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제작기] 두 달간의 중국 방랑으로 얻은 ‘PD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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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제작기] 두 달간의 중국 방랑으로 얻은 ‘PD정신’
SBS 인터넷망 고화질 생방송 <13억을 움직이는 힘 - 중국을 알면 세계가 보인다!> 下
  • 오기현 SBS 시사교양국 PD
  • 승인 2008.08.27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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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가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 세계 최초로 한국과 중국을 연결하는 인터넷 망을 이용한 ‘고화질(HD)생방송’에 성공했다. 기존의 위성을 통한 중계 대신 인터넷을 이용한 방송이라는 새로운 시도를 한 SBS의 오기현 PD가 2회에 걸쳐 제작기를 싣는다. <편집자주>

충칭에서 세계 최초의 인터넷망을 이용한 HD생방송을 시도한 우리는 7월 11일 동쪽으로 2500km 떨어진 상하이로 출발했다. 중국의 3대 화로(火爐)라는 충칭의 무더위를 벗어난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홀가분했다. 섭씨 38도의 더위는 호흡곤란은 물론 제작의욕마저 앗아가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막상 상하이에 도착하자 40도에 육박하는 열기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빌딩 숲 사이에 나무 한 그루 찾아보기 힘든 도시의 풍광은 그 자체가 거대한 하나의 열원(熱源)이었다. 그러나 상하이의 폭염보다 우리를 더 힘들게 한 것은 상하이 공무원들의 비협조적인 태도였다.

중국행정기관에서 간단한 서류라도 떼본 사람이라면 행정절차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이해할 것이다. 규정대로 하면 된다고 하지만, 중국의 모든 규정을 따라하다가는 2012년 런던올림픽이 될 때까지도 허가받기가 어려울 것이다. 우리는 6월 초부터 취재를 시작했는데 취재허가뿐 아니라 생방송 허가를 BOMC(Beijing Olimpic Media Center)로 부터 받았다.

그런데 올림픽 경기가 열리는 30일 전인 7월 8일부터는 이 모든 업무가 새로 생긴 BIMC(Beijing International Media Center)로 넘어갔다. 우리는 지방도시 4곳과 베이징 7곳의 허가를 BOMC로부터 미리 받아두었는데, BIMC가 생기면서 허가여부를 새로 결정하겠으니 서류를 다시 접수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그래서 BOMC에서 허가를 해준 당사자를 어렵게 찾아갔지만, 그도 방법이 없다고 했다, 원래 허가는 받았지만 ‘허가증’이라는 문서가 없어서 이의를 제기할 수도 없었다. 허가증을 발부하기 않은 이유를 아직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아마 야외생방송에 대한 규정이 없었기 때문인 것 같다.

지방행정기관의 동의는 더 어려운 일이었다. 상하이에서 방송하기 이틀 전 장소 답사를 위해 와이탄(外灘)관리처를 찾아갔더니, 주임이라는 사람이 책상에 두 다리를 올려놓은 채 허가서부터 가져온 뒤 이야기하라며 문전박대를 했다. 상하이시 선전부 → 상하이시 공안국 외사처 → 와이탄 관리처를 부지런히 오가며 겨우 허가를 받았다. 그러나 무선브릿지 안테나 설치 문제로 또 다시 관리처 사람들과 고성과 삿대질이 오가는 소동을 벌인 후에 겨우 테스트를 마칠 수 있었다.

엄청난 인구와 차량정체, 폭염, 외부언론에 결코 협조적이지 않은 현지인의 반응으로 짜증스러웠지만, 밤이 되면 휘황찬란한 조명이 한 낮의 갈등을 모두 집어삼키며 마술처럼 완전히 새로운 도시를 만들어 냈다. 상하이는 밤이 있어서 유명한 도시가 된 모양이다.  7월의 16일부터 3일간은 상하이의 와이탄(外灘)에서 생방송을 진행했다. 포동의 동방명주와 고층빌딩 그리고 포서(浦西)의 석조건물로 상징되는 와이탄은 그 자체로도 경제수도인 상하이의 역사와 경제력을 대변하였다.

7월의 셋째 주는 중국 내 한국기업의 전초기지인 칭다오(靑島)를 찾았다. 칭다오의 고풍스러운 도시전경과 수려한 해변이 내려다보이는 샤오위산(小魚山)정상에 서서 우리는 최적의 장소를 찾았다고 감격해했다. 그러나 7월 23일 막상 방송이 시작되면서 날씨가 심술을 부려서 3일 내내 비바람과 싸우며 간신히 방송을 진행할 수 있었다. 780만 인구인 칭다오의 세수(稅收) 중 한국인이 절반을 부담한다는 사실로 한-중 경제교류의 현주소를 확인한 것은 보람이었다.

