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갈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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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갈 수는 없다
[큐칼럼] 2008년 9월의 방송계를 보며
  • PD저널
  • 승인 2008.09.09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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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하 방송계 상황은 갈수록 참담한 지경을 보이고 있다. 이미 목격하고 있는 바대로 권력은 임기가 보장되어야 하는 공영방송의 수장을 관련 국가기관을 총동원해 올림픽 기간 중에 가차없이 찍어내기를 해치웠다. 감사원, 방통위, 문광부, KBS 이사회 등이 모두 나선 이 과정은 현 정권이 체통도 수치심도 없다는 것을 똑똑히 보여준다.

오히려 그들은 피해의식과 증오감으로 철저히 무장해 있다. 특히 권위주의 시절 관계기관 대책회의를 방불케 하는 밀실 구수회의 끝에 차기 사장을 모의해 나가는 과정은 민주주의의 수레바퀴를 철저하게 되돌리는 일이었다. 그렇게 해서 선임된 결과는 차라리 소극(笑劇)이라고 말하고 싶다.

권력은 취임 초반 유례없는 난맥과 혼돈에 빠진 것이 자신의 오만과 무능 때문이라는 반성은 전혀 하지 않는다. 그들은 국민의 건강권과 한우농가의 생존권을 담보로 한 대미 굴욕, 졸속 쇠고기 협상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은 채 <PD수첩>을 촛불시위의 진원으로 지목하여 방통심의위와 방통위의 한 통속 밀실심의, 정치심의 끝에 사과명령 징계를 결정하였다.

▲ MBC 경영진이 < PD수첩>에 대한 사과방송을 결정하자 MBC노조가 사과방송을 저지하기 위해 농성을 하고 있다 ⓒPD저널
이후 온갖 겁박으로 또다른 공영방송 MBC의 경영진을 정신적 가위눌림 상태에 몰아넣어 자진해서 사과방송과 희생양 인사를 하게 하였다. 담당 PD, 진행자, CP의 징계 인사 이후 마침내 담당 국장까지 보직 해임한 것은 MBC 경영진의 순치(馴致)가 극에 달했음을 잘 보여준다. “정치적인 이유가 아닌 경쟁력 회복과 분위기 쇄신을 위해 인사를 했다”는 MBC 경영진의 변명에서 그들의 보신주의가 이제 내면화 단계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이렇듯 이명박 정권 6개월 만에 이 땅의 민주주의와 언론 자유, 방송 독립성은 칼 끝에 서 있다. 짧게는 10년, 길게 보면 87년 6월 항쟁 이후 20여 년간 도도히 흘러온 민주화의 대장정은 이제 심각한 위기상황에 처해 있다. 특히 언론장악, 방송장악의 공세 앞에 언론의 자유, 방송의 독립성과 공공성을 지키고자 싸워왔던 제 세력의 분열과 무력함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 KBS 사원행동 특보(16호)
현 정권은 대선과 총선이라는 정치공학적 국면에서의 승리를 발판으로 모든 부문에서 솎아내기를 하고 히드라처럼 맹렬히 자기 세력의 증식을 꾀하고 있다. 합법적 공간에서 주도권을 놓친 민주 세력에게는 쓰라린 패배의 대가가 강요되고 있다. 작금의 방송계에서 드러나는 현상은 극히 일부일 뿐이다.

권력을 좇고 자리를 탐하는 수구의 검은 욕망은 지금 거의 블랙홀로 우리 사회를 빨아들이고 있다. 정권은 권위주의적 시장주의의 공습을 통해 보수세력을 결집하고 한국 사회의 구조를 재편한 뒤 착착 영구 집권을 노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추세라면 그들의 노림수가 가시화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그러나 아서라 말아라. 지금은 때가 아니다. 아직 섣부른 정세분석으로 스스로를 합리화하고 기만하기에는 이르다. 지난 60년의 한국 현대사는 우리에게 똑똑히 역사의 교훈을 가르쳐 주고 있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오만한 권력은 스스로 무너지며 결국은 민의에 의해 심판받는다. 이 역사의 원칙만큼은 어떤 권력에게든 예외가 아니었다.

다시 신발끈을 조여 맬 때다. 우리들 방송PD들은 20여 년전 6월 아스팔트에서 분노한 민중의 노호를 들을 때 남몰래 눈물 흘리며 공정방송과 방송독립을 다짐했던 현장 방송인의 그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의 존재근거는 시청자와 국민에 있다. 냉소주의도 패배주의도 아직은 아니다. 2008년 9월 도도히 몰려 오는 전진(戰塵)을 보며 전의를 드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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