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의 눈] 가을 4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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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의 눈] 가을 4Km…
  • 이성규 프리랜서 PD
  • 승인 2008.09.03 13: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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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버스를 타고 가다
언뜻 스치며 지나는 계절 표지판을 만났다.
"가을 4km"
버스는 한참을 지났다
난 가을에 다다를 수 없었다.

- 2000년 8월 30일 여름이 끝나가던 날

8년 전, 이 맘 때 쓴 짧은 글이다. 로잘린 뚜렉의 피아노 연주로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영국모음곡 3번 G단조 BVW808을 들으며 썼던 글로 기억된다. 지금은 우울증이 그런대로 사라지고 있지만, 당시엔 무척이나 심한 우울증에 빠져 있었던 듯싶다.

당시 별명은 '잠수함'이었다. 우울증이 도지면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탓이다. 함께 일하던 사람들이 무척이나 애을 먹던 때였다. 2000년 여름은 인도에서 1년 반 동안 촬영한 극장용 다큐멘터리 <보이지 않는 전쟁 - 비하르 리포트>를 한창 편집하던 중이었다. 하고 싶었던 작업을 한다는 기쁨으로 힘이 넘쳐나야 했었지만, 당시엔 왜 그리도 우울했던지…. 개인적으론 주머니에 단 한 푼 없는 현실이 주는 우울함. 그리고 인도에서 촬영한 내용들을 편집하면서, 다큐멘터리 영화 속에 나오는 인물들에 대한 애증…. 이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우울증을 불러일으켰다.

척박한 광기의 땅 인도 비하르에서 나는 알고 있던 모든 것들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정신주의 모국이라고 불렀던 인도. 그래서 최인훈의 '광장'에 나오는 주인공이 선택했던 제3국 인도. 한국의 지식인들은 인도라는 땅을 동경했었다. 물론 나 역시 라즈니쉬와 크리쉬나무르티의 명상 서적을 읽으면서 인도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1년 6개월 동안 살아가면서 만난 인도는 많은 충격을 안겨 주었다. 사람마다 느끼는 감정과 이성은 다를 것이다.

최소한 내게 인도는 더 이상 정신주의의 모국도 성자의 나라도 아니었다.  갈등이 있었고 다툼이 있었고 차별과 학살이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에 저항하는 혁명군이 있었다. 혁명은 정당하다는 신념이 그 때까지만 해도 희미하게나마 가슴 속에 남아있었다. 그러기에 인도 불가촉 천민들의 해방을 위해 투쟁하는 빨치산들에게 아낌없는 지지를 보내며 다큐멘터리 촬영을 했다.

혁명적 빨치산을 맞는 인도의 천민들은 감격적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감격도 허상이란 걸 깨닫게 됐다. 그들의 시작이 순수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인도라는 늪과 같은 땅에서 빨치산은 혁명군이라기보다 또 다른 지배세력으로서의 군벌이었다.

결국 다큐멘터리는 이도 저도 아닌 정체불명이 되었다. 서울 인권영화제에서 <보이지 않는 전쟁 - 인도 비하르 리포트>는 상영됐다. "어느 편이신가요?"  영화가 끝나고 관객과의 대화에서 어떤 젊은 청년이 던진 질문이다. 사람들은 우리에게 어느 한 편에 서 있기를 강요했다. 그러나 우리는 어느 편에도 서지 않았다.

▲ 이성규 프리랜서 PD

극심한 우울증에 빠졌었던 2000년 여름과 가을. 우울증은 지독한 감상주의에서 허우적 거리는 글들을 낳았다. 가을은 당시 내게 사상적 종점이었다. 버스는 그러한 역사의 수레바퀴였고…. 버스에 올라탔지만 나는 가을에 다다르지 못했다. 그렇다고 도중하차를 한 것도 아니다. 그저 표지판만 봤을 뿐, 내려야 할 곳 가을을 지났다. 그것은 방관자로서의 삶을 선택하기로 한 도피였다. 우디 알랜은 <애니홀> 도입부에서 카메라를 보며 한마디를 던진다. “쇼핑백을 들고 카페를 전전하면서 사회주의를 외치는 인간만 아니면 됐죠 뭐.” 그런데 지금 내 모습이 딱 그 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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