7월의 마지막 주 우리는 베이징에서 북동쪽으로 240km 떨어진 친황다오(秦皇島)를 거쳐시속 250km로 달리는 고속열차를 타고 21세기 세계의 중심도시로 부상하는 수도 베이징으로 진입했다. 베이징은 완전히 새로운 풍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도로와 건물, 그리고 맑은 공기까지…. 황사로 기진맥진하던 4월의 베이징을 보았던 나로서는 눈앞의 전경이 믿기지 않았다. 특히 새로 생긴 지하철 역 앞에서 줄을 서서 표를 사거나 승하차를 하는 시민들의 모습은 이전의 베이징을 기억하는 사람에게는 경이로운 현상이었다. 개막식날 비를 오지 않게 하기 위해 1200 여개의 소이탄을 구름 속에 쏘아 올린 중국인들은 올림픽을 앞두고 21세기의 새로운 신화를 쓰는 것이 분명했다.   

베이징에서는 방송이 매일 편성되어 인원이 두 배인 40여명으로 보강되었다. 함께 묵을 호텔을 찾기가 쉽지 않을뿐더러 호텔비용도 올림픽 전에 비해 5~10배 가량 뛰어서, 숙소는 주경기장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왕징(望京)의 아파트를 이용했다. 방 3~4개짜리 아파트 한 달 비용이 3만 5천 위안(한화 약 550 만원)이나 되었지만, 호텔 가격에는 비할 바가 아니었다.

인터넷망을 이용한 방송송출방식, 중국에서 임대한 미니버스를 개조한 중계차, 발전차 대신 구입한 6KW짜리 발전기 두 대, 현지에서 저렴하게 임대한 조명, 생방송중계 카메라를 대신한 6mm 카메라, 현지에서 구입한 6mm용 지미짚 카메라 등 모든 방송 송출과 중계방식이 새로운 시도였지만, 더 획기적인 것은 HD 6mm 카메라로 촬영한 테이프를 모두 컴퓨터 편집하여 다시 HD 6mm 테이프로 뽑아내는 작업이었다.

1대1 편집기를 여러 대 뽑아갈  여건이 되지 못하고 편집기수송의 어려움이 있어 시도한 방식이었지만, 편집된 내용을 6mm로 전환할 때마다 오디오가 찌그러져 애를 먹었다. 다행히 용산전자상가에서 엔지니어들이 찾아낸 ‘HDV-1500'라는 기계가 이런 어려움을 어느 정도 보완해주었다. 그러나 방송센터(IBC)의 자료를 다시 HD 6mm 테이프로 전환하는 일은 지난한 작업이었다. 아마 컴퓨터에 익숙한 신세대 유영우PD가 아니었으면 올림픽경기자료를 쓰는 일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베이징에서는 올림픽경기가 열리기 4일 전부터 매일 야외생방송을 진행했다. 원래 방송 예정 장소는 자금성, 천안문광장, 만리장성, 올림픽 주경기장 앞, 징산(景山), 왕푸징(王府井), 스차하이(什刹海), 베이징역, 쩡안먼(正安門), 똥화먼(東華門 등 10여 곳이었으나 인터넷망 연결 문제로 7곳 만 허가가 났다. 그러나 베이징 입성 직전에 BIMC가 올림픽주경기장, 징산, 베이징역, 찡안먼 등 네 곳으로 장소를 한정했다. 허가가 난 네 곳을 가능한 넓게 활용하여 방송을 진행하는 수밖에 없었다.

고궁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징산 정상, 천만 베이징시민의 관문인 베이징역 광장, 출근길 베이징사람들의 일상을 살펴볼 수 있는 스차하이,  선수들의 호흡소리가 들릴 듯한 올림픽주경기장 앞에서의 생방송은 외국방송사로서는 유일한 시도라고 한다.

방송을 기간 중 내내 제작진을 괴롭히는 것은 수면부족이었다. 아침 3시 기상 조와 3시  30분 기상 조가 나누어 출발하여, 5시 30분까지는 현장에서 세팅을 마치고 리허설을 진행했다. 중국과 우리나라가 한 시간 시차가 있어 현지의 방송시간은 아침 6시 30분 ~ 7시 30분이었다. 방송을 마치고 서둘러 장비철수를 하고 숙소로 돌아오면 오면 대게 오전 9시 경이었는데, 아침을 먹기보다는 주로 잠을 청했다. 정오 경에 일어나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오후 일과를 진행한 뒤 저녁 9시에는 전체회의를 하고 자정 무렵에 다시 잠을 자는 식의 일과가 계속되었다. 적게 먹고 활동량이 많이 져 체중감량에는 효과가 좋았다.

▲ 오기현 SBS 시사교양국 PD

올림픽경기 폐막식을 하루 앞둔 8월 23일 오전, 우리는 귀국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베이징공항에 도착했다. 경기를 마친 각국의 선수단이 몰려 베이징공항은 인산인해였다. 귀국을 앞둔 각자의 얼굴표정에는 그들의 경기성적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금, 은, 동, 그리고 등외…. 그들은 우리의 얼굴에서 어떤 경기성적을 읽을 수 있을까? 인테넷 망을 이용한 HD생방송이라는 형식에 얽매여 ‘중국을 움직이는 힘’을 찾아내는 데는 실패한 패배자일까? 아니면 새로운 시도를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려는 승리자일까? 해답은 4년 뒤 런던 올림픽 때나 나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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