 줄어드는 것에 대해 어떤 영향을 주는지 등에 대해 제대로 고민한 것인가”라고 다그쳤다. 

시민사회단체 토론자 몫으로 섭외된 유일기 뉴라이트방송통신정책센터 기획위원장의 대표성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채수현 언론노조 정책국장은 “뉴라이트방송통신정책센터는 MBC·KBS2 민영화 등을 주장한 정치단체”라고 지적했다.

■ 앞으로 일정은 어떻게? = 방통위는 공청회 무산에 대해 당혹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당초 공청회가 무산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한 방통위는 방송현업단체들의 피켓 시위 등이 진행된 가운데서도 공청회를 강행하려고 했지만 토론자들이 줄줄이 중도 사퇴를 선언하면서 결국 ‘공청회 무산’이라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때문에 방통위는 내부 회의를 거쳐 “공청회를 9월 초쯤 개최한다”는 계획을 세운 상태다. 김성규 방통위 방송정책기획과장은 “공청회 절차상 개최 14일 전에 토론자, 발제 등을 공지해야 하기 때문에 다음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 공청회는 9월 초쯤 개최할 계획”이라며 “지난 14일 공청회장에서 문제 제기된 토론자 선정 등에 대한 언론시민단체의 입장을 반영해 토론자 등을 구성할 입장”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언론단체들의 입장을 반영해 공청회 토론자를 새롭게 구성한다고 하더라도 IPTV에서 대기업 기준이 3조원에서 10조원으로 완화된 만큼, 방송법 시행령에서 막는 건 의미가 없다는 지적도 있다.

따라서 지상파 내에서도 자산기준 보다는 사실상 지상파의 경쟁 상대라 할 수 있는 종합편성PP 허용을 전면에서 막자는 의견이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언론노조 등 방송현업인단체는 공청회에 최소한 방송 현업인들의 다양한 입장이 반영될 수 있도록 지역방송, 군소PP, 유료방송사업자(IPTV사업자, 위성방송 등) 등을 비롯해 방통위원들이 직접 토론자로 참석하도록 방통위 측에 요청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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